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김근태 짝짓기도 가능한 개헌"

[진단]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진보학계 찬반 엇갈려

등록 2007.01.09 12:31수정 2007.01.1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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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빙그레 웃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빙그레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9일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4년 연임제' 개헌론을 제기한 것과 관련, 진보학계에서는 찬성과 반대, 절충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며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변화에 관심을 표명했다.

올 하반기 대선을 앞두고 특별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노 대통령이 국면전환을 위한 판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노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4년 연임제' 개헌론에 대해 진보학자들은 대부분 신중한 의견을 표명했으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회 2/3 찬성을 얻어 국민투표까지 가야 하는 개헌 절차가 힘있게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의견이 많았다.

[찬성] "87년 체제 손질... 레임덕 줄이려는 최소한의 방어"

a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87년 법체제의 문제점을 손질한다는 차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임기동안 정치와 법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꾸준히 강조해온 만큼, 그 일환으로 4년 연임제 개헌론을 들고나온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국 교수는 "노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을 줄이고 마지막까지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라고 평가하고 "임기말까지 개헌론을 끌면 여야·범여, 혹은 여야 경계선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노 대통령이 "헌법 개정요소의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유독 '4년 연임제'만 제안한다면 결국 '정·부통령제'로 치환할 수도 있다"며 "만일 '정·부통령제로 가자'고 한다면 다양한 형태의 정치권 짝짓기가 가능해진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지금과 같은 이명박 독주 대선 구도에서 여야가 결합한 형태로 '이명박-김근태' 같은 조합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권 내부·여야 사이·야권 내부의 짝짓기 등 다양한 형태로 '정치권 짝짓기'가 가능해지고 종국에는 짝짓기를 통한 새로운 집권당의 출현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새로운 집권당이 만들어지기까지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손해볼 게 없다는 분석이다.


4년 연임제가 우리 사회 시스템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의 조 교수는 "문제는 이 논의를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행할 지, 아니면 정치적 논란을 피하는 차원에서 내년 대선 이후로 넘길지는 판단의 여지가 필요하다"며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진지한 논의가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조국 교수는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한 여야 정치권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1년 안에 여야 대표회담을 열어 2008년 신정부 출범 직후 열리는 첫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이 대선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굳이 2007년 대선에 적용하지 말고 현행법대로 이번 대선을 치르고 차기 정권에서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하고 다음 대선에서 개헌 헌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반대] "장기집권의 가능성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a 임지봉 교수.

임지봉 교수. ⓒ 자료사진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1948년 초대 건국헌법이 4년 중임의 대통령제였다며 "4년 연임제는 항상 '연임제한 철폐'와 '장기 집권'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헌정사를 불러왔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5년 단임제로 헌법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반대론을 폈다.

실제 제1공화국(1948-1960)에서 민주당 정권에 의한 의원내각제가 있기까지 4년 연임제를 실시했으며, 민주당이 제2공화국에서 의원내각제를 세웠으나 결국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그 뒤 제4공화국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4년 연임제로 회귀했으나 72년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이 노골화됐고,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린 바 있다.

임지봉 교수는 "박정희는 연임 조항을 아예 삭제하면서까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결정하면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다"면서 "이는 4년 연임제 대통령제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력 반대했다.

시민사회 발전으로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있어 장기집권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87년 6월항쟁 이후의 20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며 "아직까지는 장기집권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제도외적인 견제 장치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봐서 많은 헌법학자들이 개헌을 주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선을 앞두고 왜 하필 지금 개헌?

특히 임지봉 교수는 "임기말에 개헌론을 들고나온 데는 정치권 새판짜기를 위한 의도가 강하게 깔렸다"며 "정치적 국면 전환의 모티브를 헌법개정으로 삼는 게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개헌을 한다면 대통령 임기조항이 아니라 국민 기본권에 관한 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규정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로 꼽을 만한 것은 헌법개정·국가 안위에 관한 국민투표 뿐이라는 것.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개정되어야 할 헌법 규정로는 ▲국민발안(헌법개정이나 법률개정안)과 ▲국민소환(임기직 공무원에 대한 파면권)을 꼽았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사심 없이 제도적 차원에서 국가가 필요한 걸 하겠다는 의미라고 해도, 노 대통령이 굳이 지금 이 이슈를 제기하는 이유가 뭔지 답답하다"며 "대선을 앞둔 연초에 헌법개정을 제안하는 것이 적정한지 회의적"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제시했다.

[절충] "임기 개헌하고, 다음엔 다른 조항도 고치자"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것은 미시적인 차원에서 최소한의 개헌"이라며 "이번에는 대통령 임기를 개헌하고, 그 뒤 시민사회가 개정을 주장해온 헌법 조항도 바꾸어야 한다"는 절충론을 제시했다.

이어 임혁백 교수는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게 되면 엇박자가 나지 않고, 소위 분점정부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며 "4년 연임제를 통해 정치 안정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한 임 교수는 이후 실제 개헌 가능성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예전부터 4년 연임제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며 "2007년 대선이 한나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굳이 한나라당이 이 구도를 바꿀 수 있는 개헌에 찬성할 리 없다"고 말했다.

a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비서진들과 퇴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비서진들과 퇴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전 4년 연임제를 제안한 것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개헌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논의를 주문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담화 내용은 이미 시민단체 사이에서 논의 중인 사안"이라며 개헌의 필요성에 공간했지만, 정파간 이해에 휩쓸려 개헌 논의가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을 경계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대선과 총선 시기의 불일치에 따른 과도한 정치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원포인트 개헌'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각 정치세력간 갈등으로 더 많은 정치적 비용이 소모된다면 개헌의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미 한나라당이 개헌에 반대하고 있어서 개헌의 현실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대선을 염두에 둔 정략적 판단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에 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헌 논의가 단지 권력구조 문제에 국한된 정치권만의 논의가 돼서는 안 된다"며 "차별의 폐지, 지구적 책임, 사회·문화적 다양성과 온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두해로 끝날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 전 국민의 뜻을 광범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관영 사무처장은 "개헌 논의를 4년 연임제나 대통령-국회의원 선거 시기의 문제에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논의의 내용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확장된 논의를 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지 의문"이라며 "좀 더 일찍 논의를 시작했다면 논의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운동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구체적인 개헌 논의가 무엇인지 지켜봐야겠다"면서 공식적인 입장을 유보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개헌 논의를 던진 것이니까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개헌 논의는 이미 시민단체, 학계 등에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개헌이 국민적 합의에 의해 추진되지 않고 정파적 논란에 휩싸여 임기말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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