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호텔안에 펼쳐진 서해안 낙조

[일본청년 사토시 한국방문기④] 사토시가 만들어준 별밤의 추억

등록 2006.12.21 16:00수정 2006.12.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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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바닷가에서 옛날 추억을 줍다

철지난 해수욕장에 뭐 볼 게 있을까 싶지만 웬걸 사람들이 제법 많다
철지난 해수욕장에 뭐 볼 게 있을까 싶지만 웬걸 사람들이 제법 많다유신준
점심 후 대천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초겨울 해수욕장에 뭐 볼게 있을까 싶지만 웬걸 사람들이 제법 많다. 간조 때라서 모래사장이 훤히 드러나 있다. 철지난 해수욕장은 왠지 쓸쓸하다. 쓸쓸한 느낌이 하얗게 드러난 모래사장을 걸었다. 한낮인데도 바닷바람이 제법 차다.


대천해수욕장은 전에 노리코씨가 남편 우츠노미야씨와 함께 왔던 곳이다. 노리코씨에게는 각별한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 얘기를 나누다 보니 노리코씨 기억력이 놀랍다. 4년 전의 일인데도 해질녘에 왔던 것, 사진을 찍었던 바닷가 위치, 막걸리를 처음 마셨던 장소까지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역시 중년여인에게 추억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사토시는 바다를 좋아한다. 구마모토에서도 혼자 바닷가에 자주 가는 편이라는데. 뭔가 답답하고 우울한 날에는 혼자 바닷가에 간단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고 앉아 있노라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져 어느새 답답한 마음이 풀린단다. 웃음이 많고 밝기만 한 그에게도 우울한 구석이 있던가. 바다는 그에게 아픈 곳을 쓰다듬어주는 친구가 된다.

천북가는 길에 대천항 수산시장에 들렀다. 큰 시장은 아니지만 언제나 싱싱하고 다양한 물고기가 많아 인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 오면 왁자지껄한 소음에 실려 오는 사람 사는 냄새가 있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내가 시장을 찾게 되는 이유다.

시장은 언제나 왁자지껄해 사람사는 냄새가 풍긴다
시장은 언제나 왁자지껄해 사람사는 냄새가 풍긴다유신준
그들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도 같다. 싱싱한 바다 비린내를 통해서 우리네 건강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장을 둘러보던 노리코씨가 건어물가게를 한참을 구경하더니 김을 몇 톳 산다. 일본에 비해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단다. 역시 그녀는 주부다. 주부 중에도 알뜰하기로 소문난 일본주부.

전망 좋은 찻집에서 먹었던 팥빙수 맛


부드럽고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창밖으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찻집
부드럽고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창밖으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찻집유신준
다시 지방도를 따라 천북으로 향한다. 그다지 서두르지 않았던 일정이었는데도 아직 저녁시간이 이르다. 시간이 남아 바닷가에 서있는 찻집에 잠시 들렀다. 시월애라는 찻집. 창 너머로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 전망이 좋은 곳이다. 사토시가 아침부터 바다 타령을 하더니 오늘은 바다복이 있는 모양이다.

메뉴를 살펴보다가 팥빙수를 시켰다. 맵시 나는 청색 유리 글라스에 팥이며 고명이 소담스럽게 담겨 나왔다. 노리코씨가 앙징 맞은 티스푼으로 한 스푼 떠보더니 달지 않고 맛있단다. 음식 맛은 자릿값이라지 않던가. 실내에는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창밖으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곳에서 먹는 팥빙수 맛이 각별하다.


좋은 사람들과 푹신한 소파에 앉아 느긋하고 유유한 시간이 흐른다. 처음에는 노리코씨네를 안내하기위해 시작한 여행인데 어느새 우리가 주인공이 돼버린 느낌이다. 그들 덕분에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그들이 미안해하며 고마워하고 있지만 정작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우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는 아직 수평선에서 한 뼘 넘게 남아있고 시간은 느긋하다
해는 아직 수평선에서 한 뼘 넘게 남아있고 시간은 느긋하다유신준
해는 아직 수평선에서 한 뼘 넘게 남아있고. 한가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건너편에 작은 호텔 눈에 띄었다. 궁금한 생각이 들어 혼자 슬그머니 찻집을 빠져나왔다. 호텔과 찻집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바닷가 좋은 자리를 골라 지어 놓은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아담한 호텔안에서 펼쳐진 서해안 낙조

@BRI@호텔안에 들어가 봤다. 프런트에 방을 보고 싶다니까 맨 위층이 열려 있을 거라며 올라가 보란다.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5층. 열려있는 방은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이 난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통유리로 된 창에 바다를 가득 담아 놓았다 점이다. 창에 담겨있는 바다풍경이 환상적이다. 조금 있으면 펼쳐질 낙조가 기가 막힐 위치다.

