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시 서해바다에 빠지다

[일본청년 사토시 한국방문기⑤]

등록 2006.12.28 14:17수정 2006.12.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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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서해바다의 그 무엇이 그렇게 그의 마음을 붙잡았을까.
평범한 서해바다의 그 무엇이 그렇게 그의 마음을 붙잡았을까.유신준
사토시는 천북 앞바다 풍경에 빠졌다. 엊저녁에도 어두워질 때까지 바다만 보고 앉아 있었다는데, 아침에도 동틀 무렵부터 내내 창가에서 떨어지지 못했단다. 평범한 서해바다의 무엇이 그렇게도 그의 마음을 붙들었을까 궁금해진다.

바다를 가져가고 싶어? 내가 농담을 하자 그가 웃는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서 하루쯤 더 묵고 싶었지만 오늘은 사돈댁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날이다. 게다가 여행은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편이 낫다. 그 아쉬움으로 인해 이곳 바닷가가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바닷가 아침메뉴 굴 해장국

@BRI@노리코씨가 아침은 필요없다고 만류했지만 모처럼 한국방문인데 먹여 보내고 싶은 게 있었다. 찻집 시월애의 아침메뉴 굴 해장국(아침메뉴는 굴해장국 한가지 밖에 없다). 아내도 아침 생각이 없다고 해서 삼인분을 주문해 넷이서 나눠 먹기로 했다.

실내를 흐르는 아침 음악이 경쾌하다. 파란하늘과 맞닿은 아침바다도 어제 해질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다가 느껴진다. 삼십대 초반쯤 됐을까. 서글서글한 여주인의 친절한 마음씨도 이곳을 더욱 정감있게 느끼게 한다.

해장국이 나왔다. 해장국하면 보통 고춧가루를 풀어 끓인 얼큰한 음식을 연상하지만 이곳 해장국은 좀 다르다. 굴과 부추를 듬뿍 넣고 고추가루는 넣지 않아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함께 나온 깍두기도 적당히 익어 독특한 해장국 맛과 잘 어울린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추 다대기를 배려해 놓은 점도 맘에 든다.

해장국을 먹던 노리코씨가 한국음식이 입에 맞아 이곳에서 살고 싶단다
해장국을 먹던 노리코씨가 한국음식이 입에 맞아 이곳에서 살고 싶단다유신준
사실 나는 매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미 맵게 만들어 나온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먹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라면 가급적 매운 것은 피한다. 고춧가루는 적당히 넣어 음식 고유의 맛을 살려주는 정도여야지 매운 맛만 강조한 음식은 싫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고추는 양념이다. 양념은 다른 음식의 맛을 돕는 것이 본래 역할이다. 양념으로 쓰여야 할 매운맛 때문에 종종 재료 고유의 맛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주객이 전도된 음식폭력이다.

이런 나에게 비한다면 사토시네가 매운 음식을 다루는 솜씨는 유별나다. 매운것을 먹으며 땀까지 흘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보다 훨씬 좋아한다. 일본열도에서 후쿠오카근처에 사는 사람이나 매운맛에 조금 적응이 됐을 뿐,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은 참 독특하다. 무시로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고 풋고추장아찌조차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먹는 모습이라니.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해장국을 먹던 노리코씨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다. 은퇴 후의 구체적인 계획으로 준비 중이다. 아예 주민등록을 옮기겠다(?)는 것은 아니고 방이라도 하나 얻어놓고 몇개월씩 머물고 싶다는 얘기다. 요즘 일본에서 외국생활을 다루는 드라마가 인기라는데 남편과 함께 눈여겨 보는 중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 패키지 투어로 미국에도 다녀왔지만 맘에 들지 않았단다. 아침식사로 나온 어린애 머리만한 햄버거도 싫었고 서양의 다른 문화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단다. 세상 여러 곳을 여행해봤지만 자기네 정서상 한국만큼 맘에 드는 여행지가 없었다고 했다.

