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밤, 뜨거운 밤... 겨울이 좋다

대전엑스포 루미나리에 축제, 화려한 불빛과 야함이 있어 좋았습니다

등록 2006.12.24 17:04수정 2006.12.2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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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불나방의 마음이 되어 찾아간 루미나리에 축제장엔 화려한 불빛보다도 더 야하고 뜨거운 춤이 있었습니다.

불나방의 마음이 되어 찾아간 루미나리에 축제장엔 화려한 불빛보다도 더 야하고 뜨거운 춤이 있었습니다. ⓒ 임윤수

@BRI@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리게 하는 동짓달 야밤이었지만 후끈하게 몸을 달굴 만큼 뜨거움이 있고 야함이 있어 좋았습니다. 지나칠 때마다 한 번은 가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던 대전 엑스포장엘 23일 저녁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에는 깜깜하기만 했던 대전 엑스포장의 밤이 지난 15일쯤부터 알록달록한 조명들이 야하도록 아름답게 빛나고 있기에 한 번쯤은 그 야함 속으로는 들어가 볼 거라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차를 몰고 갑천길을 달릴 때마다 엑스포장 안쪽, 울타리너머로 흘끔흘끔 보이는 형형색색의 조명들은 그지없이 화려했고, 묘한 손길로 마음을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장애물처럼 세워진 이런저런 시설물 때문에 속시원하게 보이지 않는 행사장 내부에 대한 궁금증은 찾아드는 갈증처럼 밤마다 유혹의 불빛으로 다가왔고, 목마름처럼 더해가는 물음표였습니다. 때문에 23일 저녁엔 표주박으로 옹달샘 물을 떠먹는다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엑스포장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a 대전 엑스포장에서는 지난 15일부터 꼬마 전구들로 장식한 건축물들이 불야성을 이룹니다.

대전 엑스포장에서는 지난 15일부터 꼬마 전구들로 장식한 건축물들이 불야성을 이룹니다. ⓒ 임윤수

a 한겨울의 추위도 불빛 터널을 지날 때쯤이면 온기로 느껴집니다.

한겨울의 추위도 불빛 터널을 지날 때쯤이면 온기로 느껴집니다. ⓒ 임윤수

a 형형색색의 꼬마전구들이 형형색색의 조형물이나 문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꼬마전구들이 형형색색의 조형물이나 문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 임윤수

엑스포장에서 개최되고 있는 루미나리에 페스티벌은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건축물을 만들거나 치장하는 빛의 예술 또는 빛의 조각이라고도 하는 축제'입니다. 이런 루미나리에 축제는 대전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그 야하고도 화려함 속으로의 여행이 가능 할 거란 생각입니다.

매표를 하여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곳 분위기는 더없이 뜨겁고도 야했습니다.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삼아 입체적으로 자아를 드러내고 있는 불빛의 화려함도 뜨겁고 야했지만 공연장에서 열리고 있는 무희들의 춤이 겨울 심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아무리 포근한 날씨라고 하지만 겹겹을 입어도 춥다고 생각되기 일쑤인 한겨울밤에 벌거숭이가 된 무희들이 현란한 동작으로 춤들을 추고 있습니다. 몸뚱어리만 벌거숭이가 아니라 양말조차 신지 않아 맨발을 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느낄 시멘트의 차가움이 말초신경을 찌릿찌릿 자극하는 듯합니다.

a 화려한 불빛은 한 송이의 튤립 봉오리로 피기도 하였습니다.

화려한 불빛은 한 송이의 튤립 봉오리로 피기도 하였습니다. ⓒ 임윤수

a 가슴패기에 장식쯤으로 달고 싶기도 합니다.

가슴패기에 장식쯤으로 달고 싶기도 합니다. ⓒ 임윤수

a 조형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뜨겁고 야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형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뜨겁고 야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 임윤수

무희들은 추위를 극복하려 그러는지 춤을 추는 몸동작이 더 없이 크고 활달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크고 활달한 몸동작에서 후두둑 떨리거나 출렁대는 살결에서 겨울밤 추위을 가르는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나 물길을 거르는 고기떼처럼 한바탕의 현란한 몸동작을 마친 무희들이 무대 뒤로 물러나면 또 다른 한 떼의 무희들이 겨울공기를 야하게 덥혀 놉니다.


무대라고 해야 바닥에 부직포만 깔렸을 뿐 허허벌판처럼 사방이 노출된 그런 공간입니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뿜어진 뽀얀 입김들이 알록달록한 조명을 받으니 천연색 물안개처럼 피어납니다. 그런 무대, 사방이 탁 트여 찬바람이 쌩쌩 불 것 같고, 관객들의 입김이 배경처럼 깔리는 노천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희들의 피부에 탄력을 받은 불빛들이 별똥별처럼 튀어나오고, 살결의 싱그러움에 조명등이 움츠러질 만큼 뜨거운 춤들이 이어집니다.

지금껏 두툼한 외투깃 속으로 자라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목을 드러내더니 어느덧 길쭉하게 올라와 시선들을 무희들에게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벌거숭이로 드러난 무희들의 곱다란 살결과 관능을 자극하는 현란한 동작들이 장작불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덥히는 모양입니다.


a 한겨울 밤이 이보다 더 뜨겁고 화려할 수는 없습니다.

한겨울 밤이 이보다 더 뜨겁고 화려할 수는 없습니다. ⓒ 임윤수

a 현란한 몸동작과 포동포동한 피부는 사람들의 마음에 쏘시개불도 되고 장작불도 되었습니다.

현란한 몸동작과 포동포동한 피부는 사람들의 마음에 쏘시개불도 되고 장작불도 되었습니다. ⓒ 임윤수

쏘시개나무처럼 그렇게 나부대던 무희들의 춤은 사람들 가슴에 군불이 되어 몸과 마음을 덥혀주었습니다. 이제 누구도 한겨울 밤이 춥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양쪽 주머니에 깊숙하게 들어가 있던 손들은 찬바람을 가르며 박수를 치고 있고, 움츠러들었던 어깨들은 활짝 열렸습니다.

관람객중 얼떨결에 무대에 오른 사람들도 어느덧 무희가 되어 무희들과 어울려 춤을 춥니다. 비록 그들처럼 벌거숭이 복장은 아니었지만 경계심이나 어쭙잖은 체면쯤 모두 버린 순백의 무희가 되어 '얼쑤덜쑤' 춤을 춥니다.

밤이 깊어 갈수록 밤공기는 차가워졌지만 사람들 눈에서는 형형한 불빛이 반짝이고, 가슴과 입술에서는 야하고도 진한 탄성이 흘렀습니다. 밤하늘에서는 수천수만의 꼬마전구가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거리고, 그 반짝거리는 불빛 아래에는 한겨울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만큼 뜨겁고도 야한 사람들 가슴이 있었습니다.

a 엑스포장의 밤은 화려하고 야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순백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엑스포장의 밤은 화려하고 야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순백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 임윤수

불나방의 마음이 되어 화려한 불빛을 보고 찾아간 루미나리에 축제장에는 화려함뿐 아니라 한겨울 추위를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뜨겁고도 아름다운 야함이 있었습니다. 낮에 봐도 아름답고 야할 무희들의 춤은 야(夜)한 밤을 배경으로 깔아서 그런지 더없이 야하고 뜨거웠지만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색무취의 아름다움 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하루 저녁쯤 정이나 사랑을 향기로 피워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다면 가는 2006년이 아름답게만 기억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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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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