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정치서 여성이 맹활약하는 '중국'

70년대 가부장 인식 퇴출... 여성 지위 어느 나라보다 높게 평가받아

등록 2007.05.30 11:22수정 2007.05.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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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중국 여성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은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되면서부터다. 혼인법, 남녀권익보장법 등 일련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양성 평등과 여성 권익 보호를 위한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활발한 사회진출과 경제력 향상으로 중국 여성의 지위는 급속히 높아졌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개혁 개방의 물결 속에서 여성들의 일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장경제체제로의 변화와 함께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 등을 내세워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여성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과 같이 여성에게 고용의 기회는 줄어들고, 퇴출 사례만 늘어갔다.

하지만 중국 여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사회, 정치적 지위를 얻는다. 가부장 중심의 가족개혁을 이뤄낸 뒤 새로운 가족윤리를 토대로 하는 혼인 제도를 마련했다. 법 정비가 이뤄진 당시에는 혼란을 겪기도 했으나 정부가 "여성은 남성만큼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가부장적 권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일해야 하며, 여성의 노동력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우기까지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웠다.

현재 중국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선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각급 기관 여성 간부 비율은 전체 간부 가운데 40%선에 육박한다.

부총리급 이상의 국가 영도급 간부 중 여성은 9명으로 이는 2001년에 비해 5명이 증가한 것이다. 성부(省部)급의 여성 지도자도 241명이다. 이와 관련 2008년 새로 구성될 11기 전인대 대표의 여성 비율을 22%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결정해 두었다.

전체 GDP 성장에 대한 여성 기여도가 40%에 달할 정도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에 비해 크게 앞서 있다. 이는 지난 5월 15일 한·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열린 한국여성우호교류포럼에서 추이위 중국부녀연합회 여성발전부 부장이 발표한 내용이다.

그러나 중국 역시 과제는 남아 있다. 중국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 9명의 위원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정치 분야의 핵심 부서에 여성은 여전히 소수다.

"여성의 정치 참여에 실질적인 걸림돌이 있다"며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이 여성의 지위 상승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양성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입법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법·제도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여성차별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의 목소리와 닮아 있다.

'중국 여성의 사회·정치적 역할'에 대해 연구해 온 장공자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 여성들은 각 조직의 여성 참여 확대를 스스로 이뤄왔을 뿐만 아니라 남성과 똑같이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사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중국 사회에서의 여성 지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중국 여성들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여성권익보호는 중국이 선진국"
[인터뷰] 하영애 한중여성교류협회 회장

"우리나라 은행에선 지금도 여직원들이 창구에 앉아 있고 남자 간부가 그 뒤에서 감독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런데 중국에선 이미 1980년대에도 남자 직원들이 창구에서 일하고 여자 간부가 뒤에 앉아 감독하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한국과 중국 여성들의 긴밀한 교류가 왜 필요한지 묻자 하영애 한중여성교류협회 회장(경희대 교수·사진)은 조직 내에서 여성이 리더로 존재하는 것을 조금도 특이하게 여기지 않는 중국 사회의 분위기를 먼저 전했다. 조직에서 여성이 요직을 차지하는 게 전혀 낯설지 않고 화젯거리조차 될 수 없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 회장은 "중국의 이러한 분위기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한 제도를 일찍부터 갖춤으로써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성 스스로 적극성을 발휘하도록 만들었으며, 남성들에게도 성별로 역할을 한정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1980년 당시 육영재단에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첫 동북아 유학생으로 선발돼 대만에서 8년 동안 공부했던 하 회장이 박사 학위 취득 후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한중여성교류협회 구성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21세기가 되면 13억 인구의 중국이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속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죠.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중국 여성들도 힘을 발휘할 테고요. 이런 속에서 한중의 여성들이 유기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면 양국의 발전을 위해서 핵심적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봅니다."

하 회장은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중화전국부녀연합회 초청으로 지난 5월 14일부터 닷새 동안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등 각계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중국 북경과 청도를 방문해 여성의 정치참여와 경제활동에서의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했다.

하 회장은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의원 10명 중 1명을 여성으로 하는 '여성당선할당제'를 채택, 정치인의 20~30%가 여성"이라면서 "한국도 이 같은 제도를 통해 18대 국회에 20% 이상의 여성 의원을 입성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 일각에선 여성할당제를 통해 17대 국회에 42명(14%)의 여성 의원을 진출시켰을 뿐 아니라 여성의 지위가 빠르게 향상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여성만을' 배려한 제도나 정책은 무리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역차별을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하 회장은 "표면적으론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취업이나 승진 등에서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중국에서도 여성의 정치사회적 지위 보장을 위한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입법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과 많은 학자들의 견해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쪽"이라면서 "남성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하 회장은 "한국과 중국의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하기 위해선 서로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면서 "올해까지 3차례 '한중여성 말하기대회'를 진행했는데 다른 교류사업과 함께 이 대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 김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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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기가 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느낀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었다. 거리나 건물 안에서 중국인 아주머니 몇 분이 신나서 떠들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가끔씩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여성들이 항상 큰 소리만 내며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해 나가지는 않는다.

