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 땐 띠풀로 만든 도롱이가 최고

[내 마음의 생활사박물관 4] 우비 중 걸작 도롱이 어디에 있을까?

등록 2006.08.25 11:19수정 2006.08.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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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것도 도롱이인데 참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짚으로 만든데다가 노끈으로 엮어서 몇번 쓰고 나면 곧 헤지고 말겠네요.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습니다.

이것도 도롱이인데 참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짚으로 만든데다가 노끈으로 엮어서 몇번 쓰고 나면 곧 헤지고 말겠네요.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습니다. ⓒ 시골아이 김규환

'도롱이'다. 사의(?衣)라고도 하는 이것은 이제 농업박물관에나 모셔져 있다. 비옷, 우장, 우의가 이제 그 쓰임새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볏짚이나 밀짚, 보릿대 따위로 만들어 비가 아무리 내리쳐도 꼭 해야 할 농사일을 미룰 수 없기에 때론 허리에 차고 어깨 위에 덮어쓰고 비를 동무 삼아 해질녘까지 하루를 꼬박 채웠다.

비온다고 논밭 '지심'이 자라지 않은 것도 아니다. 소가 비오는 날이라고 풀 먹기를 멈추지 않으매 꼴 베기를 멈출 수 없었으니 거추장스럽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그러다가 작대기로 몇 대 얻어터지고 밥을 굶어야 할 지 모르잖은가.

처음엔 약간 무거운 느낌이지만 일을 하다보면 이내 한 몸이 되어 찬비를 맞아 종아리는 시려도 등짝에선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초여름보다 늦여름과 초가을로 갈수록 쓰임이 더 많았던 도롱이, 되롱이가 그립다. 코흘리개 우린 노끈을 엮어 운동회 때 아프리카 추장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마저 집집마다 서너 개 있지 않았으니 어릴 적 우린 요소부대자루를 양끝과 가운데를 도려내고 어깨 밀어 넣고 고개 빼서 물먹은 벙거지, 밀짚모자나 미루나무 대팻밥 껍질로 만든 모자를 쓰고 서둘러 집을 나서기도 했다.

도롱이 하나 만들어 볼까?


a 작년 설에 띠뿌리를 캐왔지요. 아들녀석 솔강이가 코피를 흘려 설날에 땅을 팠답니다.

작년 설에 띠뿌리를 캐왔지요. 아들녀석 솔강이가 코피를 흘려 설날에 땅을 팠답니다. ⓒ 시골아이 김규환

a 묫자리에 잔디가 이 풀 저 풀에 치어 죽고 나면 띠가 등장합니다. 묫동에 올라 귀신 나올지도 모르는 대낮에 이 꽃이 피기 전 잔디 길이였을 때 배가 불러오면 그걸 뽑아 껌대신 씹어먹었습니다. 오뉴월에 이렇게 하얀 꽃이 핍니다.

묫자리에 잔디가 이 풀 저 풀에 치어 죽고 나면 띠가 등장합니다. 묫동에 올라 귀신 나올지도 모르는 대낮에 이 꽃이 피기 전 잔디 길이였을 때 배가 불러오면 그걸 뽑아 껌대신 씹어먹었습니다. 오뉴월에 이렇게 하얀 꽃이 핍니다. ⓒ 시골아이 김규환

지푸라기, 밀짚, 보릿대 다 좋지만 역시 도롱이는 띠풀(茅草)이 최고다. 띠는 뗏장을 떼서 쓰는 잔디와 비슷하면서도 억새와는 차이가 있다. 억새는 갈대와 같이 꼿꼿하게 서고 가운데 심이 있어 바스락거리면서도 두껍기 때문에 이 용도에는 일단 자격상실이다.

띠는 '삐비'나 '필기'라고 하는 양지바른 묘동에 자라는데 어릴 적 우린 이른 봄 배동이 불러오면 하얀 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무던히도 뽑아 껌 대신 씹어서 삼키곤 했던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뿌리를 캐서 한번 씹어보라. 달착지근한 맛이 끝내준다. 여기에 코피 질질 흘리는 아이들에게 이 뿌리를 삶아서 물로 마시게 하면 몰라보게 달라진다.


전쟁 때마다 이불은 여름엔 비를 맞으면 몇 배나 무거워지고 겨울엔 습기를 조금이라도 머금으면 꽁꽁 얼어붙어 전염병과 동사(凍死)의 원인이었다. 띠는 짚과 비교가 되지 않게 물기는 절대 스며들지 않고 밑으로만 흐르게 하는데 탁월하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철 낙엽이 질 무렵 이 또한 엽록소를 다 덜어내고 연한 갈색 또는 불그스름한 빛깔로 바뀌고는 너울너울 누워있는 기다란 풀을 발견하게 된다. 너울진 풀을 가지런히 베어서는 말릴 필요도 없이 갈라놓은 대마 삼껍질에 물을 축여서 가늘게 새끼를 꼰다.

a 띠풀을 정확히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딱딱한 줄기가 없어 눈밭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빗물이 빠지면 다시 일어서는 신기한 힘을 지녔고 썩는 법이 없답니다. 이 사진 찾느라 열흘을 보내고 말았네요.

띠풀을 정확히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딱딱한 줄기가 없어 눈밭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빗물이 빠지면 다시 일어서는 신기한 힘을 지녔고 썩는 법이 없답니다. 이 사진 찾느라 열흘을 보내고 말았네요. ⓒ 시골아이 김규환

서너 가닥 놓고 한 줌 한 줌 떼어서 바짝 밀착시켜서 가는 끝이 거꾸로 아래로 향하도록 엮어나간다. 몸매와 맵시도 생각하여 허리춤을 재보고는 마무리를 한다. 배때기 끈 하나 도톰하게 연결하고 낫 끝으로 밭아서 고르게 펴면 비바람, 눈보라에도 끄떡없는 명품 우의 완성이라.

얼마나 가벼운가. 풀 한 포기가 이토록 소중한 때가 있었다. 이 하나면 물기가 스며드는 일이 없고 썩지도 않는다.

나풀대지도 않아 몸에 착 달라붙으니 농부네 게으름만 탓할 지다. 30년도 너끈하니 공기 소통하나 되지 않은 비닐우의 웬 말이냐. 올 가을 귀향하면 띠 좀 꼭 베어두련다.

a 황토에서 잘 자라므로 겨울에 캔 띠뿌리가 흙을 잔뜩 묻히고 있으니 흙을 잘 씻어내고 물을 넉넉히 잡아 푹 끓여서 며칠 간 나눠마시도록 하면 아이 코피가 감쪽같이 멎는답니다. 서울에서는 경동약령시(경동시장)에 가면 쉬 구할 수 있습니다.

황토에서 잘 자라므로 겨울에 캔 띠뿌리가 흙을 잔뜩 묻히고 있으니 흙을 잘 씻어내고 물을 넉넉히 잡아 푹 끓여서 며칠 간 나눠마시도록 하면 아이 코피가 감쪽같이 멎는답니다. 서울에서는 경동약령시(경동시장)에 가면 쉬 구할 수 있습니다. ⓒ 시골아이 김규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 바로가기를 만들며 고향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올 가을 귀향을 목표로 시골생활을 준비하고 있으며 고향 추억과 맛, 멋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 바로가기를 만들며 고향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올 가을 귀향을 목표로 시골생활을 준비하고 있으며 고향 추억과 맛, 멋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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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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