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개혁에 관심갖던 장교들 어떻게 되었을까?

저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의 후폭풍... 육사동창회 제명 등

등록 2007.03.08 08:45수정 2007.03.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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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문화 개혁을 위해 부르짖고 도전 해 온 내용들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책으로 엮어 2003년 6월 6일 내놓았다. 펴낸 날을 굳이 현충일로 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내가 죽어도 좋다는 비장한 각오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였다.


비감한 내 예측은 적중했다. 책이 나간 후 극우분자들은 하이에나 때처럼 나를 물어뜯고 돌을 던졌다. 지금까지 맺어온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시켜 죽은 것이나 진배없게 만들었다.

정훈병과 동우회에서 이라크 파병반대,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북 적대의식 교육 철폐 주장 등으로 정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제명했다. 이어서 육사동창회, 재향군인회 그리고, 성우회로부터 축출 당했다.

나를 인생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쾌재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영광의 훈장이나 다름없는 축복이었다. 수구언론이 지시한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BRI@제명 소식이 보도되자 네티즌들의 격려가 빗발쳤다. 며칠동안 눈물 흘리며 감동의 글을 읽느라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군대 개혁에 관한 내용이라 재미없어서 극히 제한된 분들만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직업군인 출신들은 금서나 되는 것처럼 거들떠보지 않았다. 사관학교 출신, 장군 출신들은 말조심 몸조심 눈치 보기가 몸에 배어 있어 딱 한 분만 “표 장군! 너 정말 용감하다. 그러나 몸조심해라!”라고 전화해 주었다.


<중앙일보>까지 과분한 서평을 해주었는데도 <국방일보>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민주화가 되었다지만, 세상은 수구 기득권 무리들의 난공불락 아성 그대로였으니 국방홍보 관리 소장만 다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육사신보>에서조차 모른 척 하고 있어 참을 수 없었다. 육사는 냉전 수구, 친일 독재의 극우집단 양성소란 말인가? 연락을 해 억지로 책 소개 난에 조그맣게 실었다.


출판기념회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고등학교 동기들만 축하의 화분을 보내고 격려해줬다. 동기회장은 내 책을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전 동기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서남현씨는 거금을 들여 완도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다. 늘 빚만 져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의 취재요청

기자들은 내가 그냥 한번 해본 이야기인지? 정말로 그런 개혁의지와 철학이 있는지? 궁금한 듯 꼬치꼬치 물었다. “어떻게 젊은 우리들보다 그렇게 개혁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기이한 일이라 했다.

육사 다닐 때에 <민족일보>를 구독하고 밀즈의 <들어라 양키들아>를 탐독하며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삼키는 등 민족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실이 너무나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의 성장 과정에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며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들의 의문에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곤란해 망설이고 있던 참에 마침 나의 아들이 '나의 천년 사'라는 표씨 족보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를 책으로 내겠다며 할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써도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뭐 문제되겠어! 제1 야당 대표의 아버지도 비슷한 사연이 있는데 알아서 해라!”고 했다.

이래서 나의 아버님에 대한 과거사가 활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결과 대놓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던 자들이 물 만났다는 듯 “거! 봐라!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며 살기를 돋아 색깔 칠을 해댔고 18기 동기회에서 앞장서 제명했다. 감싸 주어야 할 동기들인데. 이것이 육사출신의 수준이요 한계였다.

책 한 권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 군대에 관계되는 문제만 터졌다 하면 조·중·동을 제외한 신문과 방송들이 나의 견해를 물어왔고, TV는 집에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군 개혁에 관심 있는 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많은 분들이 나를 실제 이상으로 평가하며 대해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낯모를 젊은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거수경례를 하며 “장군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존경합니다!”할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도 그런 분을 가끔 만난다.

군 개혁에 관심을 보이던 사관생도들

학사장교로 전방 소총중대에서 복무했었다는 한 대학원생은 하급부대는 특별히 개혁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책 속의 내 주장에 대해 통박하며 두툼한 원고지를 보내왔다.

자신이 군대 생활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내용을 소설 식으로 기록한 내용인데 어쩌면 내가 40여 년 전 중대장 하던 때와 그렇게도 똑같이 그대로인지 너무나 놀랐다. 아니, 어떤 부분은 그때보다 훨씬 더 나빠지기도 했다.

친일 앞잡이들과 군부독재 세력이 만들어 놓은 군대문화를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유독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진급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존재들로 묘사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후배들이 부하들로부터 이런 정신적 따돌림을 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러나 이는 결코 편견 없는 정확한 관점이었다. 사관학교 훈육이 변하지 앓고 과거 그대로이니 거기서 양성된 간부는 대부분 그대로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 번은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외출 나갔다가 여자친구로부터 내가 쓴 신문 기고문을 받아 읽었는데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지도 받기를 원한다며 책 소개를 부탁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와 월간 <인물과 사상>에 5회에 걸쳐 연재한 글 등 몇 가지를 알려주었는데 그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생도 몇 명이서 방문할 테니 만나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직 우리 군은 냉전 극우세력들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퇴교될 수 있음을 염려하여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군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쯤 그들은 어느 부대에서 어떻게 근무하고 있을지? 우리 군의 큰 재목으로 성장해 가리라 믿으며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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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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