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적려유허비 비각(능주)이정근
"나는 참으로 죄인이오."
고개를 떨어뜨린 조광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평화스러운 고을 능주에 어명으로 포장된 살육의 장이 마련되었다. 조광조가 붕당죄로 의금부 감옥에 하옥 된지 딱 한 달. 능주에 유배 된지 20일 만에 조광조를 사사하라는 어명이 떨어졌고 오늘이 그 명을 집행하는 날이다.
"사사의 명만 있고 사사의 글은 없소?"
조광조의 항변에 금부도사 유엄이 쪽지 하나를 보여줬다.
"내가 전에 대부(大夫) 줄에 있다가 이제 사사받게 되었는데 어찌 다만 쪽지를 만들어 도사에게 부쳐서 신표로 삼아 죽이게 하겠소?"
조광조의 뜻은, 임금이 모르는 일인데 조광조를 미워하는 자가 중간에서 마음대로 만든 일이 아닌가 의심한 것이다.
"죄인은 무엄하게도 어명을 따지려 드는 것이오?"
"도사를 불신한 것이 아니오니 너무 노여워 마오. 그래 지금 정승에는 누가 있고 심정은 어느 벼슬에 있소?"
"남곤 대감이 영상에 계시고 금부당상은 심정대감이시오"
"그렇다면 내 죽음은 틀림없소."
조광조는 체념했다. 그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죽음은 불을 보듯 뻔했다. 모든 것을 단념한 조광조는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연주산에 걸쳐있던 흰 구름이 날개가 되어 흘러간다.
"조정에서 우리를 어떻게 말하오?"
"왕망(王莽)의 일에 비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조광조의 입가에 서리던 웃음이 바람에 날려간다. 자신을 천하의 간웅 왕망에 비한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왕망을 입술에 올리는 자들이 오히려 왕망이로다. 조광조의 눈이 빛났다.
"왕망은 사사로운 일을 위해서 한 자요. 군자가 대의를 쫒다 죽음을 받았소만 죽으라는 명이 계신데도 한참 동안 지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오늘 안으로만 죽으면 되지 않겠소? 내가 글을 써서 집에 보내려 하며 분부해서 조처할 일도 있으니 마무리가 끝나고 나서 죽는 것이 어떻겠소?"
머뭇거리던 금부도사 유엄이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