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자
7,80년대쯤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독서하는 소녀'. 지금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에는 애써 남아 있다. 이승복 어린이 동상과 함께 '독서하는 소녀'가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것은 70년대 새마을 운동 때.
"엄마, 저애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언제나 책만 읽으면 1년에 몇 권을 읽을 수 있을까요?"
소녀 앞을 함께 지나던 딸아이가 묻는다. 글쎄? 모르겠네? 아이의 아이 같은 질문에 딱히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동화책의 갈증이 컸던 어린 시절 생각을 하며 딸아이는 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열정적인 책읽기를 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아이는 올 봄부터 '책을 많이 읽는 것'을 목표 삼아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그 다독을 뒷받침 해줄 독서록 작성에 열심이다. 그리고는 봄이 가기 전 어느 날 '동장'을 가져다주더니 '은장', '금장'을 몇 달 간격으로 받아와 어깨를 으쓱였었다. 머잖아 학교를 상징하는 이름이 들어간 '개나리장', '소나무장', '세솔장'을 타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책을 많이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해!"
'독서하는 소녀'와 '초등학교 4학년 그 해 여름'을 추억하다
비나 눈이 올 때도, 우리들이 학교를 비운 방학 때도 반공소년 이승복과 함께 교정을 지키던 소녀는 언제나 책을 읽고 있었다. 소녀는 가장 잘 보이는 조회대 옆에 있어서 조회를 할 때는 물론 등하교 때나,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놀 때도 자주 마주치곤 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나도 저애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언제나 책을 읽고 있는 소녀처럼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독서하는 소녀'를 교정에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싶어도 책이 없는 가난한 시골 아이여서 늘 낯선, 먼 나라 아이였다.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4학년 때까지 내 몫으로 가진 동화책이 한권도 없었다. 그래서 소녀가 읽고 있을 동화책은 부잣집 아이나 누릴 수 있는 부러움 일뿐.
동화책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학교 도서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꽤나 큰 그 학교에는 제법 갖추어진 큰 도서관이 있었다. 하지만 활짝 열려있는 날보다 닫혀있는 날이 더 많았다.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도서관 앞에서 자주 서성거렸다.
지금의 아이들이라면 도서관 문이 왜 닫혀있어야만 하는지를 선생님께 따져 물었겠지만 그때 우리들은 왜 그렇게 순진했던지!
그래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렵게 빌려 읽은 책은 고작 5,6권쯤? 설렘으로 책을 빌리러 갔다가 반납하려고 가져갔던 책을 다시 가지고 풀죽어 돌아온 기억이 더 많다. 언니나 동생들도 책을 빌려 온 기억이 거의 없고 보면 아쉽고 씁쓸한 기억속의 초등학교 도서관이다.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는 가난한 시골아이. 늘 닫혀 있던 도서관. 이런 내 아픔에도 아랑곳없이 언제나 책을 읽고 있던 소녀. 그래서 어린 마음에 소녀가 더 멀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가는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았지만 볼 때마다 여전히 낯선 소녀였다.
'나도 저애처럼 실컷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난 언니 오빠의 교과서를 주로 많이 읽었었다. 언니의 교과서에는 내 책보다 차원 높은 재미있는 동화들이 실려 있었기에. 이런 나에게 어느 날 많은 책이 생겼다.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몇 번이고 내 맘대로 실컷 읽을 수 있는 소년소녀 명작동화 5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