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환자 '피같은 돈' 앗아간 병원

[인터뷰] 환자 박진석씨 "가톨릭성모병원, 의료비 2천만원 과다징수"

등록 2006.12.05 16:15수정 2006.12.06 13:12
0
원고료로 응원
a 백혈병을 앓고 있는 박진석씨. 그는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이의를 제기해 진료비 중 병원측이 1990만을 환급하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박진석씨. 그는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이의를 제기해 진료비 중 병원측이 1990만을 환급하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백혈병 자체로도 큰 고통인 환자들에게 왜 병원은 이런 터무니없는 불법 과다징수로 더 큰 고통을 주십니까? 원장님 가족이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2년 넘게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박진석(34·사진)씨. 5일 중구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에서 한국백혈병환우회 주최로 열린 '가톨릭성모병원의 환자에 대한 진료비 불법과다 징수' 기자회견에서 박진석씨는 병원장에게 보낼 공개편지를 낭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씨는 병원측이 ▲진료비 중 급여(의료보험으로 적용되는 진료비) 부분을 '비급여'로 정산해 환자에게 청구했으며, ▲환자의 동의가 필요한 '선택진료비' 명목을 환자 동의 없이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병원의 과다 징수로 박씨는 의료비는 2천여만원이 늘어났다.

그는 "병원측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 '급여' 부분을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해 받아갔다"며 "과다 청구된 부분마저도 환자가 민원을 제기해야만 환급해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개편지를 읽던 그는 "아내와 세 딸들에게 더 이상 경제적 짐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는 부분에서 잠시 낭독을 멈추고 "옛날 생각이 났다"며 가족들을 떠올렸다. 이를 듣고 있던 백혈병 환자 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씨 자신의 목숨만큼 귀한 세 딸은 이제 겨우 10살, 5살, 3살이다.

1400만원→3400만원... "우리 가족 1년 생활비인데"

@BRI@박씨는 지난 2004년 10월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11월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9개월 동안 항암치료 4번을 받았고, 치료비는 대략 3400만원이 나왔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한달에 110만원을 받는 그는 은행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환경을 안 친구들이 일일호프를 열어 모금도 해줬다.


의료비 내역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지난해 11월 진료비 타당성을 따져보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심평원은 박씨에게 병원으로부터 1990만원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심평원은 지난 2월말 병원 측에도 박씨에게 1990만원을 환급하라고 공지했다. 1990만원의 내역에는 병원 측이 박씨에게 ▲비급여로 징수한 1392만원 ▲환자가 선택진료를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신청한 것처럼 징수한 선택진료비 200여만원 ▲식약청 허가사항 외 353만원 ▲산정불가 33만원 등이 포함됐다.


현재 박씨는 병원측으로부터 1990만원을 돌려받아 이중 200만원은 후원을 받았던 사랑의 공동모금회측에 되돌려주고 1790만원을 수령한 상태다.

병원 측은 박씨에게 비급여로 받은 1392만원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에 급여신청을 해서 122만원을 삭감당한 뒤 1270만원을 받았다. 과다청구한 선택진료비 200여만원과 식약청 허가사항 외 353만원 등은 병원측 잘못이므로 되돌려받을 수 없다.

박씨는 가톨릭성모병원과 한판 싸움을 치르는 과정에서 병원측이 환자들에게 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을 비급여로 돌려 진료비를 받아온 사실에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이뿐 아니라 선택진료비와 식약청 허가사항 외 의약품 등에 대해서도 부당청구해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병원측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급여 122만원이 깎일 것을 우려해 모조리 환자 부담으로 돌렸다는 것 자체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박씨는 "병원에 민원을 제기하자 '삭감 금액이 있어서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우리도 장사하는 곳이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22만원이 삭감될까봐 우려해 환자 개인에게 보험 적용이 되는 금액까지도 비급여로 받은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1300만원이면 우리 가족의 1년치 생활비"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의 신청해야 환급받는 '비급여', 감시하는 공공기관 없어"

박진석씨는 "의료비 가운데 비급여 부분은 공단에서 감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해야만 환급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환자는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아프기 전에 하던 일인 컴퓨터 관련 업무를 살려 환자들의 진료비 조사 결과를 자료집으로 만들고 있다.

경제적 부담으로 골수이식수술을 포기한 그는 "이 곳에서 봉사활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두달씩 입원을 했는데, 마지막 네 번째 병실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저 뿐"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a 한구백혈병환우회 소속 회원들은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가톨릭성모병원 환자 20여명의 진료비 내역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비급여 진료비가 다른 병원에 비해 40% 이상 높았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병원에게 비급여와 선택진료비 총액의 40~60%(1400만원~4000만원)을 환급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구백혈병환우회 소속 회원들은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가톨릭성모병원 환자 20여명의 진료비 내역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비급여 진료비가 다른 병원에 비해 40% 이상 높았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병원에게 비급여와 선택진료비 총액의 40~60%(1400만원~4000만원)을 환급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과도한 진료비를 낸 사람은 박씨뿐만이 아니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소속 환자 중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10명의 진료비 내역을 알아본 결과 총 진료비의 92% 가량이 부당청구된 사람도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박씨와 함께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편지를 쓴 김아무개(여)씨의 경우, 남편이 백혈병으로 죽은 뒤 비급여와 선택진료비 6200만원 중 2900만원을 환급받았다. 김씨는 "그 돈이었으면 남편에게 좀 더 좋은 약품과 치료를 공급해줄 수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의협, 관련 TV 프로그램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한편, 가톨릭성모병원측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환자들의 주장에 대해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에 따르면, 병원측은 해명자료에서 "백혈병의 특성상 환자의 중증도 및 합병증 여부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 부분 초과청구분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회장 장동익)는 6일 방영 예정인 KBS TV <추적60분>('백혈병 고액진료비의 비밀, 환자들은 왜 3억3천만원을 돌려받았나')에 대해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의협 측은 가처분신청서에서 "환자의 부담으로 귀속되는 '임의비급여'의 문제는 현행 보험급여 기준상 제한적 의료행위만을 보험급여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보험급여 심사기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의료기관 또는 의사들이 부당하게 과다 진료를 함으로써 발생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4. 4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5. 5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