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선생님들의 노래가 곡안리 주민들의 한을 씻어 내듯 곡안리 숲에 울려 퍼졌다.김연옥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8월 11일. 그날 하루 동안 미군의 난데없는 무차별 사격으로 성주 이씨 재실에 피신해 있던 노인,어린이,부녀자 등 곡안리 주민 83명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었다 한다.
더군다나 참혹했던 학살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 엄청난 일을 당해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도리어 그동안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 통한의 세월이 벌써 50여년이 흘렀으니, 곡안리 주민들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억울함과 울분이 응어리져 있을까.
한 맺힌 곡안리 사건을 모른다면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곡안리 숲에는 그날 흥겨운 풍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민들은 정갈하게 차려 놓은 뷔페 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철부지' 선생님들이 섬집 아기,오빠 생각,울고 넘는 박달재 등을 부를 때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곡안리 주민들의 오랜 한이 꼭 풀리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우리 일행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콩이 엄마라고 부르는 친구와 단둘이서 억새를 보러 바로 창녕 화왕산(756.6m, 경남 창녕군 창녕읍)으로 향했다.
창녕 화왕산에서 은빛 가을을 보다
콩이 엄마는 유기견 콩이 때문에 나와 더욱 가까워진 사이이다. 지난해 여름, 비가 많이 오던 날에 우연히 직장 앞에서 그 강아지를 발견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여름 내내 돌보며 정성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 콩이 엄마의 시댁에서 잘 자라고 있는데, 늘 내 마음 한 자락에는 콩이가 머물러 있다.
우리는 오후 3시께 화왕산 군립공원 자하곡 매표소를 거쳐 화왕산 산행을 시작했다. 옛날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불뫼, 큰불뫼로 부르기도 했다는 화왕산. 이번이 세 번째 산행이라 낯익은 길이었다. 산행 출발 시간이 늦은데다 은빛 억새로 뒤덮여 있는 십리평원이 보고 싶어 서둘러 올라갔다.
길이 가팔라 이름 한번 고약하게 붙여진 환장고개도 그날은 왠지 힘들지 않았다. 아마 거기에 소박한 모습으로 피어 있던 연보랏빛 쑥부쟁이꽃들의 환한 웃음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