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정근
조광조를 태운 함거가 숭례문을 빠져나오자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안타까운 눈빛이다. 그 눈빛에는 신무삼간에 대한 증오의 눈빛도 섞여 있었다. 방책을 두른 함거에 손을 넣어 조광조의 손을 만져 보려고 소동이 빚어졌다. 그래도 의금부 군졸들이 심하게 다루지 않았다. 청파역에서 길라잡이를 앞세운 의금부 군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 당시 한양외곽에는 삼남지방으로 가는 청파역과 관북지방으로 가는 송우역이 중앙역 구실을 했다. 역에는 말 타고 달리는 파발과 걸어서 움직이는 보발이 있었다. 지역 지리에 익숙한 이들이 안내자 역할을 했다. 유배행렬은 죄인을 태운 함거와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보발이 나섰다.
한강을 건너는 거룻배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궁성과 함께 삼각산이 눈에 들어왔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에 입성할 때 높고 푸르기만 하던 삼각산이 초라하다. 강물을 바라보니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산천은 의구하건만 자신만 변한 것 같았다. 알성시에 나아가 임금의 마음을 흔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죄인이라니 도대체 믿어지지 않았다.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를 추구했던 조광조
나루터를 떠난 거룻배가 강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다. 물이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물이 무서웠던지 수레를 끌고 가는 소가 두 눈을 껌벅이며 조광조를 쳐다본다. '나는 무서워 죽겠는데 대감은 무섭지 않느냐?'는 눈빛이다. 조광조의 입가에 비치던 웃음이 강바람에 날아간다. 함거에 홀로 앉은 조광조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 많은 물들도 출발은 각기 달랐겠지? 금강산에 떨어진 빗방울, 여주, 이천 평야를 적시고 흘러내린 물, 용문산 골짜기에서 졸졸거리던 물. 하지만 뭉쳐서 한곳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이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맞아, 빗방울이 강을 만나 물답게 잘 다스려졌기 때문이겠지. 지금 흐르고 있는 이 물은 천방지축으로 뛰던 빗방울이 아니고 잘 다스려진 물이야.'
임금도 인간이고 백성도 인간이기에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를 지향하는 지치주의로 가자고 굳게 다짐했던 임금이 야속했다. '지금 이 순간 임금은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의 인간일까? 지금 이 순간 나 조광조는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의 인간일까?' 곰곰이 생각할수록 회의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