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 장곡사. 천년을 지켜온 정적속에 지금도 홀로 넉넉한 곳유신준
장곡사는 칠갑산 아래 있는 아담한 절이다. 통일신라 문성왕때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찰로는 독특하게 상하대웅전이 있는 구조로 유명하다. 천년고찰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위에서 내려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절집들이 사뭇 다정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11월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방문객도 별로 없다. 가끔 바람이 일 때마다 풍경이 흔들려 절의 고적함을 깨울 뿐 절은 깊은 정적 속에 잠겨 있다. 법당 앞을 지키던 개도 어디 가서 낮잠이라도 자는지 보이지 않는다. 천년동안 지켜온 정적이건만 장곡사는 그 정적속에 홀로 넉넉하다.
점심은 장곡사아래 식당에 산채비빔밥으로 준비하고 B부부를 초대했다. 그네들과는 형제처럼 지내는 막역한 사이. 어제 시간을 내어 수고해 준 고마움을 전하고 노리코씨네를 정식으로 소개하기 위한 자리다. 노리코씨가 B를 만나자 마자 어젯저녁에 감사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사람의 사귐은 마음을 전하는 일로 시작된다. 그녀의 서툰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로 자리가 넉넉해진다. 비록 말 한마디를 건넸을 뿐이지만 그 한마디에 담긴 고마운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서로 알 수 있기 때문이리라. 고마운 마음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지고 사귐의 지경은 그렇게 넓어지는 것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점심상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10가지 정도를 넘나드는 찬으로 구성된 평범한 점심이다. 차려진 반찬의 가짓수와 양에 사토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간소하게 차려먹고 남기면 결례가 되는 음식문화 속에서 살아온 그에게 한국의 보통 점심상은 이미 보통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이걸 다 먹어야 하냐는 것이다. 남겨도 된다고, 걱정 말고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맛있게 먹으라고 말해줬지만 어디 문화적응이 쉬운 일인가. 노리코씨는 한국음식을 맛본 경험이 몇 번 있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에게는 처음 겪는 일. 가히 문화의 충격이다.
@BRI@그에게도 강점은 있다.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면 한국여행이 괴로운 추억이 되겠지만 그는 걱정할 것이 없다. 그의 집 식탁에는 고춧가루가 상시비치 품목이었으니까. 그러니 사토시에게 매운 한국음식은 물 만난 고기격이다. 오고 싶었던 김치의 나라에서 매운 음식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것저것 몇 가지 먹어보더니 맛있다며 잘 먹는다.
반찬으로 두부와 묵이 함께 나왔다. 두부는 일본에도 있는 음식이지만 묵은 그들이 처음 접하는 음식이다. 본래 수저 없이 젓가락만 사용하는 사람들이니 두부를 김치에 싸먹는 일 정도는 제법 능숙한데, 묵을 간장에 찍어먹는 일에서 결국 난관에 봉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끈거리는 묵을 스테인리스 젓가락으로 잡으려니 그게 어디 쉬운가(그들은 나무젓가락을 사용한다). 점심상에서 생각지도 않은 강적을 만나 고전하는 사토시 때문에 때 아닌 웃음판이 벌어졌다.
손님대접에 술이 빠질 수 없어 동동주를 한 병 시켰다. 달착지근한 동동주가 맛있다며 한 잔씩 달게 비운다. 노리코씨는 더 마시고 싶지만 여자가 한낮에 얼굴이 빨개져 돌아다니면 '국제적인 망신'이 될 것이므로 아쉽지만 그만해야겠단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집에 두고 온 사람이 걸리는 것은 정한 이치. 노리코씨 입에서 자연스레 우츠노미야씨 이야기가 나온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귀국할 때 꼭 한국 막걸리를 사오라고 했단다. 자기는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 나에게 꼭 기억해 두란다.
백제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