사토시도 꼭 다시오고 싶은 곳이란다. 다음엔 한국어를 배워 여자친구랑 같이 오겠다고 했다. 사토시가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 한국어의 필요성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럴 것이다. 가이드를 동반해 정해진 코스를 둘러보는 패키지여행을 벗어나면 현지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잦다. 당연히 해당국 언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법이다.

한국어를 배워라.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해당국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인연을 제대로 가꾸는 방법이다. 일회성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진짜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외국어를 아는 만큼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그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아무리 지도에 굵은 선을 그어 국경을 표시한다 해도 언어가 자유롭다면 그건 내가 누리는 땅이다. 비자도 필요없는 양국관계니 결국 국경이 무너지는 것이다. 살고 싶으면 언제든 와서 살 수도 있고. 일본에서 취업시험에 한국어가 가산혜택이 있다니 일석이조 아닌가.

내가 제풀에 신이 나서 하는 얘기들을 사토시가 조용히 듣고 있다. 심지가 곧은 사람이니 그는 돌아가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가 다음번 방문할 때쯤이면 한국여행에 내 도움이 필요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 자유롭게 맘껏 이 땅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억될 것은 바다뿐만 아니다. 오랜시간동안 머문 찻집도 그의 추억이 될것이다.
기억될 것은 바다뿐만 아니다. 오랜시간동안 머문 찻집도 그의 추억이 될것이다.유신준
사토시의 아쉬운 바다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잠시 쉬었다가 당진에 가야한다. 노리코씨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이번 여행에서 가급적 다른 사람들과 약속은 피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스케줄이 잡혀 버렸다. 함께 저녁을 먹는 일도 괜찮은 경험이겠다 싶어 사돈댁 초대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홍성을 거쳐 당진으로

당진 가는 길에 홍성에 들렀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홍성에서 잘 아는 된장집에 데려갔다. 대동식당이라는 상호가 붙은 곳.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길을 한참 따라 들어가야 하는 구석진 곳에 있다. 가게가 반 지하에 비밀스럽게 숨어 있어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이다.

메뉴는 우렁된장과 밴댕이찌게다. 이곳 음식도 독특한 풍미로 소문나 점심시간에 일찍오지 않으면 앉을 자리가 없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음식상이 나왔다. 된장찌개와 함께 나온 반찬들이 친근하다. 사토시가 몇 가지 반찬을 음미해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홍성에서 당진에 이르는 길은 한국농촌 풍경의 전형이다. 초겨울 짙푸른 하늘아래 작은 산들이 점점이 서 있고 산 밑에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 논과 밭을 배경으로 실낱같은 개울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좁은 농로를 따라 이어진 길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며 서 있는 땅.

한시간 가량을 달려 당진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딸내미 내외가 반가워한다. 몇 년 전이던가, 그네들 약혼기념으로 일본 마츠리의 불꽃놀이를 보여주고 싶어 구마모토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한시간 삼십분 동안 에즈코의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불꽃놀이의 장관. 그때 함께 우츠노미야씨네를 들른 적이 있으니 노리코씨와는 구면이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서로 손을 잡으며 반가운 눈빛들을 주고받는다. 보기좋다.

사돈댁에서 멀리서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고 반가워 하신다. 예약해 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사토시는 젊은 사돈총각과 어울려 앉았다. 서로 술을 몇잔 주고 받는가 싶더니 서툰 영어가 섞이고 손짓발짓이 동원된 '원초적 의사소통'이 시작된다. 그에게 바디랭귀지도 좋은 경험이겠다 싶다. 좀 답답하긴 하겠지만 그 가운데 뭔가 느끼고 깨닫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충남지역을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노리코씨와 아들 사토시군의 한국 여행일정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또한 지난 10월 4일부터 한달 동안 연재한 '부부가 함께 떠난 규슈 여행기(1∼15)'의 후속기사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충남지역을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노리코씨와 아들 사토시군의 한국 여행일정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또한 지난 10월 4일부터 한달 동안 연재한 '부부가 함께 떠난 규슈 여행기(1∼15)'의 후속기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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