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혈연을 구분하라

[태종 이방원 115] 동조와 불충

등록 2007.07.02 17:38수정 2007.07.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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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를 진표사(進表使)로 한 사신단이 창덕궁을 출발했다. 우정승 이무가 진전사(進箋使)의 중임을 맡았고 완산군 이천우와 이내를 부사로 한 사신단이다. 조선 개국 이래 최대의 사신단이다. 의원(醫員)과 내시는 물론 오늘날의 주방장에 해당하는 감주(監廚)와 수의사에 해당하는 마의(馬醫)까지 대동한 대규모 사신단이었다.

보통의 사신단이 20명 내외의 조촐한 규모였으나 이번 세자의 하정 사신단은 100여 명의 인원과 황제에게 바치는 조공마 60필을 포함한 마필 110마리가 동원되었다. 시종관(侍從官)은 우군동지총제 이현을 필두로 예문관제학 맹사성, 대호군 손윤조, 사재감 지유용 등 12명이었다. 서장관(書狀官)은 인녕부좌사윤 설칭, 사헌집의 허조였고 통사(通事)는 판군기감사 곽해룡, 인녕부우사윤 오진 등 6명이었다.

세자를 정점으로 한 진하사(進賀使)는 대륙의 권력을 거머쥔 영락제에게 혼란을 극복한 조선의 안정과 변함없는 충성을 표하기 위한 사신단이었다. 특히 맹사성을 비롯한 학자들을 많이 포함시킨 것은 조선은 학문을 숭상하고 도덕을 중시하는 건강한 국가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적인 인원배치였다.

"길이 멀고 험하니 마땅히 자애하여야 하느니라. 저부(儲副)라는 것은 책임이 중하다. 오늘의 일은 종사와 생민(生民)을 위한 계책이니라."

태종이방원은 법복을 갖춰 표전(表箋)에 예를 올리고 장의문(藏義門)으로 나가 영서역(迎曙驛)에서 세자를 전송했다. 태종 이방원은 사신 길이 얼마나 험하고 고달프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면 길에서 노숙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제 세자 나이 열세 살.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길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태종 이방원은 세자를 떠나보내고 환궁 길에 눈물을 훔쳤다.

의정부, 육조, 3공신은 남교(南郊)에서 작별하고 의안대군 이화는 종친을 거느리고 임진나루에서 전송했다. 태종 이방원은 청평군 이백강, 참지의정부사 박신, 첨내시부사 김완에게는 요동까지 호종하라 이르고 사헌집의 허조를 특별히 불러 당부했다.

"법을 어기는 자가 있거든 돌아오는 날에 나에게 고하라."

하정사(賀正使)는 중국의 황제에게 새해 첫날 세배하러 가는 사신이다. 보통의 진하사는 10월에 출발하여 이듬해 3월에 돌아오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 하정사는 다르다. 조선의 차세대 주자 세자가 직접 가는 길이라 수행하는 인원도 많고 진상하는 물건도 많았다. 장장 7개월이 소요되는 여정에 범죄 사고를 대비하여 사헌부의 관리를 호종하게 한 것이다.

세자가 없을 때 사건을 종결하라

세자 이제가 이끄는 사신단이 요동성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간원과 사헌부 합동으로 민무구 형제와 신극례에게 극형을 내려 달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본격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편한 곳에 안치되어 유배생활이 평소와 다름없는 관계로 그들의 수하를 끌어들여 나라를 전복할 음모를 꾸밀 수 있다는 이유였다. 태종 이방원은 상소를 묵살했다.

이 와중에 양주에서 귀양살이하던 신극례가 죽었다. 그 가솔들이 시신을 한양으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르러 하자 사간원에서 아전을 보내어 성 밖으로 내쫓았다. 이 소식을 접한 태종 이방원은 대노했다.

"신극례는 미혹(迷惑)하여 작은 아이(세종)의 묵희(墨戲)한 종이를 찢은 것뿐이니 불공(不恭)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하지만 불충(不忠)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예조좌랑(禮曹佐郞) 유면을 불러 종이 200권과 쌀, 콩 각각 50석을 부의로 내려주고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라 이르고 정조장(停朝狀)을 올리라 명했다. 정조는 조회를 정지하는 것으로 국가적으로 조의를 표한다는 뜻이다. 마침내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였다. 공신에 대한 예우다.

신극례의 장례가 끝나자 대간에서 주청했다.

