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주민들이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뜻으로 촛불을 높이 들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팽성은 우리의 땅"
빈 집 철거를 눈 앞에 둔 11일 저녁, 미군 부대 확장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문정현 신부가 '독도의 우리땅' 노래를 개사해 "팽성은 우리 땅"이라고 선창하자 대추리·도두리 주민 100여명은 "우리 땅"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문 신부는 내친 김에 지팡이를 번쩍 들어 어깨춤을 췄고, 마을 주민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췄다. 뒤이어 대학생 4명이 노래와 익살스러운 춤을 선보이자 관객들 사이에서 "한번 더"라는 연호가 터져 나왔다.
마을 주민들이 출연하고 문 신부가 직접 편집한 '해변으로 가요' 개사곡의 뮤직비디오는 주민들 사이에서 대히트를 쳤다. 창고 바깥에서 국방부의 빈집 철거를 걱정하며 연신 담배를 피던 중년 남성들도 스크린 앞으로 몰려들었다.
벌써 741번째... '전국노래자랑' 같은 촛불집회
이날 저녁 7시 30분께 농협창고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전국 노래자랑' 대추리편을 보는 듯 했다. 국방부가 빈집 철거 계획을 밝혔지만 마을 주민들은 변함없이 촛불집회를 열었다.
벌써 741번째 집회라 사회자와 주민들간의 호흡도 척척 맞는다. 지난 5월 대추분교가 쓰러진 이후 두번째 행정대집행인 탓에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집회장 내부만은 웃음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곧 웃음이 사라졌다.
정태화(72·평택 대추리)씨는 "대학생들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어본다"며 "마을 입구를 막고선 경찰들이 동네 사람들 다 버려놨다"고 토로했다. 그는 "멀쩡히 농사짓던 땅도 뺏어가 놓고는 입구에서부터 두세번 검문하니 울화통이 터져 살 수가 있냐"며 "글을 쓰려고 해도 손이 떨려 못 쓴다"고 말했다.
정씨는 1만평 가량의 농지 중 8천평을 미군에 내줬단다. 태어나 지금까지 대추리를 떠난 적이 없는 정씨는 "지난 여름 심어놓은 모는 계속 자라는데, 철조망 때문에 가 볼 수가 있나, 풀만 무성해진 논을 그저 바라볼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난 5월 대추분교를 강제로 부순 데 이어 마을을 또다시 강제로 부순다는 것은 주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며 국방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강제 철거는 정부와 주민간의 전쟁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정부는 더이상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