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노동자 연행과정에 인권은 없었다"

인권단체·민주노총, 인권위에 진정서 접수... "경찰 반성해야"

등록 2007.08.21 11:21수정 2007.08.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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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11시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가 '이랜드 노동자 인권유린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고 있다.
20일 오전 11시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가 '이랜드 노동자 인권유린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이랜드 노동자 연행과정에 인간은 없었다."

20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랜드 노동자 인권유린 진정서'가 접수됐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이름으로 제출된 진정서에는 알몸 수사, 환자 방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진정서를 전달한 박승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알몸수사, 성희롱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일선 경찰서의 인권 유린은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자리를 같이한 김진석 구속노동자후원회 활동가는 "경찰은 인권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정서에 쓰인 글이 아닌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인권 유린'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얼굴을 드러내기 꺼린 이들은 "다시는 인권 유린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사례1] "사람 아닌 짐짝 취급당했다“

"응급조치가 중요하다, 뇌졸중이 얼마나 무서운데, 이렇게 방치를 할 수 있느냐." 임혜숙씨의 말이다.
"응급조치가 중요하다, 뇌졸중이 얼마나 무서운데, 이렇게 방치를 할 수 있느냐." 임혜숙씨의 말이다.오마이뉴스 선대식

"경찰이 사람 목숨 놓고 그럴 수 있느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면목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의 임혜숙(39)씨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인권위 진정서에 임씨의 사례는 '건강권 침해'라고 쓰여 있었다.

임씨가 '인권 유린'을 당한 것은 뉴코아-킴스클럽 강남점 2차 점거 후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어 연행된 지난달 31일 새벽 5시께다. 임씨는 우선 연행과정에 불만을 터트렸다. 임씨는 "끌려나올 때 사람이 아니었다, 짐짝 취급을 받았다"며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몸을 긁힌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머리에 혈관이 막혀 있는 질환이 있는 임씨는 "끌려가면서 머리가 아프고 답답해 물을 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광진경찰서에서 119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경찰에게 '조용히 하고 앉아 있어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임씨는 오전 8시까지 실랑이를 벌인 후 계단에 앉아있다 갑자기 쓰러졌다. 인근 녹색병원으로 옮겨진 임씨는 8월 5일에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임씨의 수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임씨가 6일 퇴원할 때까지 경찰은 "조사를 받을 수 있느냐"며 여러 차례 병원으로 찾아왔다. 임씨는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며 "경찰은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고 그때의 상황을 돌이켰다.

임씨는 "응급조치가 중요하다"며 "뇌졸중이 얼마나 무서운데, 이렇게 방치를 할 수 있느냐"고 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광진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솔직히 연행되면 이런 주장은 항상 있어서 경찰은 신경을 많이 쓰고 의식을 하고 있다"며 "그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새벽이라 차가 없어 직접 경찰차로 병원까지 데려갔다"고 답했다.

[사례2] "수치심을 느꼈지만 위압감 때문에 바지 내렸다"

20일 오후 뉴코아-킴스클럽 강남점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200여명이 집회를 열고 있다. 그곳에서 뉴코아 노조 조합원인 20대 후반의 최아무개씨를 만났다.
20일 오후 뉴코아-킴스클럽 강남점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200여명이 집회를 열고 있다. 그곳에서 뉴코아 노조 조합원인 20대 후반의 최아무개씨를 만났다.오마이뉴스 선대식

이날 오후 3시 30분, 뉴코아-킴스클럽 강남점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200여명이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곳에서 뉴코아 노조 조합원인 20대 후반의 최아무개씨를 만났다.

최씨는 "경찰이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20일 뉴코아 강남점 1차 점거 당시 연행된 후 강북경찰서에서 알몸검사를 당했다. 연행되어 조사를 받은 후 유치장 입감절차를 밟던 오후 6시 30분께였다.

최씨는 "경찰은 나에게 문신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바지를 벗으라고 말했다"며 "수치심을 느꼈지만 위압감 때문에 (속옷을 제외한) 바지를 내렸다"고 말했다. 최씨는 "경찰이 문신을 왜 확인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은 변호사와 상의하겠다며 바지 벗기를 거부했다. 결국 나머지는 바지를 벗지 않은 채 유치장에 수감됐다. 이를 확인한 최씨는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 건지 변호사에게 전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다음 날 조사에서 한 조사관은 최씨에게 "당신이 옷 벗은 사람이냐"면서 "남자끼리 왜 그래, 같이 사우나나 가자"고 말했다. 최씨는 "그때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경찰서에서 인권침해를 손쉽게 당할 수 있다"며 "매우 화가 났다"고 밝혔다.

강북경찰서의 말은 달랐다. 강북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요즘 경찰이 인권 침해를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유치인 호송조치에 따라 신체검사를 한 것"이라며 "흉기를 찾거나 상처 점검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하는 것이라고 고지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체포절차에 대해 반성해야"

지난달 31일 새벽, 뉴코아-킴스클럽 강남점에서 경찰이 농성중인 뉴코아 노동자들을 끌어내고 있다.
지난달 31일 새벽, 뉴코아-킴스클럽 강남점에서 경찰이 농성중인 뉴코아 노동자들을 끌어내고 있다.윤대근

권영국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는 임씨의 사례와 관련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병력이 있거나 연행과정에서 다친 경우, 의사의 진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를 핑계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했다면 이는 형사소송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알몸 수색 사례와 관련 권 변호사는 "알몸 수색으로 수치감을 느끼게 한다면 이는 신체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물 소지 등에 대해 특별한 의심이 없으면 몸수색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과도한 알몸수색은) 적절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경찰은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여전히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는 구태의연한 수사·체포 절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수사·체포 절차에 대해 경찰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진정서를 제출한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인권위는 이 같은 사례가 인권 유린이었음을 분명히 규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랜드 #인권 #인권 침해 #비정규직 #알몸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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