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을 먹던 노리코씨가 한국음식이 입에 맞아 이곳에서 살고 싶단다유신준
사실 나는 매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미 맵게 만들어 나온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먹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라면 가급적 매운 것은 피한다. 고춧가루는 적당히 넣어 음식 고유의 맛을 살려주는 정도여야지 매운 맛만 강조한 음식은 싫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고추는 양념이다. 양념은 다른 음식의 맛을 돕는 것이 본래 역할이다. 양념으로 쓰여야 할 매운맛 때문에 종종 재료 고유의 맛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주객이 전도된 음식폭력이다.
이런 나에게 비한다면 사토시네가 매운 음식을 다루는 솜씨는 유별나다. 매운것을 먹으며 땀까지 흘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보다 훨씬 좋아한다. 일본열도에서 후쿠오카근처에 사는 사람이나 매운맛에 조금 적응이 됐을 뿐,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은 참 독특하다. 무시로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고 풋고추장아찌조차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먹는 모습이라니.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해장국을 먹던 노리코씨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다. 은퇴 후의 구체적인 계획으로 준비 중이다. 아예 주민등록을 옮기겠다(?)는 것은 아니고 방이라도 하나 얻어놓고 몇개월씩 머물고 싶다는 얘기다. 요즘 일본에서 외국생활을 다루는 드라마가 인기라는데 남편과 함께 눈여겨 보는 중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 패키지 투어로 미국에도 다녀왔지만 맘에 들지 않았단다. 아침식사로 나온 어린애 머리만한 햄버거도 싫었고 서양의 다른 문화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단다. 세상 여러 곳을 여행해봤지만 자기네 정서상 한국만큼 맘에 드는 여행지가 없었다고 했다.
사토시도 꼭 다시오고 싶은 곳이란다. 다음엔 한국어를 배워 여자친구랑 같이 오겠다고 했다. 사토시가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 한국어의 필요성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럴 것이다. 가이드를 동반해 정해진 코스를 둘러보는 패키지여행을 벗어나면 현지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잦다. 당연히 해당국 언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법이다.
한국어를 배워라.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해당국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인연을 제대로 가꾸는 방법이다. 일회성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진짜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외국어를 아는 만큼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그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아무리 지도에 굵은 선을 그어 국경을 표시한다 해도 언어가 자유롭다면 그건 내가 누리는 땅이다. 비자도 필요없는 양국관계니 결국 국경이 무너지는 것이다. 살고 싶으면 언제든 와서 살 수도 있고. 일본에서 취업시험에 한국어가 가산혜택이 있다니 일석이조 아닌가.
내가 제풀에 신이 나서 하는 얘기들을 사토시가 조용히 듣고 있다. 심지가 곧은 사람이니 그는 돌아가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가 다음번 방문할 때쯤이면 한국여행에 내 도움이 필요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 자유롭게 맘껏 이 땅을 느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