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선돌과 남근 닮은 할배 짝지돌

풍요와 생산력의 상징, 포항시의 성 상징물

등록 2007.07.20 14:32수정 2007.07.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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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은 흔히 선사시대 기념물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기념비나 묘비 혹은 종교적인 상징물로 추정한다. 그러나 정확한 용도는 아직도 의문부호에 싸여 있다. 켈트어로는 멘히르(menhir)이며 한자어로는 입석(立石)이라고 불리는 선돌. 여기서 말하는 '선'이라는 것은 '섰다'라는 동작의 계속을 의미하며, 이 '섰다'라는 표현에서 남 성기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선돌'은 발기한 남 성기를 표현한 기념물인지도 모른다. 고대인들이 남 성기를 숭배한 가장 큰 이유는 생산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여 성기'를 숭배하는 풍습도 다양하게 존재했다. 이른바 '성혈'이라고 해서 여 성기를 닮은 구멍바위에 치성을 드리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던 것이다.

경북 영덕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가 포항으로 진입하면 곧이어 해안도로인 20번 국도로 빠진다. 이 도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면 칠포리 해수욕장을 만나게 된다. 이 해수욕장 입구에서 좁은 샛길로 5분 정도 가면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칠포리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a 여 성기 모양의 암각화

여 성기 모양의 암각화 ⓒ 김대갑

지난 1989년에 처음 발견된 칠포리 암각화는 그 규모와 수량에 있어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국내의 다른 암각화가 단독으로 발견된 데 비해 칠포리 암각화는 곤륜산 기슭 곳곳에서 다량으로 발견되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암각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북쪽 기슭의 사암에 새겨진 것이다. 길이 3m, 높이 2m의 사암에 새겨진 이 그림은 아래위가 긴 장방형의 모습에 양쪽 면을 곡선으로 묘사한 것이 여 성기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또한 장방형 안에 파인 여러 개의 구멍들은 고대인들이 풍요와 다산을 바라며 치성을 드리던 성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일대에서는 성혈이 묘사된 지석묘가 다수 분포하는데, 이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칠포리 암각화는 풍요와 다산을 빌던 제단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칠포리 암각화에 작별을 고한 후, 포항시 흥해읍내로 들어가 보자. 흥해읍 흥안리에 가면 밭 한가운데에 흥안리 선돌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선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귀여운 모습이라 직접 본 사람들은 실소를 터트리게 된다. 높이 140cm에 폭 85cm에 지나지 않는 소박한 바위이기 때문이다.

a 임신한 선돌?

임신한 선돌? ⓒ 김대갑

일설에 의하면 흥안리 선돌은 1940년대에 마을 유지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을 앞에 있는 산이 낚시처럼 생겨서 낚시봉이라고 부르는데, 이 낚시봉과 연결되는 낚시추로서 이 선돌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마을이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흥안리 선돌도 여타 선돌과 마찬가지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선돌의 아랫배가 유난히 불룩한 것이 꼭 임신한 여성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위가 임신을 했다? 참 재미있고 기발한 상상이다. 그러나 이 상상에는 의식주의 풍요를 바라는 고대인들의 원망(願望)이 잔잔하게 배어 있다. 충북 옥천에도 이와 유사한 선돌, 즉 임신한 선돌이 있다.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에 가면 3기의 선돌이 있는데, 이들 중에는 남근석도 있고 여근석도 있다.

그런데 남근석보다 두 배 정도 큰 여근석의 아랫배에 직경 84cm의 둥근 원이 음각되어 있다. 이 원이 바로 임신한 여성의 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흥안리 선돌에는 이런 둥근 원은 없지만 아랫배가 불룩한 모습은 영락없이 임산부의 모습이다.

다시 흥안리 선돌에 작별을 고하고 포항시내의 동해초등학교로 가보자. 동해면 도구리에 있는 동해초등학교에는 '할배 짝지돌'이라는 길쭉한 바위가 민망한 모습으로 서 있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원래 이 '할배 짝지돌'은 동해면 신정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이 바위가 쓰러지자 인근의 초등학교로 대피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 할매 짝지돌은 어디에 있을까? 할배가 있으면 할매가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지 않는가. 다행스럽게도 할매 짝지돌은 신정리 마을 입구에서 서서 오늘도 마을을 잘 지키고 있단다.

a 할배 짝지돌

할배 짝지돌 ⓒ 김대갑

할배 짝지돌에는 이 선돌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는 내용이 페인트로 조악하게 적혀 있다. 칠이 거의 벗겨져 나가 잘 보이지도 않는 이 글에서 무생물인 돌을 수호신으로 모신 민초들의 소박함을 느낄 수 있다. 단지 남 성기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을의 수호신이 된 바위는 자신의 지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끼 꽃이 핀 몸체를 무연히 드러내고 있다.

바위에 성혈을 새겨 넣은 고대인들은 무한한 생산을 고대했을 것이고, 평범한 판석 하나를 마을 중간에 세운 흥안리 사람들은 평안과 풍요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에 살던 동해면 사람들은 남 성기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아 풍부한 생산을 기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생물인 돌에게 자신들의 소망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순연한 마음씨에 절로 애정이 간다. 순박하면서도 애잔한 민중들의 마음씨에 푸근함이 느껴진다. 돌에게도 존경을 표하면서 자신을 낮추었던 민초들의 마음씨에 그저 눈길이 가는 것이다.
#선돌 #할배짝지돌 #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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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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