"세 사람의 역모가 발각되었으나 전하께서 인친의 사사로운 은혜로써 목숨을 보존하게 하니 온 나라 신민(臣民)이 분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전하께서는 천지 조종의 뜻을 살피시고 춘추의 법으로 결단하여 민무구 민무질을 베고 신극례의 관을 베어 왕법을 보이소서."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참형에 처하고 신극례를 부관참시 하라는 것이다. 민씨 형제 문제를 세자가 귀국하기 전에 종결지으려는 신하들은 사건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신하들의 주청에 밀린 태종 이방원은 민무구 민무질의 직첩을 회수하고 신극례는 논하지 말라 명했다. 녹권회수가 정치적인 사형선고라면 직첩 회수는 사망선고다.

직첩 회수에 물러설 대간이 아니었다. 또다시 상소를 올렸다.

"전하께서 다만 직첩만을 거두시니 이것은 종사를 가볍게 여기고 인친을 중하게 여기는 것 입니다. 신극례는 법대로 처치하는 것이 마땅한데 논하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예장(禮葬)하도록 명하시니 이는 대보(大寶)는 아닙니다. 원컨대 종사 만세의 계책을 위하여 대의로 결단하시어 이들 세 사람을 베어 왕법으로 다루어 난역을 경계하소서."

파상적인 공격에 밀린 태종 이방원이 재야에 있는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을 불렀다.

"민무구 형제의 죄는 내가 사정(私情)으로 인해 과단(果斷)하지 못했다. 공신과 대간 그리고 백관까지 모두 죄를 청하니 내가 부득이하여 직첩만 거두고 목숨을 보전하도록 하였다."

"성려(聖慮)가 적의함을 얻으셨습니다."

스스로 자식들의 외방 안치를 자청한 아버지

민무구·민무질 형제가 인심을 잃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민제가 사람을 놓아 사위인 임금에게 의견을 내놓았다. 아들들이 가까운 곳에 있어 대간의 시비가 되풀이되고 있으니 먼 지방으로 내쳐달라는 것이었다. 신하들의 주청에 시달리고 있는 임금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제안이었다. 태종 이방원은 민무구를 연안에서 여흥으로 민무질을 장단에서 대구로 이동 안치하라 명하고 대언(代言) 윤사수를 불렀다.

"여강군과 여성군을 가까운 곳에 둔 것은 양친을 위한 것이지 저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저들의 양친이 나이가 많아 병이 나면 하루 안에 불러서 시약(侍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간의 장소(章疏)에 모두 두 사람을 법대로 처치할 것을 청하였는데 그 뜻이 어찌 나더러 민무구 등을 죽이라는 것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먼 지방에 두고자 한 것이 아니겠느냐?" - <태종실록>

민무구 형제에 대한 녹권삭탈과 직첩 회수에도 불만이 많은 대간들이 참형을 주장하는 상소를 계속 올렸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않자 사간원사(司諫員事) 김매경을 필두로 줄줄이 사직해버렸다. 태종 이방원이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 강회중을 궁으로 들라 명했다.

"민무구 민무질은 그 죄가 비록 중하나 내게는 인친이다. 내가 나이 15세에 민씨에게 장가들어 오랫동안 함께 살았고 또 부원군의 나이 70에 가깝고 송씨가 병에 걸려 오래 누워 있으니 만일 두 아들을 법으로 논한다면 부자간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직첩과 녹권을 거두고 추방하였으니 이것으로 족한 것이다. 또한 신극례의 죄는 민무구 등과 같은 죄과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 몸이 이미 죽었고 내가 일찍이 그와 함께 맹세하였으니 다시 거론하지 말라." - <태종실록>

민무구 형제 사건이 수습국면에 들려는 찰라 불길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 붙었다. 민무구의 동생 민무휼·민무회다. 이들이 조정에 출사(出仕)하지 않고 두문불출 칩거했다. 태종 이방원은 일종의 사보타주 내지는 업무적 파업투쟁으로 받아들였다. 노기를 감추지 못한 태종 이방원이 두 형제를 편전으로 들라 일렀다.

"요사이 어째서 출사하지 않느냐?"
"같은 민씨이니 감히 문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너희들이 불충한 형을 사랑하고 나를 버리느냐? 또 민무회 너는 글을 읽은 사람인데 옛날 주공(周公)이 불충한 형을 베고 주실(周室)에 충성을 다한 것을 네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호랑이같이 엄하게 질책했으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공과 사, 정치와 혈연에 대한 이방원의 사고가 이 한 마디에 녹아 있다. 정치는 정치고 혈연은 혈연이라는 것이다. 형들이 불충으로 정치적인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동정은 너희들 자유이지만 동조는 곧 불충이라는 경고다.
#이방원 #민제 #맹사성 #진하사 #진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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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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