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에 걸리느니 차라리 뺑소니?

[해외리포트] 일본은 지금 음주운전과의 전쟁중

등록 2006.09.21 14:59수정 2006.09.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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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무차별살인과 같다." 음주운전 사고를 낸 가해자의 회한을 전하고 있는 요미우리신문 19일자 석간. 일본의 각 언론매체가 대대적인 음주운전 근절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요즘 일본은 음주운전과의 전쟁 중이다.

지난 12~18일까지 일본 경찰청은 전국에서 일제히 음주운전 단속을 벌여 1126건을 적발하고 30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방송을 비롯한 각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다보니, 음주운전이 전보다 더 늘어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공무원이 음주운전하고 뺑소니... 어린이 3명 익사

일본에 음주운전에 대한 비판여론이 이같이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25일 이후. 후쿠오카시에서 음주운전 후 뺑소니 사고로 일가족 5명이 탄 차가 바다로 추락했고 이 사고로 어린이 3명이 익사했다. 운전자는 공교롭게도 시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시 공무원(22)이었다.

여론은 공무원이 술을 먹고 운전한 것도 모자라 뺑소니를 쳤다는 데에 분개했다. 공무원들의 기강해이와 도덕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 지자체에서 공무원들의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고를 낸 후쿠오카시 직원은 면직되었다. 검찰은 16일 보통의 음주운전사고시 적용되는 '업무상과실치사죄'보다 엄한 처벌이 가능한 '위험운전치사상죄(최고 20년의 징역)'와 '뺑소니(징역 5년)'를 합해 그를 기소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동승했던 회사원(32)도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체포됐고, 사고현장에 물 2ℓ를 들고 와 사건은폐를 도운 친구도 체포되었으나 둘 다 처분보류로 일단 석방되었다.

음주운전은 최고 징역 20년... 그러나 엄벌 효과는 주춤

일본은 지난 2001년 형법에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신설했다. '알코올·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인사사고를 낼 경우 현재 최고 20년 이하의 징역(2004년 개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매우 엄격한 법이다.

또한 2002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음주운전 기준을 '입김 1ℓ당 0.25㎎(혈중알콜농도 0.05%)'에서 '입김 1ℓ당 0.15㎎(혈중알콜농도 0.03%)'으로 낮추는 등 처벌을 강화했다.

이런 엄벌에 힘입어 음주운전사고는 이전보다 40% 가량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이런 엄벌의 효과는 주춤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경찰청에 의하면, 소량음주에 의한 기준치 미만의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위험성이 일반 교통사고의 4배에 이르고 있다.

이에 경찰청은 음주운전의 기준치를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 수준인 '입김 1ℓ당 0.1㎎(혈중알콜농도 0.02%)'으로 낮추기 위해 연구·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는 입증이 필요하다. 즉, 취한 정도·운전상태·자각의 유무 등을 입증해야 하는데 대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이 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2002년부터 4년간 음주운전사고는 6만5천건 가량 발생했으나, 위험운전치사상죄가 적용된 것은 1% 미만인 약 540건에 불과했다.

이번 후쿠오카시 사고의 용의자도 위험운전치사상죄로 기소되었지만, 그 동안의 판례를 볼 때 체포 당시 음주측정 결과가 입김 1ℓ당 0.25㎎으로 그다지 높은 수치가 아니었고, 속도도 시속 100㎞미만이었던 점 때문에 이 법이 적용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법이 자의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변호인측 입장과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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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뺑소니 건수 증가 추이. ⓒ 일 경찰청 조사 / TV화면 촬영

뺑소니치고 술 더 마신 뒤 자진출두하기도

위험운전치사상죄는 엉뚱한 곳에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뺑소니 사건이 늘어났다. 즉,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들이 일단 뺑소니를 치고 본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당황해서 뺑소니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해설자들은 관련 법들의 형량 차이에서 답을 찾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음주운전으로 위험운전치사상죄에 해당되면 최고 징역 20년의 중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일반교통사고의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뺑소니'로 처리될 경우 두 가지 죄를 합쳐도 그의 1/3 정도인 최고 7년6개월의 징역형에 그친다.

그래서 음주운전사고를 낸 사람들이 일단 뺑소니를 친 후, 술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경찰에 자진출두한다는 것이다. 더욱 악질적으로는, 해당 사고 시간의 음주량을 측정할 수 없도록 뺑소니 후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출두하는 경우도 있다.

살릴 수도 있는 생명을 팽개치고 뺑소니부터 치고보는 사람들의 도덕불감증에 대해 일본인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뺑소니의 고의적이고 악질적인 범죄성에 비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쿠츠카케 테츠오 국가공안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뺑소니의 엄벌화를 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자필 서약서, 금주명찰... 지자체의 자구 노력

공무원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 곤혹스러운 각 지자체들의 자구 노력도 눈물겹다.

나가노현 코모로시는 '시 직원으로서의 자각과 책임을 가지고 음주운전을 절대 하지 않겠음을 굳게 맹세합니다'라는 예문까지 제시하면서 500명의 시직원에게 본인의 날인이 들어간 자필 서약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바라키현도 6000명 전직원에게 임의로 서약서를 제출토록 했다. 야마나시현 기업국은 전직원에게 '오늘은 운전을 해야하므로 마실 수 없습니다'라는 명찰을 배포했다.

97년부터 엄격한 규정을 마련해 실시해온 고치현은 일정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 인사사고 이외에는 자가신고제이므로 공무원 자신들의 양심에 달려있다 할 수밖에 없다.

동승자·음식점 주인에 대해서도 처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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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감지 시스템 인터로크. 입김을 불어서 기준치 보다 낮아야 시동이 걸린다. ⓒ TV화면 캡처

앞으로는 동승자나 술집주인 등 음주운전을 방조하거나 교사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도 처벌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도로교통법에도 음주운전의 방조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형법의 방조죄를 적용해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7월 28일 도쿄지방재판소는 음주운전을 방조한 동료에게 '주의의무를 태만히 했다'며 5800만엔의 배상명령을 내린 바 있다.

카나가와현은 음주운전 차에 동승한 직원 및 교육위원회 소속 교직원도 면직 혹은 정직 처분할 방침이다. 사가현 다쿠시도 동승하거나 술을 권한 직원을 면직시킨다는 방침이다.

한편, 음주운전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갖춘 차량 개발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승차시 음주측정을 마쳐야만 시동이 걸리는 시스템을 장착한 자동차가 TV에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법이 아무리 엄격화되고 시스템이 개발된다고 해서 음주운전을 근절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음주운전은 결국 운전자 자신의 양심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은 결코 해서도, 하게해서도 안되는 비도덕적 범죄임을 자각하지 않는 한 억울한 죽음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일본은 음주운전, 한국은 뺑소니에 무거운 처벌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조사 결과 한국은 일본과 달리 음주운전보다 뺑소니 사고에 훨씬 엄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사고의 경우, 업무상과실치사로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데 반해, 사망사고 후 뺑소니를 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음주운전 기준을 비교해보면 일본이 훨씬 엄격하다.

한국은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이상이면 음주운전으로 간주하지만, 일본은 주로 입김으로 측정해 '입김 1ℓ당 0.15㎎' 이상의 알코올이 검출되면 음주운전으로 간주한다. 이는 혈중알코올농도 0.03% 정도와 맞먹는 수치다.

일본은 최근의 음주운전관련 여론을 의식해 기준치를 북유럽 수준인 '입김 1ℓ당 0.1㎎'(혈중알코올농도 0.02% 정도)으로 낮출 것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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