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의 미래는 '현대판 고려장'

[재무설계로 재테크 뛰어넘기-17] 사교육비와 고령파산의 깊은 관계

등록 2006.10.12 17:45수정 2006.10.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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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자녀 사교육, 조기유학 열풍은 부모의 노년을 저당 잡고 있다.(자료사진)

자녀 사교육, 조기유학 열풍은 부모의 노년을 저당 잡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박수원

[사례] 월 550만원을 버는 이씨 부부는 기초 생활비로 월 100만원 안팎을 지출한다. 나름대로 알뜰살뜰 생활하는 편인데 매월 저축 한 푼 못하는 재무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많이 벌고 적게 쓰는데 저축은 못 하는 현실. 그 주범은 바로 사교육비다.

이씨 부부는 다른 것은 포기해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이라는 우리나라 부모의 전형적인 교육열을 지녔다. 거기에 맞벌이다 보니 외벌이 가정보다 교육문제에 대한 불안감은 더 크다. 비용을 살펴보니 아직 아이 나이가 어려 양육 도우미 비용으로 130만원, 그 외 영어, 발레,피아노, 수영 등 교육비로 매월 15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거기에 2년 후 '기러기 가정'을 계획하고 있다.

교육비 부담에 허리 휘는 학부모들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5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 학부모의 학교 교육비 부담률은 OECD 평균 0.7%의 4배가 넘는 2.9%다. 사교육비 역시 GDP 대비 2.9%(2002년 통계자료)로 OECD 국가 중 1위이다.

이러한 교육비 부담률은 현재 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할 뿐만 아니라, 일반 중산층 서민들이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라이프사이클상 자녀가 어릴 때는 많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정작 자녀들이 교육비 지원을 적극적으로 희망하는 대학교육 시기에는 교육비 쓸 여력이 없어질 수 있다. 가장의 조기퇴직, 비정규직화 등으로 소득이 줄어들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맞벌이로 소득이 많은 편이지만 2년 후 기러기 가정이 될 경우 이씨는 혼자 벌어 자녀들의 유학비를 부담해야 한다. 일년내 힘겹게 벌어 학비로 대부분 송금해야 할 형편이다.

아파트 팔아서라도 조기유학 보내겠다?


그런데 이씨 부부는 만일 어려우면 다시 돌아와 맞벌이를 유지하면 되고 그도 어려우면 분당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서라도 교육시키겠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아이들 교육과 유학을 위해 집과 부부의 인생 전체를 걸고 곡예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유학생활을 어렵게 하고 돌아오면 아이들이 청년실업자가 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영어 때문에 힘겨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란 기대심이 곡예를 결심한 가장 큰 동기였다.


그렇게 막연한 기대 속에서 교육비를 지출하고 그에 맞춰 부부의 직업도 소득도 다 결정하겠다는 커다란 희생정신과 자녀에 대한 애정은, 지금 이씨 부부의 소득구조와 자산구조를 봤을 때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지금 살고 있는 분당 아파트는 시가로 7억원 가량이고 맞벌이로 버는 소득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것만 믿기에는 지금 재무구조가 대단히 불안하다. 무리하게 마련한 내 아파트로 담보 대출만 3억원. 매월 이자만 150만원씩 나가고 있다.

화려한 교육은 불안한 미래를 낳는다

이 집만 처분해도 2년 후 기러기 가정을 꿈꿀 수 있을까? 집을 팔아 가장 혼자 살 전셋집으로 이주하고 2억원을 남겨 유학자금으로 쓰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자리 잡는데도 돈이 필요하고 남편의 연봉 3000만원도 유학비용으로 고스란히 나가게 돼 당장 지출 메우기도 빠듯하다.

한 마디로 인생이 길다는 전제는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직업은 전산계통인데 직업수명이 짧아 50대에는 불안한 소득구조일 것이 뻔하다. 결국 이씨 가정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교육에 대단히 화려하게 투자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에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렇게 아이들 교육까지는 부모의 희생정신으로 가까스로 마친다 하더라도 남은 문제는 부부의 노후다. 집까지 팔아 아이들 교육에 전부 올인했고 버는 돈은 버는 대로 다 써버렸는데 은퇴 후 100세까지 살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준비 안 된 노후는 파산으로 이어져

a 준비 안된 노인층에게 의학 발달은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자료사진)

준비 안된 노인층에게 의학 발달은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시연

서울중앙지법에 올 8월까지 접수된 개인 파산 사건은 2만 7269건으로 지난해 전체 건수 1만 7772건보다 53%가 늘어났다고 한다. 이 중에 주목되는 점은 노인들이 의료비 부담 때문에 개인 파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인 파산 원인 중 '병원비 지출'이 2004년에 1.3%, 2005년에는 3.2%, 그리고 2006년에는 6.8%로 매년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들어간 우리나라는 그 과정이 초고속이었다.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가는 시간도 다른 선진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라 개인이나 국가가 미처 준비할 틈이 없다.

따라서 앞으로 병원비 지출과 관련된 노인 파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씨 부부와 같이 교육비 지출이 많은 30대, 40대 가장은 노후 자금을 제대로 준비할 여력이 없다.

앞으로 초국가적인 복지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준비 안 된 노인층은 아파도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현대판 고려장' 현상을 낳을 수도 있다.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하지도 못하고,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그나마 자신들도 살기 어려운 자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노인들에게 의학 기술 발달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교육비 때문에 금융채무 불이행 연체까지...

9월 25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우제창 의원과 채수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1월 1일부터 2006년 7월 31일까지 신용회복지원 신청자들의 총연체발생건수 122만 7301건 중 10.6%인 13만 353건이 교육비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는 생활비와 병원비 등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쓰기 위해서 연체한 것이 아니라, 이씨 부부처럼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지나친 교육열과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발생한 연체라고 한다.

물가 상승률을 초과하는 과도한 교육비 상승률, 남이 하니까 덩달아 따라하는 왜곡된 교육관, 아기 때부터 시작되는 초고액 영재교육, 부르는 것이 값인 강남의 영어학원, 무분별한 조기 유학,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못 배운 삶을 보상 받으려는 심리, 학원에만 보내 놓으면 자녀들이 알아서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착각 등등.

우리의 사교육비 지출은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있고, 그 왜곡된 시장에 휘둘릴수록 우리의 노후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비참해지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자녀에 대한 합리적인 교육관을 수립하고, 자신의 소득 흐름에 맞는 비용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초고령사회가 재앙이 아닌 축복된 미래로, 노인들이 사회의 어른으로 공경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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