'노골부들'과 '단단빡빡'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한국문학비평 거장 구중서 선생 역사문화 에세이집 출간

등록 2006.08.03 12:33수정 2006.08.0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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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관동별곡의 한 구절이 구중서 선생의 서체로 부활한다. 의미는 우주보다 심오하나 그것의 표현은 '곰살맞은' 것이 흥미롭다.

관동별곡의 한 구절이 구중서 선생의 서체로 부활한다. 의미는 우주보다 심오하나 그것의 표현은 '곰살맞은' 것이 흥미롭다. ⓒ 김기

3일 오후 5시 인사동 공화랑은 안팎이 인파로 넘쳐났다. 민예총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전 수원대 인문대학장 구중서 선생의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선생의 작품 전시가 열린 화랑 1, 2층에는 선생이 틈틈이 작업해온 시서화가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선생과 반가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한편은 작품 감상을 하는 등 어느 대화가의 전시회가 부럽지 않는 진풍경을 보였다.

전시된 작품들 대부분은 이번 출간한 역사문화 에세이집 <면앙정에 올라서서>에 주옥같은 글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다만 큼직한 본래의 크기로 액자에 담겨 조명까지 받으니 보는 입장에서야 책의 삽화로 보는 것보다 작가의 면모를 더 잘 읽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출판기념회는 대학로의 유명한 카페 '작가수업'의 배평모 사장이 사회를 맞아 민영 시인의 축사와 구중서 선생의 사례로 간단히 마쳤다.

이 자리에서 민영 시인은 구 선생의 작품에 대해서 "글 쓰는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른 편인데 반해 구 선생은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면서 "이 사람의 속에 재주는 지난 70년 동안에도 다 보지 못한 것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여줄지 모르겠다"고 마르지 않는 구 선생의 작가열정에 대해 칭찬했다.

a 구중서 선생의 저술 <면앙정에 올라서서>(책만드는집)와 <문학적 현실의 전개>(창작과비평사) 출판기념회를 겸한 서화전을 찾은 사람들. 좁은 화랑에 설 자리가 없어 일부는 화랑밖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구중서 선생의 저술 <면앙정에 올라서서>(책만드는집)와 <문학적 현실의 전개>(창작과비평사) 출판기념회를 겸한 서화전을 찾은 사람들. 좁은 화랑에 설 자리가 없어 일부는 화랑밖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 김기

그에 대해 구 선생의 사례는 그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마디로 끝이었다. 이 자리에는 한국문화계의 거장들이 총출동되어 찾아온 사람들을 더욱 기쁘게 하였다. 신경림 시인, 민영 시인, 정희성 시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박영규 목사, 백낙청 문학평론가, 김용태 민예총이사장, 이계익 전 교통부장관, 정대철 전 의원, 이부영 의원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 구중서 선생의 시화는 한편으로는 한국 명시선의 의미도 갖는다. 신경림 시인은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미적 감각을 가졌다. 기성관념을 뛰어넘은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면서 "시에 대한 탁월한 선택력을 가졌는데, 그 기준은 자신의 내면과의 깊은 조우를 통한 것이다. 관동별곡 중 '바다 밖은 하늘이니…'는 아주 대단한 선택"이라고 평하였다.

구중서 선생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곰 같은 사람으로 통하기도 한다. 우이동 골짜기부터 머나먼 수원까지 빈말로도 불평 한번 없이 다닌 이력을 가지고 있고, 민영 시인의 치사에서도 밝혔듯이 대단히 부지런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


모름지기 비평가는 작가보다 몇 배 더 부지런해야 함을 몸으로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런 부지런함과 우직한 시선은 민족시인 신동엽을 남보다 앞서 발견하기도 했다.

a 너른뫼 구중서 선생.

너른뫼 구중서 선생. ⓒ 김기

선생 스스로 이 책 <면앙정에 올라서서>를 "역사의식을 담은 에세이"로 정리하였다. 역사, 문화사 안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근거지, 연고지를 찾아 손으로 매만지듯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설명하려는 것보다는 글과 그림으로 미학적인 전달에 중심을 두었다"면서 "하늘 아래 떳떳한 기품을 품고 살아온 역사적 전모와 일상의 문화 안에 있는 곰살맞은 삶의 맛"을 담았다.


그 책의 첫 페이지는 <삼국유사>에 수록되기도 한 '노골부들'과 '단단빡빡'의 이야기로 장식되어 있다. 책 제목이 그렇듯이 송강의 이야기, 고구려 이야기, 실학 이야기 등 굵직하고 중량감 넘치는 화제도 많건만 굳이 이 이야기가 첫 면을 차지한 것은 역사인식에 대한 인간적인 시각의 화법을 미리 주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골부들'과 '단단빡빡'은 신라 경덕왕 때 승려들로 '노골부들'은 미륵불이 되길 원했고, '단단빡빡'은 아미타불이 되고자 염원했다. 이들의 성격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 그대로여서 이들을 시험하려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여 찾은 관음보살을 '단단빡빡'은 수행을 이유로 하룻밤 재워주기를 거절하고, '노골부들'은 보살행이 먼저라는 생각에 여인을 재워주어 결국 원하던 미륵불에 먼저 도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a 서화전을 찾은 지인들이 근처 식당에서 간단한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이계인 전 교통부장관이 즉석에서 아코디온 연주로 축하를 전했다. 왼쪽에 정희성, 신경림 시인이 보인다.

