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망은 아빠, 엄마와 함께 사는 것

[서평]조은주의 <어린 엄마>

등록 2007.05.25 20:53수정 2007.05.26 10:49
0
원고료로 응원
a

<어린엄마> 겉그림. ⓒ 낮은산

독서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학부모님과 만날 기회가 많다. 대화 내용은 주로 교육상담이다. 학부모님들은 학생의 수업태도, 변화도, 참여도를 비롯, 교우관계까지 학생의 전반적인 상황을 수시로 묻는다.

활동지를 조금만 허술하게 작성해도 학생의 이해도를 확인하며 면담을 요청해 온다. 초등학교 1학년 어머님들은 행여 아이가 수업 과정을 따라가지 못할까봐 강의 시간 내내 참관을 하며 아이를 챙긴다. 아빠까지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교재를 내주면 교재 양 만큼이나 관련 자료를 뽑아 붙여 놓기도 한다.

자녀에 대한 이런 학부모들의 열성을 보며 양극화를 떠올린다. 낳기만 하고 책임질 줄 모르는 부모가 있는 반면 자녀 교육을 위해 지극 정성을 다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고 있다.

사랑과 감사의 계절 5월, 짙은 녹음 아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푸른 꿈을 설계하는 아이들. 이면에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그리워하며 어깨가 처진 아이도 있을 것이다. 주위를 수놓고 있는 신록만큼이나 푸른 꿈을 꾸고 있을 아이들. 그러나 어려운 환경 때문에 꿈 꿀 여유가 없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어린 엄마>라는 책을 본 순간 주인공에 대한 상상을 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사연이 있구나. 그러면 시집을 꽤 일찍 갔나보다. 그러니까 어린 엄마지.'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어린 엄마로 불리는 인물은 6살 때 가출한 엄마를 대신해 엄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생 둘의 엄마가 되어 매달 내야하는 방세를 걱정하고 파마머리에 노란물을 들인 남동생을 나무라는 철든 18살 숙녀였다. 11살인 어린 엄마의 동생 소망이도 어른이 다 되었다. 엄마의 가출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의 심정을 이해한다.

"방안에 혼자 있으면 술 마시고 혼자 울던 아빠 생각이 납니다. 우리를 버린 엄마 생각도 납니다. 다섯 식구가 모여 살던 기억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언니는 언젠가 그런 날이 꼭 올거라지만 나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내가 기다리는 건 얼른 언니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엄마 짐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할아버지처럼 늙어버린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는 11살 소망이. 소망이는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고 밥풀이 굳은 밥통에 물을 조금 부어두어야 그릇이 잘 닦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염색에다 귀걸이까지 하고 다니는 사춘기 오빠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초등학교 4학년 소망이를 만난다면 철부지 어리광은 저만치 도망 갈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공통점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렸다는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희망이'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떼를 쓰는 일은 없다. 동네를 청소하는 아저씨를 따라 다니며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밀기도 한다.

이런 희망이에게 동네 아이들은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따돌리는 등 함부로 대한다. 희망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속이 깊고 맑은 아이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해도 상대에게 대적하지 않고 언제나 웃는 희망이. 희망이 옆에는 다툼이 없다.

내가 지도했던 아이 중에도 청각장애인이 있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을 앞두고 전화가 왔다. 자물쇠가 없어서 문을 닫을 수가 없다는 전화였다. 그날은 수업 하러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문단속을 했는지 물었더니 그냥 왔다고 했다. 그 아이는 자물쇠를 채우지 않으면 도둑이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해맑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할 텐데...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 안타깝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여울이는 엄마 생각만 해도 콧물이 난다. 엄마는 여울이가 8살 때 집을 나갔다.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하는 할머니가 편찮으시다. 여울이는 아빠에게 말했다.

"할머니 무릎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해요. 무릎이 고무풍선처럼 부어 있어요. 병원에 가야 돼요."
"어디 그게 일이년 된 거여. 하루건너 앓았은 게 신경 쓰지 마. 병원 안 가도 돼."


아빠의 말에 한숨을 쉬는 여울이. 여울이는 강아지 곰탱이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하다. 가출한 엄마가 어서 돌아오기를. 할머니의 고통을 몰라주는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소망은 무엇일가? 특기와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설계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엄마>에 등장하는 소망이, 희망이, 여울이의 간절한 바람은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단란한 가정이다.

덧붙이는 글 | <어린 엄마> 조은주 동화집 / 장호 그림 / 펴낸곳 : 낮은산 / 값 8,800원

덧붙이는 글 <어린 엄마> 조은주 동화집 / 장호 그림 / 펴낸곳 : 낮은산 / 값 8,800원

어린 엄마

조은주 지음, 장호 그림,
낮은산, 2007


#어린엄마 #조은주 #장호 #낮은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80대 아버지가 손자와 손녀에게 이럴 줄 몰랐다
  2. 2 "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3. 3 "이재용은 바지회장"... 삼성전자 사옥앞 마스크 벗고 외친 젊은 직원들
  4. 4 "내 연락처 절대 못 알려줘" 부모 피해 꽁꽁 숨어버린 자식들
  5. 5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