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끝난 들녘이 좀 쓸쓸해 보이는 풍경으로 이어진다유신준
목록에 있는 식당들은 대개 구석지고 허름하다. 웬일인지 번듯한 집들은 목록에서 빠졌다. 번쩍거리는 집에 뭔가 알레르기라도 있는 건 아닐 텐데 목록에 올라 있는 건 대부분 오래된 집들뿐이다. 끼리끼리 모이는 법인지 나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내 음식취향과 비슷하여 목록이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사토시가 지난밤에는 음식을 아까워하더니 좀 과식을 했던 모양이다. 아침 생각이 없단다. 집에서도 아침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라고 해서 우리도 아침을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점심을 좀 일찍 '아점'으로 당겨먹기로 했다. 오늘 일정도 사토시의 입김이 강하다. 바다가 보고 싶단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대천해수욕장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무대는 주로 청양의 이웃지역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청양이 충남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는 연유로 어제 다녀온 부여를 비롯해 대천, 홍성, 예산, 공주를 거느린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인근 지역들과는 대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니 나들이에 적당하다.
일본 사람들의 한국여행은 대개 서울 부산이 주류를 이룬다. 거기에 한국음식이 덧붙여지고 경주 같은 관광지가 끼어 만들어진 세트메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노리코씨네에게 청양여행은 식상한 한국여행패턴에서 벗어나 진짜 한국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진짜 여행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경우다. 첫째는 가이드 없이 떠날 것. 무작정 떠나라는 뜻이 아니고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여 준비하고 떠나되 가급적 혼자서 떠나라는 것이다. 가이드의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야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둘째는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갈 것. 여행의 참맛은 대도시나 유명한 관광지에 있지 않다. 거기는 여행의 휘황한 껍데기만 즐비할 뿐 제대로 된 알맹이가 없는 곳이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과 생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어야 여행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대천의 밴댕이 집에 얽힌 사연
11시가 지나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햇살은 여전히 쨍한 날씨다. 차창 밖으로 가을걷이 끝난 들녘이 좀 쓸쓸해 보이는 풍경으로 이어진다. 내 눈에는 그저 흔하디 흔한 시골풍경인데 사토시에게는 궁금한 게 많다. 곧잘 질문이 이어진다. 사토시의 눈을 통해 나도 우리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이번 여행에서 얻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