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총학까지 나서 '나가라'
학생들이 힘내라 할 땐 고마워"

[현장]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외로운 투쟁

등록 2007.03.13 10:40수정 2007.03.13 12:11
0
원고료로 응원
a

이순자(가운데) 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움막 같은 농성장 안에서 지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a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대학 본관 후문 입구 계단 아래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직원이며 교수, 학생들까지 나가라고 하대요. 그러나 간혹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아주머니 힘내세요'라는 말을 건넬 때 힘이 나죠. 그저 '고맙다'고 대답할 수밖에요. 지난 8일부터 여성단체를 비롯해 지역의 많은 단체들이 격려방문을 오대요. 힘이 납니다. 끝까지 할 겁니다."

농성장 침탈에 맞서 '알몸 대치'를 했던 울산과학대학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말이다. 어둠에 짙게 깔린 12일 저녁 울산과학대 본관 후문 계단에서 만난 이들은 "힘들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이들 여성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며 길게는 7년, 짧게는 2~3년간 이 대학에서 청소를 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소속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지난 1월 대학과 위탁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돼 이들은 한 달 뒤인 지난 2월 23일자로 계약 해지됐다.

이에 조합원 8명은 '노동탄압'과 '부당해고'라며 대학 본과 지하 1층에 있는 탈의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런데 지난 7일 아침 관리직 사원들이 농성장에 들어오자 이들은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옷을 벗고 '알몸 대치'를 했다. 본관 건물에서 쫓겨난 이들은 현재 본관 후문 입구 계간 아래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a

울산과학대학 강의동 건물 외벽에 붙은 현수막. ⓒ 오마이뉴스 윤성효

총학 "농성으로 수업 방해된다"

울산과학대는 정몽준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세운 대학이다.

지난 9일 울산과학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는 '호소문'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울산과학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이들의 농성장 앞에 몰려와 '학교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울산과학대 교수협의회는 "교수님들의 명예를 걸고 교정에 농성하고 있는 외부세력들의 철수를 강력히 요구한다, (중략) 외부에서 본 대학의 시설 일부를 점거하고 있는 민주노총 관련 인사들에게 자라나는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 대학을 떠나주기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밝혔다.

또 총학생회는 "곤경에 처해있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을 무조건 몰아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총학생회 측에서도 아주머니와 교섭 후 요구 사항들을 어기지 않을 시 이렇게까지는 완강하게 반대를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학우들의 강의수강 시간에 교내에서 민주노총 인원 대략 100여명이 집회를 해 저희 학우들의 수업을 방해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농성 중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 못해

조합원 윤경수(51)씨는 "힘들다, 많이 힘들다, 해고돼서 힘들고 생활이 어렵게 돼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조합원 박성옥(49)씨는 "이래 있는 것도 힘든데, 밤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전기는 물론 물도 끊기고, 화장실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본관 탈의실에서 농성할 때부터 전기가 차단된 상태로 지냈다. 본관 후문 계단 밑에서 천막을 쳐놓고 지내고 있는 요즘에도 본관 건물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더군다나 밤에는 전혀 출입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한 조합원은 "이전에는 밤이 돼도 본관 출입은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를 밖으로 쫓아낸 뒤 들어가지도 못하고 하고 있다, 화장실 사용하는 데도 어려움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물도 없어 학교 앞에 있는 조합원의 집에 그릇을 들고 가서 씻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며칠 전 휴대전화로 문자가 왔는데 '가정이 우선이다, 가정으로 돌아가시오'라는 내용이었다"면서 "문자로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해봤더니 받지 않았다, 학교에서 회유 작전을 펴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50~60살 안팎이다. 이들 중 절반인 4명이 혼자서 벌어 가정의 생활비를 충당해 오고 있다. 이달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만 다음 달부터는 생계가 막막한 처지이다.

이들은 임금을 다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루 근무시간은 8시간인데 거의 매일 정해진 시간보다 한두 시간씩 더 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월차와 연차도 쓰지 못하고 일한데다 당직까지 섰는데 이에 따른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들에 따르면, 조합원 1명당 월 평균 20만원 안팎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 체불임금 지급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a

조합원들이 지내는 농성장은 움막처럼 생겼다. 이곳에 드나들려면 허리를 굽혀야 한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옷 벗으면 못 끌어낼 줄 알았는데..."

