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디지털교과서 대체 계획 논란

학생 건강 임상실험도 없이 도입 결정

등록 2007.03.14 15:15수정 2007.07.08 16:02
0
원고료로 응원
a 교육부가 내놓은 디지털교과서 모형.

교육부가 내놓은 디지털교과서 모형. ⓒ 교육부

교육부가 정작 학습효과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학생건강상의 부작용에 관한 임상실험은 하지도 않은 채 기존 교과서를 디지털교과서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학생 학습과 건강에 직결된 교과서의 멀티미디어화 사업을 시간에 쫓기듯 성급하게 결정,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교과서 전면화 계획을 내놓은 것은 세계 최초다.

@BRI@교육부가 지난 7일 발표한 방안의 뼈대는 기존 교과서를 대체할 디지털교과서를 올해부터 개발하기 시작해 오는 2011년에 시범학교를 100개로 늘린 뒤, 2013년에 전면 확대하겠다는 것. 이 디지털교과서는 기존 교과서 내용과 함께 참고서, 학습사전, 공책 등도 하나로 묶이게 된다.

교육부는 이날 김신일 교육부총리까지 나선 브리핑에서 '창의적인 개별학습, 교육격차 해소, 사교육 의존도 완화, 전자책 관련 산업 활성화' 등과 같은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따른 기대 이익만 부각시켰다.

문제는 교육부가 교육의 본질과 직결된 학습효과에 관한 심층 연구나 학생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임상실험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

교육부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학습효과에 대해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4개 학교 학생 300명에 대해서 연구한 것이 전부다. 교육본질보다는 정보기술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기관에 연구 업무를 맡긴 것도 문제지만 연구보고서 확정본이 인쇄되기도 전에 디지털교과서 방안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올만하다.

학생 건강 문제에 대해 교육과 의료 전문가가 참여한 임상실험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려면 보통 8∼12인치 타블렛 모니터를 쓰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해로운 전자파를 받은 학생들이 두통이나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증세(VDT증후군)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영효 전교조 참교육실 정책국장은 "교육부가 서책형 교과서를 보완하는 형태의 기존 전자교과서 논의를 갑자기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교과서를 상용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문제"라면서 "교육에 대한 일대 변화를 주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교육적인 검증절차나 학생 건강에 대한 임상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송미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연구관은 "학생 건강문제, 예산문제 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앞으로 2011년 시범적용 기간까지 5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임상실험 등 폭넓은 연구를 진행해가면 된다"고 해명했다.


덧붙어 김 연구관은 "당장 서책형 교과서를 없애고 디지털교과서로 대체하는 등 급하게 서둘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정책과, '숨어 있는 손'에 휘청?
전경련 교과서, 디지털 교과서, 새교육과정 파행 살펴보니

▲ 교육부와 전경련이 공동저작권자로 적혀 있는 경제교과서 표지.
ⓒ교육부
물론 교육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효과에 대한 심층 검증이나 학생 건강에 대한 임상실험도 없이 덜컥 발표부터 하고 보는 조급증은 뒤탈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실효성 문제로 도마에 오른 디지털 교과서 관련 이야기다.

왜 교육부는 재원마련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빨리 발표하고 보자'식의 태도를 보였을까. 교육계 안팎에서는 IT(정보통신) 산업계의 요구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도 지난 7일 브리핑에서 "디지털 교과서로 전환하는 것은 학습용 단말기와 네트워크 장비 보급 등 이동통신기기와 전자책 관련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T 산업에 기여할 것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이 디지털 교과서 실무책임을 진 곳은 바로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과장 박제윤)다. 최근 이 부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말썽이 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손잡고 경제교과서 제작 실무진행을 맡은 곳도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해 2월 전경련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어 문제의 경제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11월 29일까지 전경련과 함께 '경제교과서 발전자문회의'를 네 차례에 걸쳐 열었다. 이 회의의 주무부서 역시 교육과정정책과였다.

이에 따라 나라의 교과서를 책임진 교육과정정책과가 산업, 재계경제계의 입김에 휘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온다.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교육과정 방향을 틀어잡고 중심을 잡아야 할 교육부의 부서가 전경련과 손을 잡고 교과서를 만든 것은 큰 문제"라면서 "더 나아가 IT 산업을 이끌 것이란 기대를 내보이며 설익은 디지털 교과서 제작을 발표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부서에서 주도한 새 교육과정 편성 과정도 파행을 겪은 채 마무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심 잃은 교육과정정책과 때문에 교과서 정책이 비틀대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송미 교육과정정책과 연구관은 "교육과정정책과는 무엇보다 교육 본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했고, 같은 부서 권종원 연구사도 "디지털 교과서가 산업체에 이끌린 것은 전연 아니다"고 IT업계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 윤근혁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교과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