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짜리 헤어디자이너 보세요

뼈가 작다고 했던 딸, 손목 힘이 제법 야무지네요

등록 2007.04.11 09:59수정 2007.04.11 10:5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살 큰딸 소연이는 토요일도 유치원에 갑니다. 원래 금요일까지만 정규수업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쉽니다만 유치원 자체적으로 매주 토요일은 씽취빤(興趣班:취미반)을 만들어 선택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 춤추는 걸 너무 좋아하는 소연이는 1학기 때부터 우다오빤(舞蹈班:무용반) 수업에 넣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어 합니다.


하지만 토요일에 유치원 가는 언니를 아주 못마땅해 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3살 은혜랍니다. 평일날에도 하루 종일 엄마랑 있으면서 오후 4시 반에 언니 데리러 갈 시간만 기다리는 아이거든요. 못마땅해도 뭐 어쩌겠어요. 언니는 좋다고 가는걸.

지난 토요일(7일), 그날도 역시 소연이 무용수업에 늦지 않게 8시 반까지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일찍 일어난 은혜도 같이 갔다가 언니가 교실에 들어가는걸 보고 나오는데 그때부터 입이 나온 은혜, 걷기 싫은 걸음으로 ‘터덜터덜’ 아주 억지로 걷더군요. 엄마한테 괜히 심통 부리고 말이죠.

집에 돌아왔는데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서있네요. 고집이 보통 아닌데다가 심술까지 난 애한테 뭐라 하기도 그렇고요. 목구멍까지 소리가 나오려는 거 꾹 참고 신발을 벗겨 줬습니다. 은혜는 강경하게 대하면 오히려 달래기가 힘든 걸 지금까지 키우면서 터득했기에 될 수 있으면 화를 참고 끝까지 인내하며 아주 부드럽게 대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잘못한건 금방 인정하는 편이거든요. 3살짜리라고 우습게 볼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화 안내고 이렇게 저렇게 기분 맞춰주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요. 펑퍼짐한 몸으로 방정맞게 뛰면서 춤도 같이 췄더니 엄마 모습이 웃겼나?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고 난리 났습니다. 웃으면 천하에 천사가 따로 없을 만큼 예쁜데 어째 그리 인상을 쓰는지….

a 바닥에 앉아 열심히 코끼리 인형 귀를 묶고 있는 은혜.

바닥에 앉아 열심히 코끼리 인형 귀를 묶고 있는 은혜. ⓒ 전은화

춤추느라 숨이 차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세수까지 하고 거실로 나왔더니 은혜는 거실 바닥에 앉아 노란색 코끼리 인형 귀를 잡고 낑낑대고 있었습니다.


“은혜 뭐해?”
“우네 머리 무꺼여. 호끼리 머리 무꺼여(은혜 머리 묶어요. 코끼리 머리 묶어요.)”
“그래? 우리 은혜 잘 하네~, 이쁘게 묶어줘~”
“응!”

a 한참 앉아서 묶더니 코끼리를 '삐삐'로 만들어 놨네요.

한참 앉아서 묶더니 코끼리를 '삐삐'로 만들어 놨네요. ⓒ 전은화

아침마다 소연이 머리 묶어주는걸 보더니 그게 그렇게 하고 싶었나 봐요. 코끼리 인형 귀가 머리카락인줄 알고 고무줄로 꽁꽁 묶더니 완전 ‘말괄량이 삐삐’를 만들어 놓았어요. 그리고는 그렇게 흐뭇해 할 수가 없더군요. 손가락에 고무줄 끼고 돌리는 게 3살짜리 치곤 참 능숙하게 보였어요.


다 묶어놓고는 “엄마~! 다 해떠요. 호끼리 봐여(엄마 다 했어요. 코끼리 봐요.)” 거참 발음도 어리버리한 게 말은 참 많이 해요. 하여간 코끼리 머리가 아니고 귀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지 눈엔 머리카락이에요. 빗질 하는 시늉까지 하거든요. 자~, 코끼리 헤어 완성 해놓고 어슬렁어슬렁 엄마한테 오네요.

“엄마~, 머리 무꺼 주께여 네? 빠이요.(엄마 머리 묶어 줄께요. 빨리요.)”
“아휴, 엄마는 괜찮은데… 그래 자 묶어봐.”

a 엄마 머리까지 묶어 줄려고 아주 애쓰는 딸이에요. 등에서 묶더니 내려와서 또 묶고...

엄마 머리까지 묶어 줄려고 아주 애쓰는 딸이에요. 등에서 묶더니 내려와서 또 묶고... ⓒ 전은화

못 이긴척 엎드렸더니 냅다 등에 올라탄 은혜는 머리를 묶는 건지 쥐어뜯는 건지… 잡아당기는 힘이 보통은 아닌지라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몇 번이나 질렀습니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제멋대로 스타일을 만들어 놓고 이쁘다며 칭찬까지 늘어놓는 딸. 그 말 믿고 거울보고는 엄청 웃었지요. 머리 스타일이 완전 엉망이긴 했지만 사실은 딸내미 야무진 손놀림에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은혜 임신했을 때 임신인걸 모르고 때마침 아픈 눈 때문에 약을 먹은 데다가 큰딸 젖 뗀다고 젖 떼는 약까지 먹었습니다. 나중에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땐 아기 건강이 염려되어 얼마나 근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6개월쯤 한국에 갔을 때 병원 가서 검사했는데 별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와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그땐 정말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8개월쯤, 초음파 검사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뼈가 좀 작다고 하시더군요.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셔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만 어쩌다가 은혜 손목이라도 삘 때면 그 말이 상기 되면서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런 딸이 요즘엔 살이 쪄서 그런지 튼실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거기다가 머리카락 쥐어 잡는 손에서 느낀 그 야무진 힘에 마음은 또 왜 그리 가볍고 좋던 지요.

머리 만지기 좋아하는 딸,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는지… 진짜 멋진 헤어디자이너 되서 만날 엄마 머리 촌스럽다며 멋쟁이 만들어 주는 건 아닌지… 하하. 이제 겨우 3살짜리 애한테 꿈이 너무 야무지죠? 뭐가 되든지 간에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먼저랍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