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벤치, 전문가나 만드는 거라구요?

전원주택의 화룡점정, 내 손으로 나무탁자 만들기

등록 2006.10.10 18:50수정 2006.10.1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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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탁자가 있어서 잔디밭이 살아납니다.
야외탁자가 있어서 잔디밭이 살아납니다.이승숙
서울에서 살다가 강화로 이사온 어떤 사람이 집을 구하고 있었다. 마침 적당한 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 집을 얻지 않겠단다.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데 딱 한 가지가 걸려서 그 집을 얻지 않기로 했단다.


"그 집 마당에 잔디를 쫙 심어 놓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집을 안 얻었어요."

잔디가 깔려있는 집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집인데 얻지 않겠다니 참 이상했다.

"아니, 잔디 깔았다고 집을 안 얻어요? 잔디 있으면 보기 좋을 텐데 왜 안 얻었어요?"

옆에 있던 사람이 그리 묻자 그는 "농작물을 심어야 할 땅에 쓸데없는 잔디나 심고, 그게 말이 됩니까?"라며 비분강개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그 사람이 몇 년 뒤 땅을 사서 집을 짓게 되었다. 그는 마당에 잔디를 다 깔았다. 막상 살아보니까 흙마당이 불편해서 잔디를 깔았다는 거다.


마당에 시멘트를 바르거나 잔디를 심지 않는 이상 잡초 때문에 골치를 썩기 때문에 마당에 잔디를 까는 것이다. 그 사람은 처음엔 그걸 몰랐던 거다. 부르주아처럼 잔디를 심은 집에서 산다고 못 마땅해 하던 그가 막상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란 걸 알았던 거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런 꿈을 꿀 것이다.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하얀 집을 짓고 사는 꿈 말이다.


맨 처음 강화로 이사왔을 때 우리도 그런 꿈을 꾸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지어서 그림같이 꾸미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같은 하얀집을 포기하고 오래된 시골집을 수리해서 살고 있다.

헌 집을 수리해서 산다고 해서 옛날 방식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부부는 농사일을 해보지 않아서 흙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우리 집 텃밭에는 온갖 풀들이 자라서 범이 새끼를 칠 정도로 우거지곤 했다.

우리는 어떡하든지 간에 땅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채 앞 텃밭에다 잔디를 심어서 밭을 줄여 나갔다. 잔디마당을 꾸미니까 일이 아주 쉬워졌다.

잔디를 심은 첫 해와 그 다음 해만 신경 써서 풀 뽑아주면 그 뒤부터는 잔디가 세력을 확장해서 관리하기가 아주 쉬워진다. 여름에는 열흘에 한 번 정도씩만 잔디를 깎아주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같은 집에서 살 수 있다.

말 한마디에 행운을 잡다

나사못을 박을 구멍을 뚫습니다. 모든 게 다 이가 딱딱 맞아야 합니다.
나사못을 박을 구멍을 뚫습니다. 모든 게 다 이가 딱딱 맞아야 합니다.이승숙
잔디밭에는 야외 탁자와 파라솔이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그래서 야외탁자랑 파라솔을 구입할려고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찮았다. 그러던 차에 아는 분 집에 놀러갔더니 그림같은 야외탁자가 있었다.

"어머, 이거 정말 예쁘다."

남편과 내가 야외탁자에 앉아서 이곳 저곳을 어루만지며 찬탄을 하자 그 집 주인장이 그러는 거였다.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사실 재료비는 얼마 안 들어요."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요? 이런 거는 전문가나 만드는 거지, 어떻게 만들어요?"
"사실 제가 야외탁자 하나 살려고 알아봤더니 가격이 만만찮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설계해서 만들어봤어요. 같이 하나 만드실래요?"

아이고 이게 웬 행운인가.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말 한 마디에 우리가 바로 그 행운을 거머쥐었지 뭔가.

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살아있는 공부겠지요.
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살아있는 공부겠지요.이승숙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일요일 오전9시(9월 24일)까지 모여서 같이 탁자 만들자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는지 아침도 안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가보니 벌써 두 사람이 와 있었다.

"아 글쎄 마음이 설레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8시 반도 안 돼서 왔어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고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커피를 나눠 마시며 작업할 것들을 챙기고 있는데 저 쪽에서 웬 신사가 오는 게 아닌가.

