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두짜>는 화장실에서 읽으세요

[책소개] 리드미컬한 시로 되살려낸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등록 2007.04.16 15:29수정 2007.04.17 13:50
0
원고료로 응원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가운데 '이 사람 혹시 천재가 아닐까' 싶은 인물이 두 명 있다. 한명은 김정환 시인이고, 또 한명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야그 펴냄, 이하 <짜라두짜>) 번역자 백석현이다.

이론을 제기할 사람도 물론 있을 텐데, 김정환 시인의 경우 전화번호부 두께의 독일어 철학사전을 끼고 러닝셔츠 바람에 슬리퍼를 끌고 술집에 나타나는 모습을 본다면, 어쨌든 그가 분명 보통사람과는 다른 정신세계에서 노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쉽게도 백석현의 천재성(으로 내게는 보이는 언행)에 대해선 얘기할 수 없다. <짜라두짜> 책 표지의 옮긴이 소개에 '번역 작품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다'며 '책 그 자체로만 보아주길 원'한다고 굳이 적어둔 만큼 그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 될 터이다. 다만 그의 필명 백석현이 고 이오덕 선생의 동시모음집에서 빌려온 어린이 이름으로, 실명 대신 가명을 쓸 수밖에 없던 80년대의 선물이라는 점만 밝혀둔다.

<짜라두짜>는 아포리즘과 우화로 가득 찬 시집?

a <짜라투라는 이렇게 말했지>

<짜라투라는 이렇게 말했지> ⓒ 야그

짜라두짜? 다소 코믹하게 들리는 이 단어는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와 이음동의어다. 그러니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 책이다. 그리고 오해 마시길! 패러디가 아니라, 원래 그대로 정통 번역서다.

번역자에 따르면 '차라투스트라'의 독일어나 영어 발음은 원래 네 음절로서 우리 귀에는 '짜라두짜'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야 음율을 맞추기도 좋다. 그래서 '짜라두짜'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름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짜라두짜>는 원래 아포리즘과 우화, 이미지로 가득 찬, 매우 리드미컬한 시(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 자신도 <짜라두짜>는 "읽으라고 쓴 책이 아니라 암송하라고 쓴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번역본 <짜라두짜>는 무엇보다 원래 모습 그대로, 시로 옮기려 애쓴 책이다. 특히 원문의 템포와 뉘앙스를 우리말로 되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번역에 대한 니체의 지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번역할 때 제일 옮기기 힘든 부분은 문체(style)의 템포이다. 문체의 템포는 그 민족의 성격에서, 좀 더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템포에서 나온다. 정직하게 한답시고 공을 들인 번역이지만 의미와 단어에서 위험한 부분을 가로질러 뛰어넘는 원문의 용감하고도 즐거운 템포 자체를 옮기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문을 속악(俗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오역이 되고만 경우가 종종 있다." - <선과 악을 넘어서> 28장.

<짜라두짜>는 '시집'(?)답게 글의 배치도 운문 형식으로 편집했다. 뿐만 아니라 아예 더 나아가 세계 처음으로 장/연 표시를 했다. 프롤로그를 '0'장으로 하고 나머지 1부터 80까지의 숫자를 부여했다. 연 번호는 니체가 단락을 구분한 곳을 기준으로 매겼다. 각 연마다 붙은 장/연 표시 숫자에서 번역자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389개의 주석

니체의 <짜라두짜>는 유럽문화와 지중해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제로 한다. 독자에게 상당 수준의 교양이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짜라두짜> 번역본에서 성실하고 정확한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샘을 찾는 능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지중해 인근의 메마른 기후에 대한 이해, 즉 구약성서의 이집트 탈출(엑소더스) 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음미할 수 있다. 또 '나는 내 손으로 내 머리에 왕관을 씌웠다'라는 표현은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 일화를 알면 그 뜻이 더욱 또렷해진다. '동상을 끌어내린다'는 표현 역시 1871년 5월 파리 코뮌 당시 폭도가 나폴레옹 동상을 끌어내린 사건을 알 때 그 맛이 정확히 전달될 수 있다.

<짜라두짜>에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 389개의 주석이 붙어 있다. 나아가 미처 주석을 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출판사 사이트(www.yaague.com)의 번역자 블로그를 통해 계속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짜라두짜>는 또한 번역 용어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함의를 가진 용어들에 대해 그렇다. 인간 무리를 가리키는 용어와 관련해서도 떼, 대중, 많고 많은 사람, 남아도는 사람, 인민, 어중이떠중이, 폭도를 일관되게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일곱 개 봉인’을 ‘일곱 겹 봉인’으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영원 회귀’이란 용어를 ‘영원 반복’으로 고쳐 사용한 데선 번역자의 치열한 고민과 함께 자신감에 기초한 고집조차 느껴질 정도다.

운명이 인간으로 변하는 비밀을 알고 싶어?

19세기 후반 유럽문명의 붕괴를 예견했던 세기말의 철학자(번역자에 따르면 원래 그리스 고전 문헌학자이기도 한) 프리드리히 니체.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짜라두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것은 니체 자신에게 <짜라두짜>가 의미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운명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어? 내가 쓴 짜라두짜를 읽어 봐.

'선과 악'에 관한 창조자가 되려면
먼저 가치를 파괴하고 부숴야 돼.(34:41)

가치를 부순다는 최악의 악(惡)이,
가치를 창조한다는 최선의 선(善)과 함께 해.
하지만 이 선(善)은 창조를 위한 선(善)이야.(34:42)
- <이 사람을 봐> '나는 왜 운명인가' 중에서


번역자는 <짜라두짜>의 부제도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책'이라고 옮겼다. 당대 유럽사회에서조차 <짜라두짜>는 (내용의 난해함보다는 주장의 과격함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짜라두짜>는 사상의 깊이 때문이 아니라 언어의 장벽 때문에 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짜라두짜>가 우리말로 철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아포리즘의 원래 자기 모습을 되찾았다. 나로서야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전의 번역서와 달리 책장 넘기는 재미가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덧붙여 번역자는 친절하게도 <짜라두짜>를 읽는 방법도 안내하고 있는데, 니체의 얘기를 빌린다면 <짜라두짜>는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지는 진실,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지는 깨달음"이다. 그러니 "하루 이틀 만에 뚝딱 읽어 치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잠자리 머리맡 혹은 화장실에 놓고 지치거나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한 구절씩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읽으면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99.8% 확신하건대, 아마 번역자 역시 그렇게 <짜라두짜>를 읽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 보면서.

나처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수많은 독자들에게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에 새롭게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석현 옮김, 야그 펴냄, 2007, 752쪽, 15000원

덧붙이는 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석현 옮김, 야그 펴냄, 2007, 752쪽, 15000원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살아있는 재해석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201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