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는 마땅당, 친정살이는 부당당?

맏딸인 제가 병든 친정부모 모시기로... 부모 모시기에 아들, 딸이 따로 있나요?

등록 2006.11.21 14:28수정 2006.11.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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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왜 친정부모를 모셔? 아들은 뭐하고?"
"사위가 미쳤다고 처가살이를 하나? 보리쌀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는 말도 몰라?"
"예로부터 딸네 집과 변소는 멀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죽하면 친정부모가 딸네 집에 얹혀 지내겠냐. 말도 안되는 일이야."
"아들 밥은 앉아서 먹고 사위 밥은 서서 먹는다는 말도 못 들어 봤니?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거야."



병든 노부모 누가 모셔야 할까요?

오붓하게 사시던 시절의 친정 부모님.
오붓하게 사시던 시절의 친정 부모님.김혜원
6년 전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4년 전 병환으로 누워 계시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친정 아버지와 엄마는 결혼 후 처음으로 두분만 사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결혼 후 40년 만에 가져보는 둘만의 시간, 이미 노부부가 되었지만 부모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서 놓여난 두 분은 그동안 못 해보던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듯 했습니다.

5년 전 엄마가 관절염으로 양쪽 무릎 수술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자식들 중 어느 누구도 친정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자식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멀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무릎관절 수술 이후 자식들은 두 분의 노후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1남 3녀를 두셨지만 세 딸들은 모두 결혼해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입장이고, 하나 있는 아들도 직장 때문에 미국에 살고 있다보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해진 엄마를 돌볼 만한 자식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시만 해도 아버지가 건강하셔서 엄마의 병 수발을 잘 해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열 효자 보다 악처 하나가 낫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말로만 효도를 외치던 자식들이지만 막상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당시에 형제들은 몇 가지 의논을 했습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두 분의 건강이 나빠지셔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순간이 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말입니다. 시집간 여동생들의 경우,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나 마찬가지로 유료양로원이나 실버타운을 이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냅니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들에게 의탁하거나 모든 것을 기대어 사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하긴 요즘 신세대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의탁하지 않고 당당한 노후를 지내다가 가시는 분도 적지 않다고 하니 딸로서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부양의 의무를 꾸준히 학습 받고 자라온 탓에 부모는 당연히 자신이 모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모님이 지금까지 살아오신 조국을 떠나 노년에 그것도 병까지 얻은 상황에서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가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죽기 전에는 짐승도 고향을 찾는데 다 늙어서 고향을 떠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부모님의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가장 원하시는 노후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랬듯 병약해진 당신들의 노후를 아들, 며느리에게 의탁해 그들에게 수발을 받다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신이 정들이고 살았던 그 집에서 말입니다.

"집 떠나서 죽으면 객사다. 병원에서 죽어도 객사야. 태어나긴 가난한 집에서 박복하게 태어났지만 죽을 때 마저 박복하게 가고 싶진 않다. 네 엄마랑 둘이 외롭게 살다 죽어도 내 집에서 죽고 싶어."

요즘 방송에 오르내리고 있는 널싱홈이나 실버타운, 유료 양로원 등의 시설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게 해준다고 해도 부모님에게 권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맏딸인 제가 모시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말이...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신 친정 아버지가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계신다.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신 친정 아버지가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계신다.김혜원
한동안 잊고 지내던 부모님의 부양문제가 요즘 들어 다시 고민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건강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만큼 급격히 나빠지셨기 때문이지요. 곁에 계신 엄마의 건강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만큼 좋지 않기에 다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고민은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내 마음속에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남동생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으며, 직장생활에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두 여동생에게 부모님을 모시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맏딸인 제가 나서야 할 일이었지요.

지난 10년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며느리가 시부모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는 하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부엌살림까지 하시며 외롭게 지내실 친정부모를 생각하면 가슴 언저리가 아파 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을 짐작했던 것인지 10년 전 형님네에 계시던 시어머니를 막내아들인 우리 집으로 모셔오며 농담 삼아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형님이 어머니를 10년 모셨으니 나도 10년 모실 거야.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면 당신도 우리 친정 부모님을 모셔줘야 해. 당신이 어머님을 모시길 원하니까 내가 당신의 뜻을 들어주는 거야. 당신도 그때가 되면 내 뜻을 들어줘."

남편과 약속했던 10년이 지나고 마치 예견했던 것 같이 친정 부모님은 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것을 실행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미래엔 '친정살이는 마땅당, 시집살이는 부당당'

친정부모님을 저희 집에 모시자니 '사위 밥은 서서 먹는다'는 편견 때문에 부모님이 불편해하시고, 우리가족이 친정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자니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는 편견에 남편이 불편해 하는 것이지요.

친정으로 들어가자니 '겉보리'를 의식한 남편에게 눈치가 보이고, 늘그막에 딸네 집에 얹혀 지내는 친정부모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며 힘들어도 두 분이 사시겠다며 고집을 부리십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낳을 때는 똑같이 배 아파 낳아 똑같이 사랑하며 입히고 먹이고 키웠는데 어째서 결혼을 시키고 나면 이렇게 딸과 아들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인지요.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부모를 이기는 자식도 쉽지는 않습니다. 결국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친정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편 앞에서 친정 부모님 일로 몇 번 눈물바람을 했긴 했지만 딸자식의 마음도 아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싫은 내색 없이 이사를 준비해주는 남편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아직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리신 외할아버지를 위해 이사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주는 아들들도 고맙습니다.

시집살이는 마땅당 친정살이는 부당당. 아마도 이런 말은 우리부모 세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딸 아들 구별 않고 하나 혹은 둘을 낳아 키우는 우리세대.

더구나 직장 다니는 딸들을 위해 손주 돌보기는 물론 살림살이까지 맡아서 해주는 친정엄마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 세태라면 머지 않은 미래에 '친정살이는 마땅당, 시집살이는 부당당'이라는 새로운 가족 풍조가 생겨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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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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