이들은 지난 7일 탈의실에서 '알몸 대치'를 하다 쫓겨나오면서 부상도 당했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탈모증이 생겼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뽑혀 나갔다,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어 놓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울산과학대 총무과 관계자는 '알몸 대치' 상황에 대해 지난 9일 "여직원들이 먼저 들어가 아줌마들을 끌어내고 이불을 덮어줬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다른 주장을 폈다. 한 조합원은 "옷을 벗고 있으면 못 들어올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그런 (옷을 벗을) 생각을 했다, 들어오면 성폭행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그런데 2명의 남직원이 들어오고 뒤이어 여직원들이 들어왔다, 그 때 들어온 남자 직원이 누구인지 이름도 알며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도 있다"고 반박했다.

또 울산과학대 측에서 이들 여성노동자들이 머물렀던 곳은 탈의실이 아니라 대기실이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지하에 무슨 대기실이냐, 대기실이 아니라 탈의실이었다, 그리고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는다는 사실을 알면 남직원들은 들어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교수들까지 찾아와 '나가라' 회유

이들은 지난 9일 교수 10여명이 성명서를 들고 왔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학교에서 봉급 받는 사람들인데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순자 지부장은 "교수 10여명이 몰려 와서 서류 봉투를 내밀기에, 처음에는 우리 편에 서기 위해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그 교수들은 '우리 입장만 전달하겠다'며 봉투를 건네고 가버렸다, 내용을 읽어보니 나라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이 알려진 뒤,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현장을 찾기도 했으며 장애인학부모회를 비롯해 여성단체, 인권연대 등이 이들을 방문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자식들이 찾아와 '엄마 어려운 일 한다'며 힘이 돼 주기도 하고, 어떤 조합원의 사위가 찾아오기도 했다"면서 "딸들이 찾아와 울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 할 때는 가슴이 아프더라"고 털어놓았다.

a

ⓒ 오마이뉴스 윤성효

대학 내에 내걸린 상반된 현수막

울산과학대 캠퍼스에는 이번 사태에 관한 상반된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조합원들이 내건 현수막에는 "나이든 청소미화원 70만원에 일 시키더니, 계약해지 책임지고 과학대가 고용승계하라"고 적혀있다.

반면 총학생회와 노동조합에서 강의동과 정문 등에 내건 현수막은 "민주노총에는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할 권리가 없다, 후배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말고 교정에서 나가달라""소요사태 배후조종하는 민주노총은 물러가라, 계약이 완료된 (주)한영 직원은 즉각 철수하라"는 내용이다.

울산과학대 측은 이영순 의원과 민주노총 울산본부 등에서 요구한 대화 제의도 모두 거부했다. 조합원들은 오는 14일 이 대학 이사장인 정몽준 의원 사무실을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

한 조합원은 "물론 오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가서 할 말이 너무 많다, 뭐라고 대답하는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울산과학대 사태의 쟁점은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 사태의 쟁점은 고용승계 여부다. 이들은 길게는 7년 동안 일했고 대학 관리직원들에게 직접 지시받는 경우도 있었기에 고용승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의 김덕상 위원장은 "이들은 학교가 생겨날 때부터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2년 전 위탁업체가 바뀌었을 때도 고용이 승계됐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고용승계가 되지 않은 것은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들의 요구는 인간적인 대우를 해달라는 것,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해 7월 13일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울산과학대는 올해 1월 청소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을 해지했으며, 위탁업체는 지난 1월 22일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에게 2월 23일자로 계약이 해지된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울산과학대 측은 이들이 소속됐던 청소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이 끝났기에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의 고용 등은 해당 업체와 관련된 문제로, 울산과학대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물 닿으면 피부 발진, 고름... 세종보 선착장 문 닫았다"
  3. 3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4. 4 채상병 재투표도 부결...해병예비역 "여당 너네가 보수냐"
  5. 5 '최저 횡보' 윤 대통령 지지율, 지지층에서 벌어진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