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인 줄 알았더니 '펜'이었잖아!

[자전거세계여행 현장보고 42] 9월 5일 인도 콜카타-뉴델리 4일차

등록 2006.11.07 17:15수정 2006.11.0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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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스쿨버스. 귀여운 꼬마들이 10명은 넘게 타고 있었다.

스쿨버스. 귀여운 꼬마들이 10명은 넘게 타고 있었다. ⓒ 박정규


어안이 벙벙한 일을 당했다. 잠시 바나나를 먹으며 쉬고 있는데 동네 꼬마들이 자전거 주위를 둘러쌌다. 인사를 하자 꼬마들이 왼손바닥에 오른쪽 엄지, 둘째손가락을 붙인 채 뭔가를 쓰는 '행동'을 한다.

'사인'해 달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펜'을 꺼내는 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갑자기 표정들이 조금 달라지면서 점프까지 해가며 내 손에 든 '펜'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 '펜'을 달라는 거였나?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조금 두려움도 느껴, 나도 모르게 펜을 15m 뒤쪽에 던져버렸다. 모든 아이들이 펜을 줍기 위해 뒤쪽으로 달려갔고, '포위망'은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이 기회를 이용해 오르막을 전력질주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2006년 9월 5일 화요일 콜카타-뉴델리 4일차 맑음

08시 20분 기상. 오전에 여행기 정리 후 시계를 보니 11시다. 출발이 너무 늦어 버렸다. 서둘러 짐을 싸고 거리로.

13시 35분. 어제 갔었던 인터넷 카페

이왕 늦은 거, 할 일 다 하고 가자는 심정으로 인터넷 카페에 왔다. 한글도 잘 안 되고, 속도도 느려서 점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낄 때쯤, 메일 보내기 성공. 90분이나 걸려버렸다. 밖으로 나왔는데, 안장이 뜨거울 정도로 햇볕이 강렬하다.


a 인터넷카페 외부. 저 안이 인터넷 카페

인터넷카페 외부. 저 안이 인터넷 카페 ⓒ 박정규

골목을 빠져나와 조금 넓은 도로로 나왔는데, 한 대의 자전거가 뒤에 뭔가 커다란 '짐칸' 같은 걸 달고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다. '짐칸'을 분석해보자면, 가로 2m, 세로 1m, 높이1m 50cm 정도 크기의 개방형. 좌우에 긴 '쇠막대기' 세로로 3개, 가로로 2개가 천정의 '둥그런 양철지붕'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40~50cm 정도 되는 높이의 좌석 2개가 가로방향으로 마주보고 있다.

조금 놀란 건, 그 안에 10명이 넘는 귀여운 꼬마 친구들이 타고 있다는 사실. 모두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서, '등교 중'인 것 같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까지 같은 '자전거'를 여러 대 보았다. 아무래도, 이 마을의 '스쿨버스'인가 보다.


'스쿨버스'를 만날 때마다, '혼'을 울리며 꼬마친구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꼬마 친구들도 내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여주었다.

14시. 도로변 간이슈퍼

물 한 병, 콜라 한 병을 구입하는데, 처음에 25RS를 요구한다. 물 한 병에 보통 '12RS', 작은 병 콜라 한 병에 '8RS'인데, 돈을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인도 와서 내가 잘 하게 된말, '저, 알거든요'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 샀던 '정상가격'을 이야기하자 아저씨가 쉽게 '23RS'를 달란다. 정상 가격인 줄 알고 흐뭇해하며 달리다가 생각해보니 '3RS'를 더 준 사실을 알았다. 순간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a 소가 나뭇잎을 뜯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저런 '보호물'을 많이 만들고 있었다.

소가 나뭇잎을 뜯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저런 '보호물'을 많이 만들고 있었다. ⓒ 박정규

조금 더 달리자 한적한 시골 길이 나왔다. 도로 좌우에는 녹색 풀이 듬성듬성 나 있다. 도로 오른쪽 들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벽돌로 가운데가 텅 빈 '원형 구조물'을 만들고 있다. 1m 40cm~1m 60cm 높이의 '원형 구조물'은 많은 소들의 '공격(?)'에서 어린 나무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다가 무심코 오른쪽을 봤는데, 다리 아래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에 녹색풀이 조금씩 덮여 있다. 작은 동네 목욕탕의 '냉탕' 크기만큼의 '움푹 파인 돌바닥' 사이사이에는 물이 조금씩 고여 있고, 그 주변에는 가축들이 풀을 뜯어 먹거나 물을 마시고 있다.

a 사람과 동물.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사람과 동물.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 박정규

때마침, 어린 아이 한 명이 긴 작대기로 물을 '탁'하고 내려쳐서 물의 파편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 장면과 주위의 '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인도 달력 '8월'호를 만들어도 멋질 것 같다.

