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나눠 줄 꿈을 꾸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시골살이의 재미를 더해 준 표고버섯...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등록 2006.09.21 10:51수정 2006.09.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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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나온 버섯들입니다.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갓 나온 버섯들입니다. 너무 아름다웠습니다.이승숙
"위잉~~~ 윙윙윙…."


참나무 둥치에서 나무 하나를 뽑아낸 그가 한 발로 나무를 찍어누르며 드릴로 구멍을 뚫고 있다. 드릴 나사가 뱅~ 돌면 참나무는 톱밥을 뱉어내며 구멍 하나를 만들어낸다.

새끼손가락이 들어갈락말락한 구멍을 15㎝ 간격으로 일정하게 뚫는다. 세로로는 15㎝ 간격을 두고 가로로는 또 4㎝(?)쯤 간격을 두고 엇비슷하게 구멍을 뚫는다. 어른 허벅지보다 더 굵은 참나무둥치를 빙 돌리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는데 좀 가는 나무는 좀 얕게 뚫고, 허리통보다 더 굵은 나무는 깊이 구멍을 뚫는다.

구멍마다 일일이 표고버섯 종균을 밀어 넣는 나한테 그가 말한다.

"여보~ 깊은 구멍엔 깊이 넣어."
"왜?"
"깊이 넣으면 몇 년간 계속 따먹을 수 있어."

작년 초봄에 표고버섯을 키우기로 마음먹은 남편은 10만원씩이나 들여 참나무를 구해왔다. 산소 자리를 손보는 집에서 참나무를 벤다는 말을 듣고는 사람 한 명을 사서 나무를 가지러 갔다. 나무는 공짜였지만 그 나무를 트럭에 실어서 집에까지 가져오기에는 장정 두 사람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편은 트럭을 제공하고 한 나절 일 해주는 대가로 십만 원을 주기로 하고 사람 한 명을 고용했다.


1톤 트럭으로 세 차 정도 싣고 와서는 도저히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단다. 간벌한 나무는 많았지만 한 나절 일해 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나무를 두고도 더 이상 가져올 수 없었단다. 그래서 1톤 트럭으로 세 차 정도만 싣고 왔다.

아직 찬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작년 3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한낮에 남편과 나는 표고버섯 종균을 넣을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시골살이 근 8년에 없는 장비는 없다고 자신하는데도 있는 것보다는 없는 장비가 더 많았다. 구멍을 뚫는 드릴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힘으로 억지로 구멍을 뚫으니 너무 힘든지 남편이 그랬다.


밤밭 한 쪽 그늘진 곳에 나무들을 쌓아두었습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차광막을 쳐두었습니다.
밤밭 한 쪽 그늘진 곳에 나무들을 쌓아두었습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차광막을 쳐두었습니다.이승숙
“여보, 저거를 우째 다 뚫겠노? 조금만 하자.”

그러나 표고버섯을 많이 딸 욕심에 눈이 먼 나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니, 언제는 돈주고 나무 사오더니… 저 나무를 그라마 다 우짤라고? 구멍 다 뚫어야지 무슨 소리하노?”

내 보기에 별로 신통찮아 보이는 일에 돈을 쓰는 남편이 약간 얄미워서 일부러 맘에 없는 소리를 팩 질렀다.

하지만 구멍 뚫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참나무 한 그루에 수십 군데의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그 많은 나무의 구멍을 다 뚫다가는 덜덜덜 떨리는 드릴의 진동에 남편의 손까지 다 떨릴 것 같았다. 그래서 반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놔둬 버렸다.

강화로 이사 온 그 해 가을에 아는 집에 놀러갔는데 그 댁 안주인이 집 뒤 곁으로 돌아가더니 표고버섯을 한 소쿠리 따 가지고 왔다. 갓 딴 표고버섯을 손으로 죽죽 찢어서 생으로 그냥 먹었다. 표고버섯은 쫄깃쫄깃하면서도 뒷맛이 달콤했다. 또 입 안 가득 표고의 깊은 향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 날 이후로 우리도 언젠가는 표고버섯을 키워야지, 키워서 이웃과 나눠 먹어야지 생각했다.

표고버섯 종균은 산림조합에서 팔았다. 우리는 참나무 구멍에 일일이 표고 종균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밤나무 숲 속 빈터에 쌓아 두었다.

종균을 넣은 지 2년 정도 지나야 버섯이 나온다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섯이 나오나 하고 가끔씩 둘러봤지만 버섯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가보면 늘 그대로였다. 그래서 우리는 잊고 지냈다.

며칠 전부터 버섯이 나오기 시작했다. 봉긋하게 솟아 나온 버섯은 너무 예뻤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또 다르게 커갔다. 따먹기엔 아까울 정도로 버섯은 곱게 자라났다. 나도 모르게 버섯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무렵에 소쿠리와 칼을 들고 버섯을 따러 갔다. 조심스럽게 칼로 밑둥을 베어내며 버섯을 땄다. 저 쪽에서 그 모양을 보던 남편이 소리친다.

“여보, 버섯을 막 따지 말고 칼로 도려내. 그러면 또 올라오고 또 올라온대.”

갓 딴 버섯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그냥 먹었다. 버섯은 쫄깃쫄깃하면서도 향긋했다.

“여보, 이거 한창 나오면 우리 사람들 부르자. 버섯 파티 한 번 하자.”
“그래. 버섯 나오기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리게 나온다더라. 그러면 나눠주고 그러자.”

버섯 나눠 줄 꿈을 꾸니 벌써 마음이 뿌듯해진다.

첫물 수확한 버섯입니다.
첫물 수확한 버섯입니다.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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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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