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이 가다 머물러 있는 산

경남 함양군 백운산 산행을 떠나다

등록 2006.09.11 11:35수정 2006.09.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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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가을이 묻어나는 계절이다. 가을을 더욱더 재촉하는 비가 한차례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지만, 지난 9일 나는 경상남도 함양군 백운산(1278.6m) 산행을 떠나는 토요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아침 8시 10분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산행 기점인 무룡고개(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를 향했다. 우리는 무룡고개로 가는 길에 대곡호라는 저수지로 변해 버린 논개의 생가 터(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를 지났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의로운 논개. 나는 논개의 성이 주씨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는 11시께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무룡고개에 내려 산행을 시작하였다. 가파른 오르막을 20분 정도 올라갔을까. 영취산(1075.6m) 정상에 벌써 이르렀다. 그만큼 무룡고개가 높다는 이야기이다. 산행대장 말로는 무룡고개의 높이가 해발 930m나 된다고 한다.

색색의 산악회 리본으로 장식된 영취산 정상.
색색의 산악회 리본으로 장식된 영취산 정상.김연옥

영취산 정상에는 그곳을 다녀간 여러 산악회들의 리본이 색색으로 긴 줄에 매달려 있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 풍경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영취산 정상을 뒤로 하고 백운산 정상으로 가는 오른쪽 길로 계속 걸어갔다.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촉촉한 숲길을 걷다.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촉촉한 숲길을 걷다.김연옥

함양 백운산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 서하면, 그리고 전북 장수군 번암면에 걸쳐 있다. 흰 구름이 가다 머물러 있는 산이란 이름에서부터 내 머릿속에는 이미 아름답고 깨끗한 한 폭의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푸른 산죽의 부드러운 촉감에 내 마음마저 경쾌해졌다.
푸른 산죽의 부드러운 촉감에 내 마음마저 경쾌해졌다.김연옥

김연옥

그날 안개가 끼어 조망을 즐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평탄한 숲길이 이어져 힘들지 않은 산행이었다. 나는 좁다란 산죽 길을 좋아하는데, 종종 푸른 산죽을 헤치며 나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손길을 스치는 산죽의 부드러운 감촉에 내 마음마저 경쾌해졌다.


나는 일상이 팍팍하면 삶의 경쾌함을 꿈꾼다. 이따금 오래전에 본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를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이유이다.

빗속에서 진 켈리가 노래를 부르면서 우산을 들고 신나게 춤추던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즐겁다. 찰바닥찰바닥 소리를 내며 춤을 추던 그의 탭댄스 장면은 그저 생각만 해도 내 울적한 일상을 조금이나마 경쾌하게 해 준다.


함양 백운산 정상.
함양 백운산 정상.김연옥

백운산 정상에 이른 시간이 낮 12시 40분께. 나는 일행 몇몇과 함께 그곳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낮 1시 15분쯤 절골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계곡에 가까워지면서 매우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나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길게 매어 둔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계곡으로 내려온 시간이 낮 2시 15분쯤.

절골로 하산하는 내리막길.
절골로 하산하는 내리막길.김연옥

나는 간밤에 냉동실에 넣어 꽁꽁 얼린 캔 맥주를 배낭에서 꺼냈다. 산행하는 동안 마시기에 좋게 녹은 맥주를 일행들과 나누어 마셨다. 나는 맥주를 즐겨 마시지는 않는데, 정상에서나 하산 길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맛은 일품인 것 같다.

큰골이라고도 하는 절골의 아름다운 풍경.
큰골이라고도 하는 절골의 아름다운 풍경.김연옥

큰골이라고도 부르는 절골은 물이 깨끗하고 차갑다. 하산 길에 바라보는 계곡물이 아직도 시원하게 와 닿는 것이 계곡에는 여름이 오래 머물다 가는 느낌이 든다.

절골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는 고르쇠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는 파이프들이 늘어져 있어 좀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 걸어가니 백운암이 보였다.

백운암 앞으로 옮겨 놓은 영은사지 부도군.
백운암 앞으로 옮겨 놓은 영은사지 부도군.김연옥

백운암 앞에는 영은사지 부도군이 있다. 조선 말기까지 있었다는 영은사의 옛터에서 부도들을 옮겨 놓은 것이다. 혼자 백운암 안으로 들어서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고요만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백운암에서 나와 계속 걸어 내려갔다. 밤나무가 참 많았다. 문득 생밤을 깎아 드시기를 좋아했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생밤을 즐겨 드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생밤을 즐겨 드시던 어머니가 그립다.김연옥

영은사지 석장승. 커다란 상투를 얹은 우호대장군(왼쪽)과 관모를 쓴 듯한 좌호대장군(오른쪽).
영은사지 석장승. 커다란 상투를 얹은 우호대장군(왼쪽)과 관모를 쓴 듯한 좌호대장군(오른쪽).김연옥

백운암 입구인 영은사 옛터에는 두 개의 석장승이 마주 보고 서 있다. 그것들은 조선 영조41년(1765)에 제작된 영은사지 석장승(경남 민속자료 제19호,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으로 우호대장군과 좌호대장군이다. 사냥과 어로를 금하고 잡귀를 쫓는 수문장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왕방울 같은 큰 눈과 큰 주먹코에 상투를 얹은 우호대장군과 관모를 쓴 듯한 좌호대장군. 입 주위의 수염까지 뚜렷하게 조각된 석장승의 모습은 무섭다기 보다는 왠지 익살스러웠다.

이번 산행은 여느 산행에 비해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가을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었다. 이제 나도 가을 채비를 서둘러야겠다.

덧붙이는 글 | 산행코스는 전북 장수군 무룡고개-영취산-경남 함양군 백운산-절골-백운암입니다.

덧붙이는 글 산행코스는 전북 장수군 무룡고개-영취산-경남 함양군 백운산-절골-백운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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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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