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국이 죽은 지 1년이 지났어
군의료 개선에 돈 들인다지만..."

[노충국, 그 후 1년 ①] 충성의 대가는 무엇이었나

등록 2006.10.22 13:01수정 2006.10.2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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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놈아, 네 친구는 오늘 장가 간단다. 그걸 보고 애비는 어떻게 몸을 가눠야 할지 모르겠다."

21일 오전 10시께 대전 국립현충원. 노춘석(63)씨는 고인이 된 아들 노충국(향년 28세)씨의 묘비 앞에서 아들을 원망했다.

노씨는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가는 길에 노충국씨를 보러 왔다. 오열하던 노씨의 연두빛 넥타이와 쑥색 양복은 그가 꼭 안은 아들의 회색 대리석 묘비와 어울리지 않았다.

"친구는 '뭐하러 (결혼식에) 오냐'고 손사래를 치는데, 안 갈 수가 있나"라며 아들을 위해 준비한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화장된 아들이 있는 대전을 들렀다 아들 또래의 결혼식에 참석하려니 술의 도움 없이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군 제대 2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 숨진 고 노충국씨 1주기를 앞두고 2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은 아버지 노춘석씨와 어머니 조경혜씨가 국립묘지에 안장된 아들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군 제대 2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 숨진 고 노충국씨 1주기를 앞두고 2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은 아버지 노춘석씨와 어머니 조경혜씨가 국립묘지에 안장된 아들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노씨는 "요즘도 새벽 5시까지 잠을 못 잘 때가 많아 술을 자주 마신다, 혹시나 충국이가 돌아올까봐 문도 안 잠근다"며 소주 4∼5잔을 한숨에 들이켰지만 안색에 변화가 없었다.

오는 27일은 아들이 죽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 지난해 6월 24일 육군 탄약사령부를 만기 제대한 아들은 2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아파 죽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아들을 뒤로 한 채 아버지는 치료에 좋다는 민간 요법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들은 마지막 말도 제대로 못 남기고 10월 27일 거창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노충국씨에 대한 <오마이뉴스>(10월 24일)의 첫 보도가 나간지 3일만이었다.


"군 당국의 진심어린 사과 듣고 싶었다"

고 노충국씨의 아버지 노춘석씨가 2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아들의 묘 앞에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고 노충국씨의 아버지 노춘석씨가 2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아들의 묘 앞에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2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거쳐 전주로 향하던 노씨 부부와 동행했다. 노씨는 대전으로 향하는 2시간 동안 아들이 죽은 이후 변화된 그의 근황을 들려줬다.


노씨는 간판 제작을 하는 친척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마냥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라며 취재진을 만나자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일은 바쁘지만, 술을 끊기는 쉽지 않았다. 술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아내가 답답한 듯 얼굴을 딴 곳으로 돌렸다.

노씨는 "지금까지도 어떤 군 당국자도 찾아와 아들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한 것을 사과하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나타냈다. "장관이 국회 나와서 고개 숙였다고 하지만, 의원들이 추궁하니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냐"며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이 죽은 뒤 국방부·육군본부·보훈처 등을 찾아다녔지만 당국은 "안 된다", "모른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그러다 진료기록지의 '위암 의증'이라는 말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혀지자 그제서야 뒤늦게 해당 군의관 징계에 이어 장관이 나섰던 것이다.

지난 8월 노씨는 진료기록지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중인 이아무개 군의관에 대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진실을 밝히려 한 것이지, 군의관 개인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들 잃은 아버지에서 군 의료 개선 활동가로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목소리를 낮추던 그가 군 의료 개선으로 주제를 옮기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간 군 의료 개선 관련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는 등 그 분야의 '활동가'로 변신했다.

"과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미래를 이야기하자"던 노씨는 "국방부가 (군 의무체계 개선을 위해) 1조3000억원인가를 쓴다는데, 글쎄…"라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엄청난 돈이지만, 의사도 장성급으로 교체하고 통합병원 장비도 사려면 전국 60만 장병들을 위해서는 적은 돈 아니냐"고 덧붙였다.

군 제대 2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 숨진 고 노충국씨의 묘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있다.
군 제대 2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 숨진 고 노충국씨의 묘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는 의료체계 개선도 중요하지만, 군대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했다. 30여년 전 카투사에 복무했던 그는 "미군은 제초 작업 중에 벌에 쏘이기만 해도 헬기를 동원해 병원으로 후송시켰다"며 "우리 나라는 선진국이라면서 왜 그런 의식을 갖지 못하냐"고 꼬집었다.

아들의 사인을 밝히려 군병원 등을 찾아다녔던 그는 "우리 나라 군의 의료장비는 50년대 그것들과 다른 것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들의 내시경 사진 원본을 외부로 가져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복사를 부탁했지만, 칼라 복사기가 없어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흑백 복사본을 받았을 때 그는 어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내놓은 군 의료체계 개선을 놓고 조목조목 따졌지만, 일행의 차가 국립현충원에 도착할 무렵 "그래도 충국이가 죽은 이후 군 의료체계가 점진적으로 개혁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군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잘 받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할 것 아니냐"고 인터뷰 내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고 노충국씨 사건 일지
죽음부터 군 의무발전계획 발표까지

2005년 6월 24일 노충국씨 제6탄약창 만기 제대
2005년 7월 7일 서울 모 민간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
2005년 7월 중순 서울 모 대학병원에 입원
2005년 8월 2일 서울 남부보훈지청에 공상군경 등록신청
2005년 9월 초 퇴원, 논산의 한 사찰에서 요양
2005년 9월 중순 노씨 상태 악화, 서울 모 대학병원 재입원
2005년 9월 30일 노씨 퇴원. 덕유산에서 투병
2005년 10월 24일 노충국씨 사연 <오마이뉴스> 첫 보도
2005년 10월 25일 보도 하루 만에 성금 500만원 돌파. 윤광웅 국방, 대정부질문에서 "최선 다했다" 해명
2005년 10월 26일 국방부 노충국씨 외래의료진료기록지 공개
2005년 10월 27일 노충국씨 오전 7시 경남 거창 서경병원에서 사망
2005년 10월 28일 국방부 애도 표현 및 노씨 사망 진상조사 실시 발표
2005년 10월 29일 제6탄약창 관계자 노씨 빈소 방문. 유가족 조문 거부
2005년 10월 31일 고 노충국씨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을 위한 비대위 발족
2005년 11월 1일 윤광웅 국방, 국방위에서 노충국씨 사망 관련 공개사과
2005년 11월 23일 노충국씨,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
2005년 12월 20일 노춘석-노충국 부자,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로 선정
2006년 1월 5일 국군의무사령부,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 발표
2006년 2월 8일 국방부, 3월부터 '군 의무발전 추진위원회'를 운영하기로 발표
2006년 8월 31일 국방부, 전 장병의 건강검진 실시 의무화 등 군 의무발전계획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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