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EU, 두 공룡의 불꽃 튀는 무역전쟁

등록 2007.03.27 16:00수정 2007.03.2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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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에게 유럽은 어떻게 인식될까? 중국 근대의 출발점이 되는 1840년의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영국에 155년간 할양해야 했고,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446년간 실질적인 사용권을 빼앗겨야만 했다. 중국의 근대에서 유럽은 '땅 따먹기'의 침략자였으며 중국의 차뿐만 아니라 위엔밍위엔(圓明園)의 찬란한 중국 문화재를 훔쳐가는 약탈자의 이름에 다름없었다.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한 자랑스러운 과거를 반추하며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 젖어 있던 중국인들에게 '개와 중국인은 출입을 금한다(狗與華人不得入内)'는 치명적인 굴욕을 안겨준 것이 바로 유럽인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모두 프랑스유학을 통해 유럽의 선진기술과 문화를 습득한 이들이었으며, 많은 중국인들에게 유럽형 자동차와 별장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스포츠채널에서는 매일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리그가 생중계되며 중국의 젊은이들은 유럽의 선진축구에 환호하며 축구복권을 맞춰보느라 정신이 없다.

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성공이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전을 불러왔다면 1957년 3월 25일 로마조약을 출발점으로 탄생하는 유럽연합 EU는 27개국, 4억8800만 명을 거느린 세계최대 경제블록으로써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로 무장하고 '무력'이 아닌 '자본'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세계시장의 거인과 거대 시장의 대결

a 중국과 EU의 국기는 마치 양자간의 별들의 전쟁을 보여주는 듯하다."

중국과 EU의 국기는 마치 양자간의 별들의 전쟁을 보여주는 듯하다." ⓒ 김대오

세계 총생산의 21%를 차지하는 세계경제의 거인 EU에게 중국의 거대시장은 과거 영토식민지보다 더 큰 매력을 갖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면적은 960만㎢이고 관례적으로 적용되는 유럽대륙의 면적은 약 1040만㎢이다.

영토면에서 중국과 EU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며 각각 신흥경제대국 BRIC와 선진국의 경제블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중국과 EU, 두 거대 공룡은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는 과거의 '종이호랑이'가 아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지난해 이미 미국을 제치고 EU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되었고, EU의 대중국 무역적자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이다. 지난해 EU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총액은 2490억달러로 전년대비 21% 증가한 반면 중국에 대한 수출은 829억달러에 그쳤다.

다급해진 EU가 먼저 중국의 약점인 지적재산권문제를 걸고넘어지며 중국산 가짜 의류, 담배, CD, 술 등을 단속하는 동시에 수입자동차 부품에 대한 중국의 고관세 부과에 항의해 WTO에 제소하자 중국도 뒤질세라 유럽산 감자전분에 대한 35%의 높은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맞서 EU가 또 중국산 가죽신발, 컬러TV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유럽산 샤넬, 버버리, 막스마라, 자라, 에스프리, Etam, 스누피 등의 유명 브랜드 의류에서 발암물질이 포함된 유독성 염료가 검출되었다면서 판매를 중단시켰다.

불꽃 튀는 두 경제 거인의 무역전쟁은 지난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91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EU가 더 다급해 보인다. 중국산 전자제품에 대한 환경규제인 ROHS 규정을 강화한 데 이어 철강, 섬유, 의류 등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반덤핑 공세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정부기관을 통해 확정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한다면 EU 각국의 속사정은 다소 복잡하다.

중국의 항공기와 고속전철 등의 공공서비스분야에 진출하려는 프랑스, 금융, IT 분야의 시장 진출을 노리는 영국 등 중국과의 통상현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유럽은 여전히 중국의 선망과 배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과거처럼 쉽게 유럽의 선진기술과 자본의 위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EU가 선진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경쟁우위와 환경과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로 중국을 공략한다면 중국은 값싼 노동력의 중저가상품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하면서 거대시장의 파워방패로 EU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과 EU, 두 거대 공룡의 일촉즉발의 무역전쟁은 앞으로도 전선을 확대하며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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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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