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에 남도의 맛과 인심이 듬뿍 들어갔다맛객
며칠 전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영등포역에 나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역 주변에서는 20~30명의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플라스틱 대접에 든 국밥을 비우고 있다. 자선단체에서 배급해주는 음식으로 말 그대로 한 끼 식사를 때우고 있는 중이다. 익숙한 듯 주위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
미식 붐이 일면서 음식은 살기 위해서만 먹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은 살기 위해 먹고 있는 듯보였다. 전직 대통령의 말마따나 굶으면 죽으니까 먹는 본능 외에 어떤 미각의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만약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 목숨이라면 밤새 마신 술이 깨기도 전부터 수저를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고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음식은 삶과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문화이고 근래 들어서는 여가생활의 한 면을 담당하기도 한다지만 아직도 어려운 이웃에겐 배고프지 않기 위해 먹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생각에서다.
자연스레 맛객은 추구하고 있는 맛의 세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진미와 별미를 소개하고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으면서, 정작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해서다. 또 음식평론을 이유로 음식사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해 보기도 한다.
음식은 시대에 따라 사람의 입맛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다. 퓨전요리 개념이 생긴 뒤로는 음식의 변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뒤죽박죽 음식이 태어나고 있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음식의 원형을 가장 잘 지켜오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국밥이다. 장터국밥, 돼지국밥, 쇠머리국밥, 순대국밥, 안동국밥, 콩나물국밥 등 이보다 변화에 무감각한 음식이 또 있을까?
어쩌면 국밥과 퓨전음식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란 생각도 든다. 분위기보다는 정서적인 음식이고 맛보다는 배고픔을 달래려고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밥을 마주하는 시간은 가식이나 사치가 필요 없는 솔직한 시간이다. 화려함으로 포장된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에, 국밥은 묵묵히 음식의 근본을 보여주고 있다.
음식의 근본을 지켜가는 국밥
배고파 돌아가시겠다는 사람에게 천하 진미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마도 그는 뜨끈한 쌀밥에 훌렁한 국, 거기에 몇 가지 반찬을 더한 밥상을 원할 것이다. 맛객 역시 그렇다. 배가 고파지면 절로 생각나는 음식이 국밥이다. 그런 걸 먹어야 속이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국밥은 대중적인 음식이다. 그러다보니 국밥집도 흔하다. 하지만 특별한 맛을 내는 집은 흔하지 않다. 단순한 음식 같지만 그래서 특별한 맛을 내기가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정한 맛집도 귀한 재료와 값비싼 음식이 아닌 평범한 재료와 음식으로 특별한 맛을 내는 집이다. 그 음식이 국밥이라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