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노동자, 성희롱·성폭력 노출 심각

성폭력 피해자에게 오히려 당당한 가해자 부모들

등록 2007.05.28 18:17수정 2007.05.2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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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지금도 몸을 떨어요. 밤에 무서워해요. 어떻게 해요?"


지난 19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강간치상을 당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뚜띠(가명)의 언니 실라(Silah)는 동생의 소식을 전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실라가 걱정하는 것은 사건이 있던 밤, 동생이 가해자가 들고 있던 가위에 손가락이 베이는 등의 사고 외에도 온몸에 멍이 들 정도의 구타와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의 몹쓸 짓을 당한 것이다. 특히 이후 가해자 측에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에게 또 다시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뚜띠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체류 기한을 넘긴 불법체류 신세인데, 가해자는 뚜띠와 같은 회사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하다가 대학에 복학한 남성이다. 그는 뚜띠의 숙소뿐만 아니라 신상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뚜띠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같이 근무할 때부터 결혼하자고 치근덕거렸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퇴사한 후로는 치근댐이 없어 까맣게 잊고 살았었는데,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있었던 사건 당일 가해자가 야간에 몰래 숙소에 들어올 만큼 대담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더구나 가해자는 4년 전에는 강간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나 또 다시 범죄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병석에서도 떨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해자가 집행유예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 구속 수사가 불가피한데도 가해자 측 부모는 경찰조사나 병원, 회사 측 연락에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를 끼친 지 열흘이 다 되고 있는 지금까지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아무런 사과의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뚜띠의 사건을 들으면서 순간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수학능력 시험을 열흘 정도 앞두고 평택에서 이주여성 강간치상 사건이 있어 통역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해자 측 부모의 입장은 "외국인 여성에게 자신의 자식이 한 짓이 뭐 그리 큰 죄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까지 못 보게 할 것이 무어냐?"는 태도였다.


당시 가해 학생의 부모는 안면 구타를 당하여 얼굴 붓기도 빠지지 않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너무도 당당하게 "학생 인생이 창창한데 치료비 받고 합의해 주라. 합의해 주지 않아도 학생(고3)이라 곧 풀려난다"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었다.

그런 그들과의 상식적인 선에서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가해 학생의 기숙사 침입이 1회에 그친 것이 아니었고, 청색 테이프를 들고 와서 가해자의 손을 뒤로 묶고 입을 막은 후에 범행을 저지르는 등 계획적이었음에도 대입시험을 앞둔 학생이니 무조건 합의를 하라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러한 부모들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던지 담당 형사는 "시험 준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험은 따로 장소를 마련해서라도 치게 해줍니다"라며 "자신의 자식 인생은 소중하고, 가정을 갖고 있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는 손을 테이프로 뒤로 묶어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때리면서 강간을 해도 된다고 보십니까? 아시겠지만 학생의 죄질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면박을 주었다.

a 인권만화집 <십시일反>(창작과 비판 출판/국가인권위 후원) 박재동의 '한 칸의 현실' (2003년)

인권만화집 <십시일反>(창작과 비판 출판/국가인권위 후원) 박재동의 '한 칸의 현실' (2003년) ⓒ 창작과 비판

뚜띠나 평택 사건을 통해서 쉽게 엿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 이주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성폭력에 대한 일반의 시각이다. 우리 사회의 이주여성노동자들은 평균 주 노동시간이 57.46시간으로 법정노동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공장이나 직장 등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는 현재 40만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중 35∼37%를 여성으로 본다. 아시아 지역 이주여성이 전체 아시아 이주민의 65∼75%라는 통계에 비추어 보면 우리 사회의 이주여성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시아 타지역의 절반 정도다.

특이한 것은 중동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홍콩 등지에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가사 노동자로 일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54.3%가 공장노동자로, 18.5% 식당일, 11.7%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는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절반 이상의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노동자들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러한 이주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2003년 외국인이주노동자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에서 '사업장 내에서 성폭력(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 520명 중 12.2%가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민감한 사안으로 피해여성 상당수가 드러내기를 꺼려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많은 피해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조사에서 성희롱 가해자의 45%가 직장상사, 43%가 한국인 직장동료라는 점은 이주여성 노동자가 가정을 꾸린 여성이든 아니든 손쉽게 건드릴 수 있고, 건드려도 되는 여자쯤으로 생각하고 치근대는 직장 동료들이나 주위 사람들로 인해 단순히 이주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든 타국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 면에서 이주여성 노동자들의 형편을 정확하게 그려냈다고 보는 박재동 화백의 삶의 무게라는 제목의 삽화가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주노동자 #성희롱 성폭행 #이주여성 노동자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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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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