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위해 일터로 나가는 고달픈 생활윤병두
필리핀은 전통적 혈연사회로 부모,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3대가 한집에 사는 대가족제도가 남아 있다. 지난 연말 초청을 받아 찾아간 한 필리핀 가정도 식구가 12명이나 되었다. 어릴 적 살던 우리네 고향집을 연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한 집에 자녀가 5∼6명은 보통이다. 20살이 넘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며 독립해서 나가 살기 전에는 부모와 함께 산다. 가톨릭 사회이다 보니 산아제한은 불문율로 금지되고 있으니 아기를 많이 낳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사는 중심에는 바로 강인한 필리핀 여성이 있다.
필리핀 여성들의 삶은 어떠할까? 한마디로 가정의 모든 일을 안고 가는 고달픈 생활의 연속이다. 결혼생활의 모든 책임은 대부분 아내 쪽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남녀평등과 쌍계(雙系)사회라는 말은 하지만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결혼을 하면 여성은 남편 성을 따라가야 한다.
첩을 두는 것도 남자의 능력으로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알고도 억울하게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이 필리핀 엄마들이다. 바랑가이(씨족집단 마을)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가치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오죽하면 남편이 첩을 두었을까, 남편 대접이 시원찮고 몸단장을 잘못해서 그렇지 하면서 마을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남편 흉을 보고 떠벌려봐야 소용없다. 남편에게 헌신하고 주위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남편이 정부를 버리고 돌아 올 수 있다.
필리핀은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은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천국인 것 같다. 대통령도 여자고, 이곳 대학총장도 여자다. 사회 곳곳의 요직을 여성이 두루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전문직에도 여성파워가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