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 몰래 사먹고, 죽게 맞았지"

팥죽 한 그릇에 어린시절 추억을 엮어내신 아버지

등록 2006.12.22 15:23수정 2006.12.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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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팥죽 드세요. 엄마랑 시장 가서 따끈한 팥죽 사왔어요."
"갑자기 왠 팥죽이냐?"
"오늘이 동지잖아요. 이리 오세요. 동치미랑 팥죽 한 그릇 드세요."
"팥죽을 보니 어린시절 생각이 난다."



2000원짜리 팥죽 한 그릇에 아버지의 어린시절 추억이 방울방울
2000원짜리 팥죽 한 그릇에 아버지의 어린시절 추억이 방울방울김혜원
팥죽을 앞에 놓고 앉으신 아버지는 어린시절 기억이 떠오르신다며 찬찬히 이야기 한 자락을 꺼내 놓습니다.

"아마도 중학교때이지 싶다. 워낙 가난해서 식구들은 굶기를 밥 먹듯 했지. 가난해서 그랬는지 그땐 길에서 신문도 팔고 담배도 팔고 그러는 학생들도 많았어.

신문을 받으려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야 해. 우리집이 동대문 근처였으니까 광화문 동아일보까지 걸어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거든. 동아일보 앞에서 신문을 받아서 다시 청량리까지 걸어가면서 신문을 파는 거야. 한 100여부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새끼줄에 묶어 어깨에 걸고 길을 지나면서 '신문이요!! 신문이요!!' 이렇게 외치는 거지."

엄마와 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인심이 좋았다. 학생이 신문 돌린다고 떡 장사 아주머니들이 떡 한 덩어리를 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거든. 교복도 없어서 얻어온 옷에 검은 물을 들이거나 남이 준 옷을 줄여 입고 다녔으니 행색으로 말하자면 거지가 따로 없지."


아버지는 수저를 드실 생각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가십니다.

@BRI@"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었던 것 같다. 새벽에 빈속으로 나가서 신문을 받아 가지고 청량리역까지 가서 신문을 팔고 오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팠던 거야. 그런데 마침 동대문기동차 정거장을 지나게 됐지 뭐냐."


아버지 말씀으로는 당시 동대문기동차 정거장 주변에는 커다란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이면 뚝섬과 광나루 쪽에서 김치거리며 채소들을 바리바리 이고 지고 오는 아주머니들이 기동차를 타고 마지막으로 내리는 곳이 바로 동대문기동차 정거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동차를 타고 온 아주머니들이 하루 장사를 시작하기 전 허기진 속을 값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기동차정거장 주변의 음식 골목이었습니다. 떡이며 빈대떡, 순대, 팥죽 등 먹는 것이라면 없는 것이 없다는 그 골목을 배고픈 신문팔이 학생이 입김을 호호 불며 지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날 듯 합니다.

"그냥 지나려 했는데 그날따라 배가 너무 고픈 거야. 하루 신문 판 돈을 집으로 가져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팔남매가 모두 죽이라도 먹을 수 있는데…. 집에서 내가 신문 판 돈을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따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 하긴 내가 그때 열댓 살밖에 더 되었냐. 한참 먹을 나이에 굶기를 밥 먹듯 하는데 그 추운 날 김이 펄펄 나는 팥죽 한 그릇에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냐 싶다."

동지라 그런지 시장의 팥죽가게도 무척이나 바빴습니다.
동지라 그런지 시장의 팥죽가게도 무척이나 바빴습니다.김혜원
그 오래 전의 기억이 마치 어제 같으신 모양인지 아버지의 눈이 붉게 충혈 됩니다.

"얼마나 맛 있었는 줄 아니? 혀까지 같이 넘어가는 듯싶더라. 입천장 데여서 다 헤져도 모르고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한 그릇을 다 비웠구나. 아주머니가 안쓰러웠던지 한 주걱을 더 퍼주시더라. 그것도 그냥 바닥까지 핥아가며 먹었지."

아버지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에게 회초리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집에 부모와 7명의 동생이 배를 곯고 있는데 나 혼자만 팥죽으로 배를 불린 것이 잘못이지…. 회초리를 치시던 할아버지라고 마음이 좋으셨겠나 싶지만 그건 지금 마음이고 그땐 정말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더라. 그까짓 팥죽 한 그릇에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회초리를 맞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하고도 값싼 음식인 팥죽 한 그릇. 조금 커서 돈을 좀 더 벌게 되면 동대문기동차 정거장에서 마음 놓고 팥죽을 사먹겠다는 꿈을 꾸셨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그때 생각 때문에 더 이상 수저를 들지 못하셨습니다.

최근의 기억부터 아주 오래 전 기억까지를 잃어 간다는 치매를 앓고 계시는 아버지. 어제 병원에 다녀 오신 것은 기억하지 못 하시면서도 열댓 살 적 추억은 어제 일처럼 소상하게 기억해 내시니 이만해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해봅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5년 후, 10년 후에도 오늘처럼 동지마다 팥죽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버지 때문에 저도 팥죽에 얽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동지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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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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