서화전을 찾은 지인들이 근처 식당에서 간단한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이계인 전 교통부장관이 즉석에서 아코디온 연주로 축하를 전했다. 왼쪽에 정희성, 신경림 시인이 보인다. ⓒ 김기

이 이야기의 교훈으로 "단단빡빡, 굳은 것은 죽음을 뜻한다. 노골부들, 부드러움은 생명을 뜻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라고 책은 정리하고 있다. 그 노골부들의 자세일까? 구중서 선생의 글씨는 대단히 소박하고 한편으로는 막 쓴 것 같은 필체를 보여준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는 딱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송강 아니 구중서 선생의 의미는 책 백 권도 못 채울 리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겁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한 그 의미들을 막걸리 잔이나 나누다가 재미삼아 휘휘 휘갈긴 듯 무심한 필체로 쓴 서체 한 편에서 사람들은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오랜 세월 한국문학에 대해 비평을 담당했던 원로 평론가가 고희에 내놓은 비평가가 아닌 작가로서의 시서화는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평생 선비였고 천상 선비였던 평론가의 꾹꾹 눌러온 작가적 끼를 보여줌으로 젊은이들의 분발도 한편으로 독려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몽요도원? 아니 '몽유백령도'에 얽힌 뒷 이야기

ⓒ김기

이 그림 '몽유백령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전 구중서 선생과 정희성 시인은 함께 백령도를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담소도 나누며 풍경을 사진에 담았는데, 그곳 어디쯤에서 한 사람은 그림을, 또 한 사람은 시 한 편을 이심전심으로 구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 선생은 구식 필름카메라라 이내 필름이 떨어졌고, 정 시인은 디카인 까닭에 담고 싶은 풍경을 모두 담아왔다. 서울로 돌아온 구 선생은 정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요청했다. 정 시인은 흔쾌히 사진을 보내주고 한참 날짜를 보낸 뒤 다시 구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림 다 그리셨습니까? 전 시 한 편 다 그렸습니다"했다고 한다.

그러자 구 선생은 정 시인에게 그 시를 보내달라고 했고, 결국 40행의 시 중에 일부를 선택해 그림과 함께 완성한 것이 '몽유백령도'다.

정희성 시인의 미발표작 '몽유백령도'를 게재토록 허락받아 이곳에 소개한다.

몽유백령도

풍경은 얼마쯤 낯설어야 풍경이 되고
시도 얼마쯤 낯설어야 시가 된다
이 섬의 이름은 원래 곡도
따오기 모양의 거대한 흰 날개를 가졌다는
이 섬의 아름다움은 기이하다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을 마치고
두무진으로 가 유람선을 탔다
아홉시 방향을 보라
선장의 말에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다
구멍 뻥 뚫린 바위 옆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똥이 하얗게 쌓인
촛대바위 뒤로는 병풍절벽 가까스로
절벽을 기어오른 덩굴식물 사이로 초소가 보이고
구멍 속에는 초병이 하나 서서
장산곶 하늘의 매를 감시하고 있다
아니, 그는 아마 눈먼 아비를 위해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에
연꽃이 언제 피는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가마우지가 몇 번 자맥질을 하고
물개가 몇 번이나 솟구쳐 휘파람을 불고
괭이 갈매기는 또 몇 번이나 울며 날았는지
하루 종일 심심풀이로 헤아렸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다 한가운데
병사를 세워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가는 병사들도 심봉사처럼
눈 뜰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화리가 여기 있을 턱이 없지
그렇지 않고서야 심청각 옆에
탱크를 세워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 이 바다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크기가 몇 천리가 되는지 모르나
이것이 변해 붕이란 새가 되었다
붕새는 얼마나 큰지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은는 구름과 같았다
지금까지 바다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던 그 큰 새가
제 몸에 얹힌 온갖 것 훌훌 털고
크고 흰 날개 퍼득여 하늘로 오를 날
오기는 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백령도가 황해바다 한가운데 서있을 수 있겠는가


*작자주. 곤이라는 물고기는 <장자> 소요유에 나오는 말임.

덧붙이는 글 | 구중서 선생의 서화전 '너른뫼 서화전'은 오는 8일까지 인사동 공화랑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구중서 선생의 최근 저술 <면앙정에 올라서서>(책만드는집)와 '문학적 현실의 전개'(창작과비평사) 출판기념회를 겸한다.

덧붙이는 글 구중서 선생의 서화전 '너른뫼 서화전'은 오는 8일까지 인사동 공화랑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구중서 선생의 최근 저술 <면앙정에 올라서서>(책만드는집)와 '문학적 현실의 전개'(창작과비평사) 출판기념회를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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