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장부, 임금과 간접 맞장 뜨다

[태종 이방원 123]조호의 부인 노씨

등록 2007.07.14 16:35수정 2007.07.14 18:08
0
원고료로 응원
죽음으로 몰아간 한 마디 말실수

후폭풍은 여기에서 잦아들지 않았다. 조희민가(家)를 몰아쳤다. 혁명에 공을 세운 아들 조희민이 유배지에서 처형되자 아버지 조호는 망연자실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고 탄식했지만 하늘은 도와주지 않았다. 울화통이 치밀어 한 마디 내뱉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일명 설화(舌禍)다. 조호가 자신의 부인과 단둘이 있을 때 말을 꺼냈다.


"이무 정승(政丞)은 인물이 훤하니 왕이 될 만해."
이 순간, 집에 자주 드나들던 중 묘음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깜짝 놀란 부인은 남편에게 눈총을 주며 묘음을 맞이했다. 남편의 말을 감추려는 듯 묘음을 돌아보며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여승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부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중 묘음에게 들은 소리를 입밖에 내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묘음의 입을 통하여 전 대호군(大護軍) 유혜강에게 전해졌고 유혜강은 그 자부(姊夫) 성석인(成石因)에게 이 말을 전해 결국 좌정승 성석린(成石璘)까지 듣게 되었다. 호구에 들어간 것이다.

a 형문에 사용했던 곤장과 방방이

형문에 사용했던 곤장과 방방이 ⓒ 이정근

순금사사직(巡禁司司直) 김자양을 합포에 보내 조호를 잡아들인 의정부는 조희민의 아들 조금음, 조동가, 조벌 그리고 조희민의 어머니를 옥에 가두었다. 죄인들로부터 실토를 받아내기 위하여 순금사로 하여금 형문을 가할 수 있도록 윤허해달라고 임금에게 주청했다.


"어찌 혹독한 형벌을 가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어서야 되겠느냐?"
"조호와 묘음의 말이 각기 어긋남이 있습니다."

"조호가 이미 자복하지 않고 또 증거가 분명하지 않으니 어찌 함부로 죄를 가할 수 있는가? 조호는 늙고 또 병이 들었으며 묘음은 나이가 70이 지났으니 지나치게 형벌을 가하여 옥사를 이룰 수는 없다."


태종은 현시점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라 종용했다.

"우리 국가가 옥사를 결단하는 것이 밝지 않음이 없습니다. 지금 이 사람을 용서하면 고발한 자를 어떻게 처치하려 하십니까? 고발한 자가 사실이라 하면 그 죄가 저 사람에게 있고 사실이 아니면 그 죄가 고발한 자에 해당하는데 어찌 가리지 않고 중지하겠습니까?"

"이미 묘음을 석방하였고 조호가 불복하였으니 어떻게 그 정상을 얻겠는가? 만일 초사(招辭)를 바치지 않고 옥중에서 죽는다면 그 허실이 나타나지 아니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의심하기를 '지난날의 옥사를 결단한 것도 이와 같이 밝지 못하다'고 할 것이니 내 마음에 미편(未便)한 점이 있을 것이다. 어찌 천의(天意)에 합하겠는가?" - <태종실록>

혹독한 형문으로 후세에 웃음을 사지 말라

태종은 조호가 형문을 받다 죽는다면 이무, 민무질 사건도 가혹한 형문에 의하여 조작된 사건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간은 물러서지 않았다. 의정부와 형조에서 계속 주청했다. 끝내 임금이 물러서고 말았다.

"혹독한 형문을 가하여 후세에 웃음을 사지 말라."

형문에 대한 윤허가 떨어졌다. 심하게 다루지 말라 했지만 결과에 급급한 심문관의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크게 번져 버렸다. 형문을 견디지 못한 조호가 죽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순금사에서 대역죄로 처단할 것을 주청했다. 형문 중에 죄인이 죽은 것에 대노한 태종이 이응, 유정현을 불러 질책했다.

"조호가 그 정상을 다 토설하지 아니하고 죽었으니 어찌 정상을 다 토설하지 않은 사람을 극형에 처하고 그 삼족을 멸하는 것이 인정에 합하겠는가?"

"조호가 비록 정상을 토설하지 않았으나 증거가 명백하니 율(律)에 의하여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용서하고 죄주지 않는다면 뒤에 대역(大逆)을 범하는 자가 반드시 본받아서 비록 죽는 데에 이르더라도 진정을 토설하지 아니하여 면하기를 꾀할 것입니다. 조호의 죄가 이미 드러났으니, 청컨대, 율(律)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순금사는 자신들의 가혹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들의 형문은 합당했고 심문은 정당했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시신에 형벌을 가하자고 주청했다.

