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고맙습니다!

[서평] 권이순 외 <해바라기 도둑>(함께북스)

등록 2007.05.14 12:04수정 2007.05.1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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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는 소읍의 여러 학교들도 지나가곤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엔 더 눈길이 가는데 머리가 여물기 시작하는 중고생들보다 어린이들에게 더 친근감이 들어서지요.

아니 그 보다는 작지만 앙증맞은 건물과, 세종대왕 동상이 버티고 앉아 계시는 운동장, 높지 않은 담 너머로 마을 가옥들이 보이는 그런 시골 학교의 모습에 정겨움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번은 함양에서 좀 떨어진 초등학교를 갔었더랬지요(제 기사 ‘작은 학교 행복한 아이들’참고). 정여창 고택이 있는 마을입니다. 공부가 파할 즈음의 나른한 시간이었습니다. 넓은 운동장에서 바라본 학교 건물이 사랑스러웠습니다. 2층의 기다란 건물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교실, 도서실, 보건실, 유치원….

a 함양에서 조금 떨어진 소읍의 한 초등학교.

함양에서 조금 떨어진 소읍의 한 초등학교. ⓒ 박태신

그 곳 정문 밖 게시판에 학년별 인원수가 적힌 게시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1학년 8명, 2학년 10명. 그 숫자가 얼마나 인상깊던지. 지금은 학생 수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궁금하네요.

때로는 휴일날 텅 빈 학교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증산 역에서 출발하는 정선선 열차는‘레일 바이크’라는 여행 상품이 개발되어서 지금은 종착역이 아우라지 역입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선선 관광열차는 아우라지 다음 역인 구절리 역까지 운행되었습니다.

그 보다 훨씬 전에 수해로 정선선이 끊어졌을 때는 증산 역에서 정선 역까지만 운행되었습니다(대략 정선선의 중간 위치). 그리고 그곳에서 버스로 아우라지 역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철로와 도로가 유실되고 간이역은 유명무실화되었습니다.

a 정선 구절리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선 구절리의 한 초등학교에서. ⓒ 박태신

그리고 오랜 시간 지나 복구가 되었을 때 다시 정선선을 탔습니다. 그리고 열차가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전에 한참을 머무는 종착역 구절리 역에서 내려 주변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한적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무슨 영화 세트장 같이 일자로 뻗은 길 양옆으로 상가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만큼 외진 시골의 정겨움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마을 끝에 한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그곳도 저의 여행 코스가 되어 주었습니다.

서울에서 나서 자라고, 학교도 서울에서만 다닌 저로서는 이런 시골 학교에서의 정서를 동경하곤 했습니다. 여행은 거의 혼자서 다녔으니, 학교 안에 머물고 싶을 때까지 머물고 둘러보고 기억과 카메라에 담아두고 나오지요.


a 강진의 한 초등학교.

강진의 한 초등학교. ⓒ 박태신

강진의 한 학교에서는 그런 곳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제 기사 ‘밝은 분위기의 창을 지닌 세 곳’ 참고) 그리고 나중에 늦게나마 그런 자리에 들기를 꿈꾸기도 했지요. 편입할 수 있나 해서 교육대학 입시요강을 들춰보곤 했지요. 물론 꿈으로 끝났지만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아이들과 복닥거리는 선생님들의 눈에는 이런 학교가, 그들이 만나는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눈에 들어올까요. 만약 그런 체험을 수기로 읽는다면 가식이 없고 리얼리틱해서 좋겠지만, 간혹 데이트하러 나가는 아가씨 마냥 무대에 서는 뮤지컬 가수 마냥 몸치장 조금 하는 정도는 용납하고 쓴 글이라면 더 눈길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드라마틱한 요소, 환상적 요소, 해피엔딩의 결말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요. 여기 그런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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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해바라기 도둑>은 전국의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동화(‘교원 문학상 수상작품’)를 모은 책입니다. 아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부모가 아니기에 간접적으로, 교사이기에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의 소품집입니다. 16편의 작품 대부분이 짧은 동화이기에 읽다 보면 어느 새 끝 무렵에 닿는지라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저도 예전에 한 번 동화라는 것을 써보았습니다. 윤선도의 오우가를 빗대어 또다른 다섯 친구를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동화에 인물들의 대화라곤 한 마디도 넣지 않는, 3인칭 시점의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썼습니다. 대화 내용을 쓸 자신도, 또 그럴 마음도 없어 그저 기다란 서술을 해댔지요. 투고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아마도 동화를 썼다기보다 동화라는 낮은 눈높이의 방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간혹 그런 책은 있습니다. 그림동화인 <리디아의 정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식의 1인칭 서술의 동화가 있습니다. 그림이 좋아 몇 번을 보았고, 몇 권 안 되는 제 동화책 소장품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뒤 일부분을 뺀 나머지 전체가 역시 편지글인 <키다리 아저씨>의 대화문도 감동을 주긴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도마 위에 막 올려진 펄떡거리는 생선 같은 대화문을 이 동화집을 통해 마음껏 접했습니다. 아이들의 입, 부모님들의 입, 선생님들의 입뿐만 아니라 동물, 꽃, 나무, 곤충들도 마음껏 자기 말을, 마음속 독백을 쏟아냅니다. 그건 이 글을 쓰신 선생님들의 낮은 눈높이, 아이들에게서 배운 상상력의 소산일 것입니다.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되는 아이들의 어려운 가정생활은 선생님들들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 대응할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손가정, 왕따, 우정, 자연사랑, 경제적 요인, 고집, 말 못할 고민 등등 선생님들은 무수히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호소에 귀기울이느라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런 현황을 동화라는 방식으로 방법을 모색해 나갔습니다. 학교생활에서는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언변을 내놓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겠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깨달아가면서 자기 것을 만들어나간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는 아이가 제풀에 꺾일 때까지 내버려두기고 하고, 무언가 몰두하고 있을 때 잔소리를 하지 않고, 선택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화는 이처럼 간접적으로 또는 인을 박듯이 세상, 자연, 도리를 배워나가게 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그래서 이런 동화를 읽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화도 읽어야 합니다. 자신이 읽어서 좋은 책을 아이에게도 권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동화를 쓰는 선생님들의 자녀는 아마도 이런 환경 속에서 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해바라기 도둑>은 어두운 소재, 예를 들면 아버지의 실직, 어머니의 가출, 도둑질 등을 소재로 삼기도 하지만 아주 밝은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희망을 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등장해도 일말의 희망과 기대로 끝을 맺습니다.