한 마을을 들어섰는데, 나무 그늘 아래 지금까지 본 소들보다 조금 날씬한 하얀 소와 누런 소가 쉬고 있다. 건너편 나무 아래에는 '임시 휴식 공간'이 있다. 제작과정을 추측해보자면, 거친 나무를 깎아서 앞뒤에 큰 나무 기둥 2개, 좌우에 조금 작은 기둥을 3-4개씩 땅에 고정시킨 후, 그 위에 삼각형 뼈대를 올린다.

다시 그 위에 '지붕' 대신, 누런 식물 줄기들을 촘촘히 덮어 놓는다. 마지막으로 그 아래 나무 평상을 놓으면, 멋진 '임시 휴식 공간'이 완성. 잠시 누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그냥 사진만 찍고 다시 출발.

a 임시 휴식 공간

임시 휴식 공간 ⓒ 박정규


15시 15분. 19km. 도로 나무 그늘 아래

마을을 벗어나자, 아주 큰 나무가 나타났다. 아까 본 '임시 휴식 공간'이 생각나서 자전거를 나무 아래 세우고 잠시 휴식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완만한 포장도로의 시골 길을 달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어이~ 어이~'하면서 많이 쉬어 갈 것을 제안했지만……. 이상하게 그냥 계속 달리고 싶어서, 대부분 거절했다.

가끔, 메모하는 사이 인근 주민 10여명이 구경을 하기도 했는데, '속도계와 자전거 변속기어'를 가장 신기해했다. 물론, 허락도 없이 기어변속을 시도하고, 속도계를 만지는 건 예사였다. 출발하기 전에 항상 변속기를 확인하고 출발해야 한다. 한 번은 확인을 하지 않아서, 출발 직후 잘못된 기어 때문에 균형을 잃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a 나는 저 큰 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했다.

나는 저 큰 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했다. ⓒ 박정규


18시 20분. 55.2km 마을

주민에게 숙소를 문의했는데, 15km는 더 가야 한단다. 해는 져서 점점 어두워지고, 배도 고프고, 페달링에 점점 힘이 빠져간다. 그래도 가야한다.

18시 40분. 57km 산 도로 오르막.

좀 전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55km 지점에서 산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멈춰 서서 바나나를 먹고 있는 사이에 동네 꼬마들이 어느새 따라와 자전거 주위로 둥근 원을 만들었다. 인사를 하자, 꼬마들이 왼손바닥에 오른쪽 엄지, 둘째손가락을 붙인 채 뭔가를 쓰는 '행동'을 한다. 아까도 저런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봤었는데…….

인도식 '수화', '인사'인가? 모르겠다. 잠시 생각해보니……. '사인'해 달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펜'을 꺼내는 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갑자기 표정들이 조금 달라지면서 '점프'를 해가며 내 손에 든 '펜'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 '펜'을 달라는 거였구나.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조금 두려움도 느껴, 나도 모르게 펜을 15m 뒤쪽에 던져버렸다. 모든 아이들이 펜을 줍기 위해 뒤쪽으로 달려갔고, '포위망'은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이 기회를 이용해 오르막을 전력질주했다.

5분 정도 달리자 걸어오던 아이들은 포기하고 자전거 2대 만이 끈질기게 따라왔다. 다행히 10분 정도 지나자 그 자전거도 돌아갔다. 안심하고, 커브 길을 돌아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20m 앞 오른쪽 돌난간에 꼬마 친구 두 명이 앉아 있다. '설마, 그 친구들일까? 아니겠지?'

서로 얼굴이 보이는 곳까지 다가가자, 또 '펜'을 달라는 '행동'을 한다. 마지막까지 따라온 친구들인 것 같다. 그냥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없다'라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지나간 뒤로도 아쉬운 표정으로 날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a 굉장히 간편한 복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아저씨

굉장히 간편한 복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아저씨 ⓒ 박정규

더 이상 꼬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위쪽에서 아저씨 한 분이 걸어 내려오고 있다. 그 아저씨도 대뜸 날 보더니, '펜'을 달라는 '행동'을 한다. '펜' 때문에 지친 상태라 그냥 고개만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그분은 의외로 쉽게 포기하고 길을 내려가셨다.