지난해 졸업 시기가 다가왔을 때 많은 친구들이(한국으로 치면 선배지만 중국은 선후배의 개념이 없다) 취업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다 보면 주된 이야기는 취업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인 친구들은 "우리도 너희들과 다른 것 하나 없어. 한국도 남녀차별이 심하다며? 중국도 직장을 구하는 데 여자라는 이유로 불리한 경우가 많아. 항상 남자가 우선이야"라는 말을 하였다.

실제로 여자 선배들과 동기들은 남학생들보다 좋은 학점과 자격증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곳에 취직을 하지 못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롱롱이 역시 남자친구(치아오보어)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남자 친구는 심천 주요 도시의 명문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가게 되었고, 이 친구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실업고 국어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예감했는지 남자친구와 같은 도시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먼저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중국의 많은 커플들은 대학생 때부터 원거리 연애를 한다. 나는 두 사람이 같은 도시에 취직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흐뭇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며 서로 아끼는 모습을 많이 보아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이 커플을 통해서 한국과는 다른 남녀 간의 관계를 볼 수 있었다. 롱롱이와 나는 2년 정도 룸메이트로 지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남자친구도 우리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항상 식사 당번은 남자친구의 몫이었다. 요리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스스로 부엌에 들어가 일을 하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어색해 하는 내게 그들은 중국의 북방은 한국의 모습과 조금 비슷할지 모르나 남방은 다르다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이 고향인데, 그곳에서는 집안일은 일반적으로 남자가 맡아서 한다고 하였다. 롱롱이나 치아오보어의 부모님 역시 두 분 모두 밖에서 일하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끔씩 집안일을 거들고 아버지는 저녁을 준비한다고 한다. 중국은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다. 여성도 전업주부로만 지내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그리고 중국은 결혼을 할 때 모든 비용을 남자가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어느 날 롱롱이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할지 취직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남자친구가 더 이상 공부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남자친구와 무슨 상관이냐며 본인의 뜻대로 하라고 충고했지만 롱롱이는 이 친구는 장차 남편이 될 사람인데 자기가 가방끈이 더 길면 치아오보어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뜻밖의 일이라 중국에서도 그런 것을 신경 쓰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모두 다 그렇진 않겠지만 중국 사회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그날 처음 알았다.

중국은 한국의 40배 이상에 달하는 면적에 55개 이상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여성들의 성향이나 특징을 몇 가지로 단정 짓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본 중국의 여성들은 한국보다는 조금은 자유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긴 역사 속에 배어 있는 가부장제 중심의 인습에 부당함을 느끼는 여성도 상당수 있었다. 조강화·중국어강사

중국여성이 본 한국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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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안일은 잘 도와줘요?"

중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어린 나이에 그를 따라 7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나에게 많은 한국 여성들은 이렇게 묻곤 했다.

낯선 타국에서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남편밖에 없을 것이란 걱정스런 마음에 그네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을 테지만, 난 "왜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줘야' 하는 거죠?"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에 대한 책임은 부부 모두에게 있는 만큼 가사 역시 남편과 아내 공통의 몫이 아닌가. 실제로 내가 살던 중국에선 어머니, 할머니 시대에도 이미 집안일은 물론 자녀교육 등에 있어 남녀 구분을 두지 않는다.

도와준다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특별히 배려해서 손을 보탠다는 의미다. 결국 남편이 집안일을 잘 도와주느냐는 질문은 가사에 대한 책임이 남편에겐 없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들이 약간의 집안일을 한 뒤 당당히 칭찬해달라고 보챌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문제 제기를 하면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버니까 여자가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하는 반박이 나오곤 한다. 과연 그럴까?

주변을 둘러보자.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가사 분담이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일부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같이 돈을 버는데 남편은 왜 집안일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렇듯 가사 분담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남편이 가끔 도와주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한국 여성들이 안타깝고 불쌍할 때가 있다.

문제는 이런 의식이 당장 바뀌기 힘들다는 점이다. 여성만이 아니라 한국 남성들 그리고 자녀들을 그렇게 키워낸 부모 세대의 의식 또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젊은 엄마 아빠들 역시 아이들에게 자신의 부모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날이 갈수록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에 만족하는 한국의 여성들은 미래에 자신의 딸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일과 가사를 양립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자신이 서운함을 느끼는 시부모와 마찬가지로 "사내대장부가 집안일을 하다니"라고 말하며 과거 자신의 모습이었을 며느리를 서럽게 만들 텐가.

어느 쪽도 원치 않는다면 한국 여성들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자녀가 남녀의 성별로 역할을 한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성별에 따른 역할과 한계를 두지 않는 방향으로 의식 구조가 바뀌어야 더 많은 한국 여성들이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음은 물론 요직에도 더 많이 진출하고, 이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 역시 아무렇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 #우먼 #차이나 #중국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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