우연치고는 참 묘하다. 시간이 남아 우연히 찻집에 들렀고 그 찻집이 인연이 되어 이곳까지 오게 됐다. 누군가가 하루 종일 바다를 보여주며 나를 이곳까지 이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걸 행운이라고 하는구나. 다른 생각 할 틈도 없다. 머뭇거리면 그 행운이 달아나기라도 하는 듯 방 두개를 얼른 예약해버렸다.

사토시가 참 좋아한다. 언젠가는 바닷가 호텔에서 바다를 보며 잠들고 아침에 바다를 보며 눈뜨는 것을 소망해 왔단다. 그 꿈이 내 덕분에 한국에서 이뤄졌다며 기뻐한다. 웃음이 가득담긴 얼굴로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한다. 고맙긴 네 바다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했을 곳인데 덕분에 이런 곳에도 와보고 호사하고 있으니 오히려 우리가 고맙지.

딴 세상에라도 온 듯 싶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저 참 좋다는 생각뿐
딴 세상에라도 온 듯 싶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저 참 좋다는 생각뿐유신준
우연이 안내해준 스페셜 코스. 각자의 방에 들어가 낙조를 감상했다. 참 좋다. 창가에 놓인 작은 티 테이블에 앉아 수평선 너머로 장엄하게 지는 낙조의 드라마를 보고 앉아 있으려니 딴 세상에라도 온 듯싶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저 참 좋다는 생각뿐.

석굴구이를 먹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저녁은 석굴구이가 계획되어 있어 여장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걸어서 5분정도 거리다. 천북석굴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게가 많은 줄은 몰랐다. 길가는 물론이고 구석구석에 굴집이 가득하다. 그 덕분에 아내가 단골로 다니는 석굴집을 찾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비슷비슷한 가게들 가운데 찾으려니 쉽지 않다. 결국 바닷가에 노란 등을 달고 있는 그 집을 찾아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많이 밝아진 느낌이다. 전에 왔을 때는 바닥이 맨땅이었고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앉아서 석굴을 구워 먹었는데 지금은 의자와 깔끔한 구이테이블까지 준비되어 있다.

노리코씨는 석굴구이 유경험자지만 사토시는 이런 곳이 처음이다. 가끔 굴껍질 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면서 화덕위의 굴을 뒤집느라 사토시가 바쁘다. 재밌단다. 굴 튀는 소리가 흡사 전쟁터라도 온 것 같다며 목숨을 걸고 먹어야겠다고 농담까지 한다. 그는 천성이 밝은 청년이다.

좋은 여행이 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밝은 사토시는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좋은 여행이 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밝은 사토시는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유신준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건너다본 바닷가 하늘이 참 맑았다. 오늘을 위해서 누가 준비라도 해놓은 듯 파도소리를 배경삼아 화려하게 펼쳐놓은 별밤이다. 흡사 하늘에 자잘한 보석이라도 뿌려놓은 듯 한 밤하늘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다. 사토시의 바다이야기를 따라 좋은 우연이 겹쳐져 좋은 하루가 되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별빛을 따라 함께 걸었던 밤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들은 이 밤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리라. 우리 또한 팍팍한 일상을 살아갈 든든한 추억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충남지역을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노리코씨와 아들 사토시군의 한국 여행일정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또한 지난 10월 4일부터 한달 동안 연재한 '부부가 함께 떠난 규슈 여행기(1∼15)'의 후속기사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충남지역을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노리코씨와 아들 사토시군의 한국 여행일정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또한 지난 10월 4일부터 한달 동안 연재한 '부부가 함께 떠난 규슈 여행기(1∼15)'의 후속기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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