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정부 뒷거래 캤던 참여정부
이번에는 뒷거래 없이 추진했을까

[남북정상회담 성사 막전막후] 안희정 "공식라인 통해 절차 진행"

등록 2007.08.08 17:28수정 2007.08.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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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 8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 8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번엔 정말 '뒷거래' 없이 투명하게 추진됐을까.

8일 전격 발표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접하면서 우선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토록 가슴 설레며 지켜봤던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에 '뒷돈'이 오갔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을 때 받은 충격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밀사 역할을 했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북한에 보냈다는 2억 달러의 성격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권 내에서조차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같은 추진방식은 정상회담 자체의 획기적 의의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 사실이다.

'투명성' 강조하는 정부... 평양방문 사진도 공개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8일 발표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공개하면서 '투명성'을 강조했다. 메신저 역할을 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두 차례 평양방문 당시 활동 내용을 기록한 사진들을 이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김만복 원장은 우선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6·15 공동선언에 따른 남북한 합의사항이며 그동안 "언제 어디서든 개최할 수 있다"는 방침을 지속적으로 천명해왔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와 함께 "장관급회담 등 주요 납북접촉을 계기로 필요한 경우 특사를 파견할 용의도 있음을 전달해 놓은 바 있다"고 공개했다.

북한도 그간 "정상회담 개최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자세였다고 김 원장은 밝혔다. 그러나 "시기는 주변정세와 남북관계 상황을 보면서 검토하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과거와 같은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조건이 성숙되면 언제든지 열릴 수 있는 기반 위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회담 성사의 직접적 계기는 7월 초 남측의 '고위급 접촉' 제안이었다. 남북관계 및 현안사항 협의를 위해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만날 것을 북측에 제안했다.


북측의 답신은 7월 29일에 왔다. '김 국정원장이 8월 2~3일 비공개로 방북해 달라'는 김양건 부장 명의의 공식 초청이었다.

김양건 부장은 평양을 방문한 김 원장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중대제안 형식으로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상봉을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김만복 원장은 서울에 돌아와 노 대통령에게 이 제안을 보고하고, 수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어 8월 4~5일 2차로 방북, 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남북합의서에 김양건 부장과 함께 서명했다.

a <font color=a77a2>2000년의 감격...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정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2000년의 감격...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정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안희정 "결국 '공식라인'으로 성사되지 않았나"

정부의 이같은 '공식설명' 외에 이면에서 남북한 사이에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또 그것이 정상회담 성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사안의 성격상 당장은 정확히 확인되기 어렵다.

김만복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남북 간에는 여러 채널이 있다, 비공개 채널도 있다"며 "정상회담을 추진해 나가면서 공개, 비공개 채널이 다 활용됐지만 내적으로는 아주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비공개 채널'도 가동되긴 했지만, '뒷거래'로 비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미리 선을 그은 것이다.

김 원장이 이날 '비공개 채널'을 언급한 것은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 등이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와 비밀접촉을 한 사실이 이미 확인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북 접촉의 바통을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넘겨받았고, 이는 올해 3월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이 과연 남북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관측이 분분하다.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제한적 역할이었다는 관측이 많지만, 비선을 통한 '정치적 뒷거래' 시도로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안희정씨는 8일 오전 기자와 통화에서 "남북정상회담은 결국 '공식 라인'을 통해 성사되지 않았느냐"면서 "남북간 공식 라인이 끊겼을 때 이를 다시 이어보려는 비공식 라인의 역할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 큰 흐름은 공식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확인되겠지만, 현재로선 이같은 '비공식 라인'이 이번 남북정상회담 성사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면 정상회담 개최사실 발표와 동시에 공개하는 것이 상식이다.

2000년 당시에는 발표와 동시에 박지원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간 비밀협상 과정이 상세히 공개됐다. 만약 성사 경위와 관련, 이번에 발표하지 않은 내용이 나중에 추가로 드러날 경우 정권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일부러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a <font color=a77a2>그러나 2003년의 '오점'... 2003년 6월 서울 대치동 대북송금 특검 사무실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의 '오점'... 2003년 6월 서울 대치동 대북송금 특검 사무실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권우성

정동영·이종석 "2005년,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지금까지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꽤 오래 전부터 노무현 정부와 정상회담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세가 풀리지 않는 바람에 미뤄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것을 결심했으나 그동안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했으며, 최근 주변정세가 호전되고 있어 현 시기가 '수뇌상봉'의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5년 6자회담 합의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에도 남북정상회담 논의는 급진전을 보였던 것으로 당시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은 지난해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2005년 말에 남북정상회담은 8부 능선까지 갔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도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 원칙엔 합의했고 시기만 정하지 못했다"면서 "이후 북한은 한반도 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거나, 제3국에서라도 개최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최종적으로 성사되지 못한 것은 예기치 못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정세가 꼬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자세도 문제였지만, 미국이 반대하는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는 남측으로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봉조 통일연구원장은 8일 "미국의 정책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올해 초 '2·13 합의'에 이어 BDA문제가 최종 해결되고, 북한의 핵시설 폐쇄 조치가 단행됨으로써 상황은 급진전됐다. 물론 회담 발표 자체는 '전격적'일 수밖에 없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흐름으로 본다면 자연스런 상황진전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입장에서 '8월 남북정상회담설'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어느 쪽도 특별한 움직임을 포착해서 제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세의 흐름을 보면 누구나 예상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된다고 해도 결코 '깜짝 놀랄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a <font color=a77a2>2007년 다시 평양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북측 통일전선부장은 8월 5일 평양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서명했다.

2007년 다시 평양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북측 통일전선부장은 8월 5일 평양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서명했다. ⓒ 청와대 제공

곤혹스러운 한나라당의 '흠집내기' 시도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은 대통령선거를 불과 4개월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열리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북한이 '한나라당 집권 저지'를 공언한 상황이기 때문에 실제 '뒷거래' 존재 여부와는 무관하게 논란은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8일 한나라당의 반응에서 충분히 예견되고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정상회담 개최에 반대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선거판을 흔들어 정권교체를 막아보겠다는 술책일 가능성이 크다, 퍼주기 구걸 의혹과 함께 정치적 뒷거래로 끝나고 말 것" 등으로 맹비난했다.

노무현 정권 내내 대북 강경책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 전개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일단 '흠집 내기'가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뒷거래'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런 태도를 계속 밀고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정권 초기 특별검사 임명을 통해 1차 남북정상회담 과정의 '뒷거래' 의혹을 파헤쳤던 노무현 정부가 같은 오류를 되풀이했다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회담 성사의 결정적 요인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호전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뒷거래 #2·13 합의 #BDA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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