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짜리 팥죽 한 그릇에 아버지의 어린시절 추억이 방울방울김혜원
팥죽을 앞에 놓고 앉으신 아버지는 어린시절 기억이 떠오르신다며 찬찬히 이야기 한 자락을 꺼내 놓습니다.
"아마도 중학교때이지 싶다. 워낙 가난해서 식구들은 굶기를 밥 먹듯 했지. 가난해서 그랬는지 그땐 길에서 신문도 팔고 담배도 팔고 그러는 학생들도 많았어.
신문을 받으려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야 해. 우리집이 동대문 근처였으니까 광화문 동아일보까지 걸어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거든. 동아일보 앞에서 신문을 받아서 다시 청량리까지 걸어가면서 신문을 파는 거야. 한 100여부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새끼줄에 묶어 어깨에 걸고 길을 지나면서 '신문이요!! 신문이요!!' 이렇게 외치는 거지."
엄마와 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인심이 좋았다. 학생이 신문 돌린다고 떡 장사 아주머니들이 떡 한 덩어리를 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거든. 교복도 없어서 얻어온 옷에 검은 물을 들이거나 남이 준 옷을 줄여 입고 다녔으니 행색으로 말하자면 거지가 따로 없지."
아버지는 수저를 드실 생각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가십니다.
@BRI@"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었던 것 같다. 새벽에 빈속으로 나가서 신문을 받아 가지고 청량리역까지 가서 신문을 팔고 오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팠던 거야. 그런데 마침 동대문기동차 정거장을 지나게 됐지 뭐냐."
아버지 말씀으로는 당시 동대문기동차 정거장 주변에는 커다란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이면 뚝섬과 광나루 쪽에서 김치거리며 채소들을 바리바리 이고 지고 오는 아주머니들이 기동차를 타고 마지막으로 내리는 곳이 바로 동대문기동차 정거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동차를 타고 온 아주머니들이 하루 장사를 시작하기 전 허기진 속을 값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기동차정거장 주변의 음식 골목이었습니다. 떡이며 빈대떡, 순대, 팥죽 등 먹는 것이라면 없는 것이 없다는 그 골목을 배고픈 신문팔이 학생이 입김을 호호 불며 지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날 듯 합니다.
"그냥 지나려 했는데 그날따라 배가 너무 고픈 거야. 하루 신문 판 돈을 집으로 가져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팔남매가 모두 죽이라도 먹을 수 있는데…. 집에서 내가 신문 판 돈을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따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 하긴 내가 그때 열댓 살밖에 더 되었냐. 한참 먹을 나이에 굶기를 밥 먹듯 하는데 그 추운 날 김이 펄펄 나는 팥죽 한 그릇에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냐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