'펜' 한 자루를 얻기 위해, 20m 비탈길을 달려 올라온 친구, 간절한 눈빛으로 대뜸 내게 '펜'을 달라던 아저씨의 모습이 쉽게 잊혀 지지 않았다…….

18시 55분. 여전히 산 오르막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속도계의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지속적으로 트럭이 지나가서 갈 길을 비춰주고 있어 다행이다. 야간 주행 시 뒤쪽에 다는 깜빡이 조명을 앞에 달고 각도를 잘 조정하니까 50cm-1m 앞이 식별할 수 있을 만큼 희미하게 보인다. 이대로 장거리를 달리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천천히 서행하다가 캠핑할 곳이 나타나면 멈춰야겠다.

a 야간주행. 5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속을 달렸다.

야간주행. 5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속을 달렸다. ⓒ 박정규

50분쯤 달리자 오르막이 끝나고 능선이 나타났다. 멀리 작은 불빛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작은 집 앞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왼쪽 '아궁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작은 주전자'가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고, 오른쪽 '나무선반' 위 유리병 안에는 길쭉한 토스트와 우유 맛 '비스킷'이 '촛불' 아래 줄지어 서 있었다.

일단, 심하게 배가 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짜이' 한 잔과 '토스트 네 쪽, 비스킷 두 개'를 주문했다. '짜이' 한 모금 마시고, '토스트'를 입 안에 넣었는데,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느껴질 만큼 맛있다. '아궁이'에서 새어나오는 빛과,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 한 자루'의 빛이 피곤에 지친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잠잘 곳을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모텔은 아직 멀었다며 여기서 자고 가란다. 잠잘 곳을 보여주는데……. 자기 집 바로 옆, 다 무너진 집 앞 '판자' 위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자전거는 어디다 주차하느냐고 물어보니까, 그 옆 벽에다 하면 된다고……. 배려해 주신 건 감사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좀 더 달려보기로.

21시 5분. 67.4km 마을 평지.

한 건물이 나타났다. 집 앞에 나와 있는 '아저씨'에게 잠잘 곳을 문의하니, 자기 집에서 자고 가란다. 잠잘 곳을 안내해주셨는데 집 앞 오른편 '돌 평상'이었다. 자전거는 벽 옆에 주차하고 자물쇠 채워 놓으라면서, 이미 할아버지 한 분이 이불도 없이 주무시고 계셨다. 더 달리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너무 개방된 공간에서 자기도 그렇고…….

a 돌 평상에서 달을 보며 바람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돌 평상에서 달을 보며 바람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 박정규

잠시 후 날 위해 이미 자고 계시던 분을 다른 곳(?)으로 쫓아버리셨다. 동네 분인가 보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데 그냥 자고 가자는 생각에 '중요한 짐'을 풀어 돌 평상 아래에 넣고 방수 천으로 덮어 놓았다.

자전거는 자물쇠로 채워두고, 매트리스와 슬리핑백만 가지고 돌 평상 위에 올라가 앉아 있으니까 주인아저씨가 와서 "음식 좀 드실래요?"라고 물어보신다. 물론 나의 대답은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잠시 후 '매운 카레, 밥, 룬티 2장'을 가져다주셨다. 맛있게 밥을 먹고, 달을 바라보면서 시원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수첩

1. 이동경로: MIRZAPUR - REWA

2. 주행거리: 67.4km / 미기록

3. 경비: 143RS
점심: 20RS / 바나나 10개: 16RS / 물 1리터 6병, 콜라: 83RS/ 짜이 세 잔: 6RS / 토스트 4쪽: 8RS / 우유 비스킷 2개:10 RS

4. 음식
점심: 롤티 3장(밀가루 반죽한 둥근 접시 모양의 빵), 밥(작은 접시)
저녁: 롤티 2장, 밥(작은 접시), 매운 카레
간식: 물4통, 짜이 세 잔, 토스트 4쪽, 우유 비스킷 2개

5. 신체: 전체적으로 피곤하고 약간의 콧물과 두통.
6. 환율: 1달러 = 45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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