아이들에게 현실은 잔혹합니다. 부모의 보호 하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방치될 때 새겨지는 상처는 사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부모가 또는 현명한 선생님이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지혜가 이 책에 있습니다.

며칠 전 아주 반가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길에 내버려진 강아지를 걱정하는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한 할머니가 그 강아지가 밉게 생겼다고 발로 차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아이의 입에서, “그럼 안되지요. 생명인데”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 아이의 “생명인데” 하는 말에 인상을 깊게 받은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를 놀라게 한 그 아이는 필시 삭막하고 야멸찬 도시의 삶 속에서도 인간과 사물을 아낌과 존중과 배려의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함께 책도 읽어주는 부모나 교사의 가르침 아래 자랐을 것이다.”(한겨레신문 07년 5월 11일자 ‘세상읽기’ 칼럼)


한편으로 반 친구들과의 갈등과 질시, 따돌림은 아이들이 직접 극복해야 할 어려운 숙제이기도 합니다. 성인들도 주목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듯이 아이들에게도 그런 욕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소중한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감꽃 목걸이’, ‘조각가와 소녀상’이라는 작품이 좋았습니다. 전자의 작품은 삶에 대한 초연함이, 후자의 작품은 뜻밖의 희망스런 결말이 좋았습니다.

‘감꽃 목걸이’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한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고향집으로 내려가 지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의연하게 하루하루를 대하고 가족을 염려하고 어렸을 적 추억의 장소를 찾는 등 열심히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도 보지 못한 감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드는 장면에 아들과 할머니가 한데 어울립니다.

‘어린 감나무를 옮겨 심으며’라는, 소설가 신경숙 님의 신문 기고문을 읽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어린 감나무를 선물 받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도 감꽃이 등장했습니다. “감이 무성하게 열리는 그날, 이 감나무를 시골에서 자동차에 실어 오던 날이며, 조카와 함께 옮겨 심던 날이며, 아직 이 감나무에게 생기지 않은 일들, 감꽃이 처음 피던 순간이랑 첫 열매를 맺던 날들을 나는 상기하게 될 것이다”(한국일보 07년 5월 3일자). 감꽃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조각가와 소녀상'은 한 소년과 책 읽는 포즈의 소녀 조각상과의 우정 이야기입니다. 소녀상은 말은 못하지만 소년의 말을 다 알아듣고 자신도 무언으로 말을 건넵니다. '나도 네가 정말 맘에 들어. (나는)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하지만, 나에게도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필요하다구. 우리 좋은 친구가 되어 보자.'

그러고 보니 이 책 저자 중에 제가 나온 초등학교(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였죠)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도 계시네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모교 이름.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5월이라는 달 안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다 들어 있고 그것도 어린이 먼저, 부모님 먼저 그리고 선생님의 순으로 축하해주는 순서가 좋습니다. 이 책은 올해 어린이날에 나왔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도 이 책을 통해 교육의 현장에서 지혜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아이들이 이 동화집을 읽고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떨까요. 그저 상처는 보듬어지고, 꿈은 한 아름 커지기를.

이 책을 읽었으니 다음번 여행 때에는 숨어있다 나타날 지방의 초등학교가 새롭게 눈에 들어오겠지요. 이런 인사로 마무리하지요. 어렸을 때 잘 못한 것 같아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해바라기 도둑 - 교원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이순 외 지음, 김상민 그림,
함께(바소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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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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