"아니 복장 불량이잖아요. 일하려는 사람이 신사화를 신고 오면 어떡해요?"
"그러게. 형님, 복장불량이다. 퇴학이다 퇴학. 하하하."

신사화를 벗고 편한 신발로 갈아 신은 그 사람은 늦게 온 벌로 음료수를 한 병씩 쫙 다 돌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야외탁자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5분 만에 일을 끝내다니...

탁자 다리를 맞추고 있습니다.
탁자 다리를 맞추고 있습니다.이승숙
야외탁자를 만들자고 했던 사람이 나무를 사와서 미리 재단을 다 해놓았다. 사실 나무를 모양대로 자르는 일이 큰 일인데 미리 다 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이 한결 쉬웠다.

재단해 놓은 나무들을 가져다가 순서대로 잘 챙겼다. 그리고 나사못을 박을 위치를 찾아 구멍을 뚫는 작업부터 했다. 직각을 맞추고 순서를 잘 챙겨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도록 조심하며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구멍을 다 뚫은 다음에는 나사못을 끼워 나갔다. 작업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고 사장의 유치원생 아들이 맞는 나사못을 척척 대령해 주는 거였다.

"야, 이 놈 머리 좋네. 작업 공정을 다 꿰뚫었어. 다음 순서가 뭔지 다 알잖아."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면서 아이는 혼자서 잘 놀았다. 나무조각들을 이어서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점심 전에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점심 먹고 잠시 쉬고 있습니다.
점심 전에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점심 먹고 잠시 쉬고 있습니다.이승숙
탁자 다리를 다 맞추고 그 다음에 상판을 붙여 나갔다. 이제는 호흡이 척척 맞아서 일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이제는 선수들이 다 됐네. 우리 이러지 말고 주말마다 '알바' 뜁시다. 이 팀 해체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요? 손발이 이렇게 잘 맞는데 해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이구, 그러면 목수들은 다 뭐 먹고 살라고 그래?"

자화자찬하면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 여럿이 함께 손발을 맞춰서 하니까 일이 그냥 막 나가는 거였다. 처음엔 다리 하나 만드는데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나중에 일이 손에 익자 5분 정도 만에 뚝딱 해내는 거였다.

우리는 그 날 야외탁자 4개와 야외 벤치 하나를 공동으로 만들었다.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 4시 30분쯤에 모든 작업을 다 마쳤다.

그 날 만든 야외 벤치입니다. 여기에 앉으면 절로 차 한 잔이 생각납니다.
그 날 만든 야외 벤치입니다. 여기에 앉으면 절로 차 한 잔이 생각납니다.이승숙
그 날 장소를 제공하고 각종 연장에다가 점심까지 다 챙겨준 사람은 야외탁자를 맨 처음 만들어서 선보여 준 그 집 주인장이었다. 그 분은 인천 남동공단에서 제법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시다.

그런데 술을 전혀 못하신단다. 우리나라의 사업관행상 술자리에서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법인데 술을 못하니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어려울 듯도 했다. 하지만 그 분은 그 분 나름으로의 방법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바로 야외탁자 만들기가 그런 인연 만들기의 한 방법이었다. 그날 모인 멤버들은 일부러 모아도 모으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이들이었지만 하루 종일 머리 맞대고 작업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꼭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힘을 합해서 같이 야외탁자를 만든다는 그 뿌듯한 마음에 우리는 서로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잔디밭에 '화룡점정'을 찍다

놀러온 동네 애들이 야외탁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참 좋은 그림입니다.
놀러온 동네 애들이 야외탁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참 좋은 그림입니다.이승숙
그 날 각종 편리를 봐준 그 집 주인장은 맨 마지막까지 선의를 보여 주었다. 다 만든 야외탁자는 부피가 커서 트럭이 있어야만 옮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미리 트럭까지 다 구해다놓고 한 집 한 집 일일이 다 실어다 주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줄 때 생색내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말하자면 하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전혀 생색 안 내면서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밭에 야외탁자가 놓이자 비로소 잔디밭이 제 모습을 하는 것 같았다. 야외탁자는 그림으로치면 바로 화룡점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던 옆집 아줌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앉아보고 가고 또 우리 집에 놀러온 동네 애들은 그 곳에서 공부까지 한다. 누구나 다 쉬어서 가는 잔디밭의 야외탁자, 그 탁자를 볼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주고받던 인심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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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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