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도령 업고 "옛날, 옛날에..."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 40] <또도령 업고 세 고개>

등록 2007.05.15 08:38수정 2007.05.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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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도령 업고 세고개>겉그림 ⓒ 다림

<또도령 업고 세 고개>의 주인공은 조막만한 '또도령'과 젊은 머슴 '땅쇠'. 아들이 여럿 있는데도 또 낳은 아들이라 이름이 또도령. 늦은 나이에 낳았다고 온갖 투정 받아 키우다보니 막무가내요, 저밖에 모른다. 게다가 없는 심술까지 만들어 말썽을 부리는 정도인지라 하인이나 머슴들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거들먹이 양반꼬마.

이런 도령이 서당에 간단다. 서당에 가는 첫 날, 주인 영감은 하필 땅쇠에게 또도령을 업고 서당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한다. 그것도 세 고개나 넘어야 하는 서당, 그냥 툴툴 넘기에도 힘든 고개 세 고개를! 게다가 클 만큼 커서 보릿자루보다 무거운 심술보 또도령을 업고?

땅쇠는 할 수없이 또도령을 업고 고갯길을 넘는다. 하지만 업어주길 기다렸다는 듯 등에 뻘판처럼 착 달라붙은 또도령은 첫 고개 앞에 이르러 "집에 지필묵을 놓고 왔다"느니, "약을 잊고 왔다"느니 등, 온갖 구실을 붙여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게 만든다.

꼬마 상전이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나이 많은 머슴 골탕 먹이기에 재미를 붙였겠다. 어쨌거나 땅쇠로서는 이웃 머슴들과 산과 들로 다니며 일하는 것보다 훨씬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또도령의 심술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땅쇠는 은근슬쩍 말을 꺼낸다.

"옛날, 옛날에..." 옛날 이야기에 홀딱 빠지게 하는 친근함

"…그럼 쇤네가 박초시댁 행랑방에 가서 들은 이야기라도 하나 해 볼까요? 그런데 조건이… 이야기 값이라는 게 있는 것이라 거저 해줄 수는 없고… 이야기 값은 보통 값하고 달라요. 돈으로는 안 된다고요.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정하기 나름이라…."

지금과 같은 동화책은커녕, 손톱에 봉숭아물 들려주며 조근 조근 이야기 해주는 누나조차 없이, 무뚝뚝하고 터울 많은 형들만 있으니 또도령의 이야기보가 오죽 고팠을까?

이렇게 해서 땅쇠가 또도령을 업고 이야기를 하며 세 고개, 아니 이야기 세 고개를 넘는다는 것이 <또도령 업고 세 고개>의 줄거리로,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4가지다. 또도령과 땅쇠 이야기, 땅쇠가 작전상 또도령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셋.

첫 번째는, 동갑내기 농사꾼 이랑이와 고랑이가 가뭄이 심한 어느 날 구렁이로부터 알을 하나씩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랑이는 생명을 경시하고 눈앞의 셈밖에 할 줄 모른다. 반면, 고랑이는 제 목도 마르지만 조금 덜어 목말라 허덕이는 구렁이에게 물 한모금을 나누어 준다. 그 물로 소생한 구렁이는 승천하여 단비를 내리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한 고개를 넘은 또도령은 "언제 이야기 값을 치르겠다는 약속을 했었냐?"며 발뺌을 한다. 밑진다는 듯 두 번째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병든 어머니와 사는 우뚝이가 어느 날 비바람에 집을 잃고 도깨비들의 도움으로 집을 짓지만 못된 사또에게 빼앗긴다는 내용. 그런데 또도령이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한다. 대체 어떤 이야기 이길래?

"…조막이가 배다른 위의 형들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다가…" 세 번째 이야기 끝에 또도령은 땅쇠에게 자기에게 업혀 보라고 한다. 땅쇠의 작전이 척척 들어 맞은 것. 그것도 모자라 주인영감에게 땅쇠를 업어 줘야만 한다고 생떼까지 부리게 된다.

(절대로 땅쇠를 업어 줄 수 없다는) 주인 영감 말에 또도령이 발을 구르지요. 밥도 안먹지요. 서당에도 안가겠다고 훌쩍 거려요. 이길 재간이 없어요.

