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세상 이겨낸 억척 자원봉사자

[인터뷰] 야채가게하랴 봉사활동하랴 바쁜 이정숙씨

등록 2006.09.12 08:22수정 2006.09.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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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자가 만나고 있는 이정숙씨와 손녀, 손자

기자가 만나고 있는 이정숙씨와 손녀, 손자 ⓒ 김선영

승용차가 채소가게 앞에서 멈춰 선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인터뷰의 주인공 이정숙씨다. 오전 11시에 약속을 하였는데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나타난다.

"구청장님 면담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이에요."

인천 용남시장(남구 용현1동 소재)의 발전을 위해서 용남시장 번영회 최광철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함께 남구청장 면담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그녀는 시장 번영회 초대회장을 거쳐 현재는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상에 문화공간이 마련된 지하주차장 설립을 건의하고 왔다고 한다.

인생을 봉사활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용남시장에서 야채가게를 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이정숙(59)씨도 빼놓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1979년부터 새마을 부녀회 활동을 시작하여 벌써 27년째 됐고, 1989년부터 남구청 여성자원봉사센터 활동을 시작하여 어느덧 17년째에 이르렀다. 여성자원봉사센터에서는 서기 4년, 부회장 4년을 거쳐 현재는 회장을 맡고 있다. 2년 임기를 마치고 투표에 의해 2년 연임되었다.

"봉사활동을 언제 처음 시작하셨어요?"
"용현 2동에 살 때였어요. 1979년에 할아버지들이 오셔서 새마을 부녀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기 아빠 성격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죠. 그랬더니 또 와서 이렇게 노인네들도 일을 하는데 왜 못하냐는 거예요. 할아버지한테 야단 맞고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오다 보니까 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힘이 들어도 잠을 못 잘 망정 봉사를 나가죠. 이것도 하늘의 뜻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수해복구 자원봉사에 다녀왔다. 8월 5일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이튿날 새벽 1시 반에 돌아왔다.

"38명이 1만5000원씩 내서 갔지요. 24집이 다 떠내려가고 없고 두 집만 남았어요. 냉장고니 뭐니 방안에 흙이 꼭꼭 차서 다 닦아내고 고인 것들을 삽으로 밀어내고… 다 빨아서 널어주고 했어요. 가서 봉사를 해주고 오니까 마음은 편해요. 우리가 만든 무공해 비누도 전달하고요."

파주 금촌에 갔을 때는 속옷까지 다 젖어 왔다. 수봉공원, 학익동 수해복구 등 수해복구 나간 일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녀는 남편을 일찍 여의었다.

"남편의 나이 44세 때였어요. 3사관학교 간 애가 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 애가 벌써 이렇게 커서 사관학교를 다녀요."

남편이 건설회사 중기과장을 맡았었는데 토요일에 월급 타서 갖고 오다가 길에서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후 11시쯤 문 닫는 야채가게는 둘째아들이 도와주고 있다. 그녀는 1주일에 한 번씩 새벽 2시쯤에 가락동시장엘 간다. 인천에 돌아오면 새벽 5시쯤. 24시간 중에 잠을 2∼4시간 자고 움직이는 것이다. 토요일엔 독거노인 반찬을 만들기 위하여 시장을 봐야 한다.

"그런데 구청에서 요청하는 영수증이 딱 맞춰서 찍은 영수증이어야지 간이영수증은 안 된다는 거예요. 사업자등록증 있는 재래시장 가게에서 사 갖고 첨부해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마트에서 찍은 영수증만 요청하니 재래시장은 값이 더 싼 데도 물건 팔 걸 못 팔아요."

월요일엔 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가정에 나눠준다. 무공해 비누 만드는 것도 일이다. 그것을 팔아서 독거노인 반찬 해주는 데 보태 쓴다. 남구 노인복지회관 설거지 봉사와 반찬 만드는 봉사도 그녀가 하는 일이다. 연말에는 김장김치 1200봉지를 만들어 불우이웃 200가구에 나누어준다. 병원에 가서 도서 대출 봉사도 한다. 10일간 월드컵 자원봉사도 했다. 한 달이면 쉬는 시간 별로 없다. 야채가게를 하면서 장애인 동생, 손자 손녀를 키우며 27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왔다. 치매가 있는 아버지도 모셔왔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가장 보람됐던 일을 들자면요?"

이렇게 물어보았지만, 이것이 우문이다. 그녀의 봉사활동 중에 보람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장애인 중에 큰 사람들 있는 데가 명심원, 아기들 있는 데가 동심원이에요. 1980년대 세탁기 없을 때 빨랫감 나오는 것 삶고 빨아서 다 정리해 놓고 오고, 오그라진 장애인들 손 등을 주물러서 펴주고, 그 장애인들이 손을 쫙 펼 때 굉장히 보람을 느꼈어요."

어디 그것뿐이랴.

"동심원 청소 다 해주고, 애기들 데리고 나가 바람 쐬여주고… 뜰 안에만 있으니까 바깥을 몰라요."

쉬는 날이 별로 없는 봉사 중에 시립병원 하반신 환자 봉사 나갔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 한 분이 당뇨가 와서 다리가 잘렸는데, 그분 간병을 하고 나설 때 큰 보람을 느꼈다. 하늘을 보니까 뭉게구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독거노인들을 위해 자원봉사 하는 일도 보람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해주는 반찬을 자식도 없는 그분들이 잡숴 주실 때 보람되지요. 보람을 느끼니까 이렇게 힘든데 봉사활동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장사하랴 살림 바쁜데 할 수 있겠어요. 누가 와서 물어봐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남들 놀 때 안 놀고 남들 잘 때 덜 자고 그런 엄마예요."

웬만한 여자는 자녀들 학교 보내고 유치원 보내고 하는 일만 해도 바쁘다고 할 것이다. 셋째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일기장에 '우리 엄마는 효녀 심청이다'라고 썼다고 한다. 밤마다 밤 한 시에 아버지 반찬을 해주고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지런함은 시장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과거엔 용남시장 가자고 하면 택시 운전사들이 모른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간판을 달아놔서 용남시장을 알았다고 택시 운전사들이 말합니다."

'용남시장' 간판은 그녀가 용남시장 번영회장을 맡았을 때 치러낸 사업이다. 동석했던 최광철 용남시장 번영회장이 "재래시장 활성화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라고 귀띔한다.

"저,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항상 이렇게 젊게 살아야지요, 할 일이 많아서…."

2년 뒤면 그녀 나이 환갑, 그러나 아직도 환갑이 멀어 보일 정도로 그녀는 젊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재래시장신문> 8월 2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재래시장신문> 8월 2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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