가혹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시신을 거열하다

순금사의 주청에 따라 조호의 시신를 혜민국(惠民局) 거리에서 거열(車裂)하였다. 죽은 사람의 팔과 다리를 묶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우마차를 끌어 시신이 찢어지게 하는 참혹한 형벌이다.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없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한 처형을 하는 것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전시효과다.

옥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호의 부인 노씨는 자결을 결심했다. 승승장구 잘 나가던 아들이 처형되고 남편이 죽어나가 거열당하는 세상, 더 이상 살고 싶은 미련이 없었다. 수자(守者)들이 없는 사이 목을 매달아 자결하려다 옥졸에게 발견되어 미수에 그쳤다. 죽음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죄인이다. 부인에게 심문관의 형문이 시작되었다.

"왜 죽으려 했느냐?"
"지아비가 죽었으니 아내가 살아 무얼 하겠느냐?"

고분고분한 말투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한 부인은 독기를 뿜었다.

"발칙한 것 같으니라고, 네 목숨은 네 것이 아니라 나라 것이다. 네 남편의 불궤한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뼈대 있는 가문의 아녀자가 그런 천박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소

"제공들은 부인이 없소? 부부 사이에는 비록 죄를 범하였더라도 서로 숨겨 주는 것이 정리인데 하물며 남편이 하지 않은 말을 내가 어찌 했다고 말 할 수 있겠소? 내가 만일 매에 못 이겨 없는 일을 사실이라고 증언 하고 내가 죽어 황천에서 남편을 만나면 남편이 내게 묻기를 '내가 실지로 말한 적이 없는데 네가 어째서 거짓 증언하여 죄를 만들었느냐?' 하면 내가 어떻게 대답하겠소?" - <태종실록>

기막힌 논리전개다.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을 경우 황천에서 남편을 만나면 할 말이 없다는 논변이다. 그러니 '들은 것이 없다'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고문일랑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어째서 '그 입, 그 입' 하였느냐?"

중 묘음이 조호의 집에 들어설 때 아내가 남편의 입을 가로 막으며 핀잔을 주었다고 고발했던 일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조호가 불궤한 말을 했기 때문에 남편의 입을 막았지 않았느냐 하는 추궁이다. 이것이 문제였다. 이 말이 핵심 연결 고리였다. 중 묘음은 이 소리를 '들었다'하고 조호는' 듣지 않았다'고 항변하며 죽어갔다.

"어찌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이런 용렬한 말을 할 리가 있겠소? 지금 일을 묻는 여러 재신(宰臣)들이 모두 부인이 있으니 누가 이런 사람이 있겠소? 우리 가문(家門)은 일찍이 이렇지 않았소?"

부인 노씨는 칼칼했다. 죽음을 초월했기 때문에 용기가 샘솟았는지 모른다. 재상이나 대소신료들의 부인에는 그런 천박한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자신을 압박해 거짓 증언을 받아내면 너희들이 상전으로 모시는 재상과 신하들의 부인들이 모두 다 천박하다는 논리다. 그러한 상전을 모시는 당신들은 핫바지라는 일갈이다.

비록 아녀자이지만 글을 읽고 깨우친 부인이었다. 예문관 관리의 부인으로서도 부족함이 없었고 아들을 대신(大臣) 반열로 키워낸 어머니였다. 뼈대가 있고 가문이 있는 집안의 아녀자가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느냐 하는 논법으로 심문관을 압도했다.

노씨의 남편 조호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우왕 때 판사를 역임했고 조선조에서 예문관 태학사가 되었다. 아들 조희민은 태종이 즉위하는데 협력한 공으로 좌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한성부윤이 되었던 인물이다. 한성부윤은 오늘날의 서울시장이다.

논리정연하고 당당한 부인의 기개에 감동한 옥관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형문을 중지하고 그때까지의 초사(招辭)를 보고했다. 초사를 받아든 태종은 조호의 처 노씨를 용서하여 석방하라 명했다. 뿐만 아니라 관천(官賤)에 속하여 노비생활을 하고 있는 조호의 아들 조수와 조아를 석방하라 명하고 나라에 속공(屬公)된 노비를 돌려주라 명했다.
#이방원 #순금사 #조호 #조희민 #이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