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환상이 부른 세 번의 이사

시행착오 인정했지만 수업료는 비쌌다

등록 2007.04.23 18:49수정 2007.04.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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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
전원주택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이현숙
지난해 이맘 때쯤, 걸핏하면 전원주택을 노래하던 친구가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21평형)를 팔고 사서 가려 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한 발 후진,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전세를 얻어 갔다.


처음에 이사 간 집은 대지 100평에 건평이 30평으로 혼자 살기에는 큰집이었다. 방이 네 칸이나 되고 거실도 아주 넓은. 자연 커튼이며 넓은 거실에 놓아둘 몇 개의 소품이 필요했다.

집주인은 신이 나 있었다. 예쁜 커튼에다 집앞 텃밭에는 꽃씨도 뿌리고 상추나 치커리 등 채소도 심었다. 집들이 날 모인, 몇몇 친구들은 넓은 집에 사는 그를 매우 부러워했다.

그런데 찬란한 꿈은 일주일도 가기 전에 시들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나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데, 삐거덕 뚝뚝 소리가 예고도 없이 들리니 신경이 쓰여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에게는 약간의 난청 증세가 있다. 그래서 더 아파트를 탈출하고 싶었던 건데, 이건 한 술 더 떠서 집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도깨비가 삐거덕거리며 천장에서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나 그의 신경을 박박 긁어 놓은 것이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에 의하면 지붕에 시공한 판넬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종합해 본 결과 판넬이 기온 차에 의해 늘어나고 줄어들면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부터 아침까지, 그리고 오후 늦게부터 밤까지, 이를테면 기온 차가 많이 날 때에 소리가 더 심하게 났다.


나도 처음에는 유난스럽다고 지나치려다가 친구가 하도 힘들어하기에 하루를 같이 있어 보았다. 그런데 정말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차라리 이사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해주었다.

전원주택 마당 여기저기에 피어난 들꽃
전원주택 마당 여기저기에 피어난 들꽃이현숙
결국 그 집은 다시 부동산에 내놓았고, 두 달 만에 다른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동네 제일 뒤쪽에 있는 집으로 산 바로 밑이었다. 하지만 말이 전원주택이지 대지는 250평에 건평은 20평도 안 되는 작고 허름한 집이었다.


곧 여름이 왔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마당에 잡풀은 우후죽순 자라나고, 게다가 집터 자체가 산에서부터 물이 내려오는 자리였다. 지난 여름, 비는 왜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비만 오면 나도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집안의 습기는 또 얼마나 차겠는가.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에 곰팡이가 피고 벽에서도 물기가 묻어난다고 했다.

이사 시작... 주인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듯...
이사 시작... 주인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듯...이현숙
하지만 끔찍한 일은 따로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뱀. 초여름 어느 날, 마당에서 뱀을 봤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뱀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사람이라 말만으로도 끔찍했는데, 그런 중에도 백반을 사다가 집 주위에 뿌리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후로 그 집에 가면 뱀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착하면 차는 바로 현관 앞에 세울 것을 주문했고, 마당을 밟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으며, 다시 차를 타야 할 때는 차문을 열고 안 여기저기를 살핀 다음에 차에 올랐다.

내가 이 정도였으니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오죽했을까? 내 앞에서는 뭐 뱀 가지고 그러냐고 큰소리쳤지만 여름내 백반을 사다 놓는 눈치였고, 이사할 때 보니 서랍에 하나 가득 백반이 들어 있었다.

성냥갑이니 개성이 없다느니 하면서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아파트
성냥갑이니 개성이 없다느니 하면서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아파트이현숙
겨울에 너무 추운 것, 연료비가 많이 드는 것, 쓰레기 처리가 어려운 것은 차라리 부수적인 것에 속했다. 1년이 돼 가는 어느 날 그는 이사를 결심했다. 비용이 들어도 원위치로 복귀해야겠다며.

다행히 아파트에 들어온 사람이 1년 계약을 해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집을 비워주겠다고 했다며….

이삿짐으로 복잡한 집안.
이삿짐으로 복잡한 집안.이현숙
이사하는 날 나는 도우미를 자청하고 나섰다. 이 친구 1년 만에 이사를 세 번 하고 500만원(내가 어림잡아본 금액)이나 되는 돈을 날리더니 아주 왕소금이 되어 있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 간식 좀 주자고 해도, 점심 좀 맛있는 거 먹자고 해도 끄떡도 안 한 채 표정이 굳어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채근을 해 겨우 일하는 분들 간식을 사왔고, 나는 그와 같은 짬뽕으로 끼니를 때웠다.

비로소 안정을 찾은 듯한 주인...
비로소 안정을 찾은 듯한 주인...이현숙
그래서 보복으로 그의 아픈 곳을 찔러주었다.

"그래서 전원주택이 그렇게 좋았어?"
"아니, 시행착오."
"그런데 수업료가 너무 비쌌지?"

이 친구 고개를 끄덕끄덕. 나는 이쯤으로 봐 주기로 했다. 한 해에 이사 세 번. 아무리 시행착오라지만, 머리 꽤 아팠을 텐데, 점심쯤 짬뽕으로 때울 수도 있지, 하고.

정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서 산다면 인생도 생활도 저절로 행복하고 저절로 즐거워진 텐데…. 역시 그런 삶은 그림 속에나 있는 거지, 현실에서는 어려운 거 같다.

내가 1년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전원생활은 조금도 그림 같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도시 생활이나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걱정거리도 많고 부산스러웠다. 그러나 이 친구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은 듯. 5년쯤 계획을 세우고 이번에 겪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다시 도전할 거란다.

정말 전원생활이 꿈이라면 이렇게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직접 경험을 해보면서 기대치는 낮추고 시행착오는 줄여서, 일찌감치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자연에 적응해 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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