"아이고, 내 팔자야. 막둥이 아들 녀석 때문에 밑에 부리던 머슴을 다 업어 주게 생겼네.아, 이놈아 퍼뜩 업히란 말이여!"

땅쇠는 보란 듯이 더 늑장을 부리지요. 금방 업힐 것처럼 하면서 괜히 뜸을 들이는 겁니다.(중략)또 도령은 그 옆을 뱅뱅 맴돌며 주인 영감의 부아를 돋웠어요.

"만약에 우리 아버지가 백번 업어주면, 이야기 백가지 해주나?"

주인영감 속이 부글거리지요. 주인 영감은 얼른 땅쇠를 잡아끌어다 허리춤을 그러쥐며 눈을 질끈 감고 없었지요. - 책 속에서


참 재미있는 장면이다. 죽을 맛인 주인 영감, 그와는 반대로 딴청을 하면서 잴만큼 재는, 마음 속에선 쾌재를 부르는 땅쇠.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또도령은 그 옆에서 100번은 업어주길 바란다.

그래야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으니. 그것도 모자라 이야기 듣는 맛에 땅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착 달라붙는다. 들이건 산이건 장이건…. 그야말로 머슴 알기를 코딱지만큼이나 여기던 또도령이, 머슴 땅쇠가 들려주는 "옛날, 옛날에…" 이야기에 홀딱 빨려들고 말았다.

권선징악을 현대감각에 맞게, 익살스럽게 창작

양반을 상대로 한 땅쇠의 통쾌한 반전도 재미있지만, 땅쇠 골려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또도령의 마음을 홀딱 빼놓은 땅쇠가 들려주는 이야기 세 고개도 재미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도깨비, 구렁이, 이복형제의 구박, 못된 사또, 권선징악, 용왕 등을 소재로 현대감각에 맞게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꾸몄다.

또도령, 우뚝이, 조막이, 이랑이, 고랑이, 귀염도령, 허덕허덕, 성미 사나운 억새 부인, 수굿하니, 모지락스레, 서당인지 너당인지, 알토란같은 손주들….

책에서 만나는 말과 표현들이다. 이야기 속에는 이처럼 아이들의 말·글살이를 이끌어 줄 토속적이고 친근한 표현과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쉽게 상상될 만큼 생생한 표현들이 많다. 책을 통하여 아이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훨씬 풍부해질 듯하다.

밭고랑과 밭이랑을 성격이 전혀 다른 친구로 비유하여 자연과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물과 잡초의 기준을 새삼 생각해 보게 하는 첫 번째 이야기는 인상이 깊게 남는다.

도깨비가 인간들의 마을에 어쩌다 한 번씩 올 수밖에 없는 이유나 내력도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 변하는 땅쇠와 또도령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야기 듣는 재미에 홀딱 빠진 또도령에게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옛날, 옛날에…"만 나오면 침을 꼴깍 삼킬 만큼 이야기 좋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옛날이야기 읽는 재미가 이리 좋을까?

옛날 사람들은 흥겨운 마음으로 한바탕 이야기판을 벌이는 가운데 준엄한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다. 날카로운 풍자로 억눌려 살아온 한과 눈물을 씻어 내기도 하였고, 걸쭉한 입담으로 삶 속에 쌓인 짜증과 피로를 벗어던지기도 하였다. 아무리 심각한 주제라도 옛이야기 속에 녹아들면 푸근하고 넉넉한 웃음으로 버무려진다. 이것이 옛이야기가 지닌 힘이다. "- 서정오 <옛이야기 들려주기>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또도령 업고 세 고개>(임어진 글.이광익 그림/다림.2007년 4월/7500원) 지은이 임어진이 지은 책은 <이야기 도둑>, 어린이 문학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2006년 <샘터상>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또도령 업고 세 고개>(임어진 글.이광익 그림/다림.2007년 4월/7500원) 지은이 임어진이 지은 책은 <이야기 도둑>, 어린이 문학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2006년 <샘터상>을 받았다

또도령 업고 세 고개

임어진 지음, 이광익 그림,
다림, 2007


#또도령 업고 세 고개 #임어진 #다림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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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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