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술잔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

[시 하나에 삶 하나] 여든 넘기신 아버지께 등목해 드리며

등록 2007.07.01 16:37수정 2007.07.01 18:1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며느리와 상추를 솎고 있는 아버지

며느리와 상추를 솎고 있는 아버지 ⓒ 김현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 '아버지의 마음' 모두, 김현승


더운 열기가 훅훅 올라오는 텃밭에서 아버지가 무언가 하고 계신다. 가까이 다가가니 방울토마토 줄기를 장대를 세워 묶어주고 계신다. 더덕더덕 열린 앙증맞은 방울토마토들이 무거운 줄기에 눌려 숨을 헉헉거리고 있다. 옆의 오이는 잘 꾸며진 장대를 타고 예쁘게 자라고 있다. 손길 한 번 더 가고 안감이 저런 차이를 보이는가 싶은 생각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이내 땀이 흐른다.


난 아버지를 볼 때마다 늘 죄송스럽다. 지금 아버지의 나이의 절반 이상을 살아오면서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생각나면 용돈 조금 드리는 것 빼곤 말이다.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는 아버지, 가장으로서의 힘을 잃은 지 오래인 여든다섯의 아버진 늘 술을 드신다. 요즘 들어선 고혈압 때문에 끊었던 담배까지 피우신다. 한땐 늘 담배를 물고 사셨다. 그땐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셨다. 근데 요즘엔 마당 한쪽에 나가 담배를 피우신다. 장미를 태우신다.

예전엔 자주 아버지에게 담배를 사다 드렸다. 군대엔 있을 땐 담배를 모아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곤 했었다. 한라산이었다. 그러다 오년 전 고혈압으로 입원하신 후엔 담배를 사다 드린 적이 없다. 그때 아버진 담배를 끊었기 때문이다. 헌데 이년 전부터 피우신 듯 안 피우신 듯하면서 담배를 입에 문 것 같았다.

아버진 매일 술을 드신다. 어떤 분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지만 아버진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속이 허하다고 했다.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하루 2홉짜리 소주 한 병은 기본이다. 과할 땐 두 병, 세 병도 드신다. 그것도 소주만 드신다. 다른 술은 싱거워서 맛이 없다고 한다. 그로 인해 자주 어머니와 다투곤 하지만 술은 어느새 당신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토마토 줄기를 장대에 묶은 다음 아버진 또다시 무언가 일을 찾아 하신다. 그러고 나서 웃통을 벗고 수돗가에 가 씻는데 앞가슴만 씻는다. 그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제가 등목 해드릴게요."
"괜찮다. 나중에 씻으면 돼."
"엎드려 보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아들의 권유에 마지못한 듯 엎드리면서도 아버지의 표정은 밝았다. 바가지로 물을 가득 떠서 등에 물을 부었다. 두 번, 세 번 물을 붓자 아버진 "어, 시원하다" 하시며 그만 하라고 한다. 못 들은 척 등을 미니 때가 나온다.

"아버지, 등에 때 있어요."
"그래, 때가 나오냐?"
"여름엔 하루만 씻지 않아도 때 나오더라구요."

아버지의 등목을 해드리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예전에 밖에서 뛰어놀다 집에 들어오면 아버진 꼭 엎드리라고 하면서 등에 물을 부어주셨다.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와서도 꼭 자식들부터 엎드리게 하고 등목을 해주셨다. 그런 다음 맨 나중에 당신이 하셨다. 그렇게 등목을 하면서 아버진 "어 시원하다"를 연거푸 내뱉으며 껄껄껄 웃으셨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의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은 없다. 헌데 삼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버지의 등에 찬물을 끼얹으며 아버지의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a 손자들과 팔씨름 하며 ...

손자들과 팔씨름 하며 ... ⓒ 김현

아버지의 등에 커다란 상처가 하나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 쪽 가까운 곳에 5cm 정도의 상처가 뚜렷하게 있었다. 무슨 수술 자국 같은데 묻지 않았다. 물어도 아버진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진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이야길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한탄하듯 이야길 하는 것과는 달리 아무런 이야길 하지 않았다. 어머니 입을 통해 귀동냥으로 언뜻언뜻 들었을 뿐이다.

내 아버진 농사꾼이다. 평생 태어난 곳을 떠나 거처를 정한 적이 없다. 젊었을 땐 금점판으로, 막노동 공사판으로 전전하기도 했다. 또 남의 집에서 잠시 일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일제 땐 만주까지 진출하였다 했다. 그 만주에서 무얼 했는지 잘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해 그곳까지 흘러갔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일 때문에 갔을 수도 있다. 아버지만 알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다. 뼈를 묻을 때까지 아버진 당신이 살던 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등을 닦아드렸다. 생각해 보니 정말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의 등을 만져본 것 같다. 내 아팠을 때 아버지의 등에 업혀 밤하늘의 별을 본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그것이 아버지의 등에 업힌 마지막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 술 한 잔 하실래요?"
"그려, 한 잔 해야겠다. 한 고푸만 따라 오거라."

막소주 한 잔을 갖다 드리자 꿀꺽꿀꺽 시원스레 드신다. 아버진 저 술잔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숨겨 놓았을까. 술 마시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내 삼촌이 돌아가실 때 빼곤 난 한 번도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 의하면 하나밖에 없는 누나가 일곱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 너무 울어 눈이 나빠졌다는 소릴 들었지만 역시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이다. 아버진 눈물만 안보인 것이 아니다. 자식들한테 뭘 시키지도 않으셨다. 그저 당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이 시구처럼 겉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마신 술에는 아버지의 한숨과 눈물이 절반이었는지 모른다. 말 없는 가운데 자식들 염려하는 마음이 술잔 속에 가득 들어있었는지 모른다. 헌데 그것이 어찌 내 아버지만 그랬을까. 아마 내 아버지의 세대의 모든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왔을지 모른다.

옷을 입고 다시 텃밭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등이 많이 외로워 보인다. 등 한쪽에 숨겨진 상처처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늙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외로운 등을 바라보려니 가슴이 짠해지면서 눈물이 나려 한다.
#아버지 #등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