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신 친정 아버지가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계신다.김혜원
한동안 잊고 지내던 부모님의 부양문제가 요즘 들어 다시 고민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건강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만큼 급격히 나빠지셨기 때문이지요. 곁에 계신 엄마의 건강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만큼 좋지 않기에 다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고민은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내 마음속에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남동생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으며, 직장생활에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두 여동생에게 부모님을 모시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맏딸인 제가 나서야 할 일이었지요.
지난 10년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며느리가 시부모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는 하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부엌살림까지 하시며 외롭게 지내실 친정부모를 생각하면 가슴 언저리가 아파 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을 짐작했던 것인지 10년 전 형님네에 계시던 시어머니를 막내아들인 우리 집으로 모셔오며 농담 삼아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형님이 어머니를 10년 모셨으니 나도 10년 모실 거야.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면 당신도 우리 친정 부모님을 모셔줘야 해. 당신이 어머님을 모시길 원하니까 내가 당신의 뜻을 들어주는 거야. 당신도 그때가 되면 내 뜻을 들어줘."
남편과 약속했던 10년이 지나고 마치 예견했던 것 같이 친정 부모님은 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것을 실행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미래엔 '친정살이는 마땅당, 시집살이는 부당당'
친정부모님을 저희 집에 모시자니 '사위 밥은 서서 먹는다'는 편견 때문에 부모님이 불편해하시고, 우리가족이 친정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자니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는 편견에 남편이 불편해 하는 것이지요.
친정으로 들어가자니 '겉보리'를 의식한 남편에게 눈치가 보이고, 늘그막에 딸네 집에 얹혀 지내는 친정부모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며 힘들어도 두 분이 사시겠다며 고집을 부리십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낳을 때는 똑같이 배 아파 낳아 똑같이 사랑하며 입히고 먹이고 키웠는데 어째서 결혼을 시키고 나면 이렇게 딸과 아들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인지요.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부모를 이기는 자식도 쉽지는 않습니다. 결국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친정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편 앞에서 친정 부모님 일로 몇 번 눈물바람을 했긴 했지만 딸자식의 마음도 아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싫은 내색 없이 이사를 준비해주는 남편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아직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리신 외할아버지를 위해 이사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주는 아들들도 고맙습니다.
시집살이는 마땅당 친정살이는 부당당. 아마도 이런 말은 우리부모 세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딸 아들 구별 않고 하나 혹은 둘을 낳아 키우는 우리세대.
더구나 직장 다니는 딸들을 위해 손주 돌보기는 물론 살림살이까지 맡아서 해주는 친정엄마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 세태라면 머지 않은 미래에 '친정살이는 마땅당, 시집살이는 부당당'이라는 새로운 가족 풍조가 생겨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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