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 아래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의 헛소리를 들으며...

등록 2007.08.30 17:04수정 2007.08.30 17: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어머니가 청주 효성병원에 입원한 지 44일째 되는 날이다. 어려운 수술을 잘 이겨내고 일반병실에서 재활의 꿈을 키우다 갑자기 폐렴 등의 합병증이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긴 지도 열흘이 넘는다.


하루에 두 번 30분씩 주어지는 면회시간에만 환자를 볼 수 있는 게 중환자실이다. 면회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어 썰렁했던 복도가 비좁고, 환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가족들의 표정에서 긴장감마저 감도는 게 중환자실 앞 풍경이다. 면회복도 한 집에 두 벌씩만 배당돼 친척들이라도 여럿 오는 날은 순서를 정해 부지런히 교대를 해야 한다.

세월 가는 것도 모르고 누워 있는 환자와 달리 밖의 가족들에게는 피 말리는 시간이다. 전화벨만 들려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로 긴장한다. 평소와 다른 일이 생겨도 환자와 연관 지으며 그게 무슨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오죽하면 시계가 멈춘 것까지 신경을 쓴다. 결혼할 때 고향의 친구들이 사준 괘종시계가 어머님 방에 걸려 있다. 26년이나 되어 낡고 볼품이 없건만 태엽만 감아주면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며 제 역할을 다했는데,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고부터 말썽을 부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에서 '째깍째깍' 소리가 나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식사도 못 하시고 하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혼자 헛소리를 하는 시간이 많다. 헛소리라고 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안돼, 꼭 움켜쥐고 있어, 줄려고 하지 마"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어머님이 일반병실에 있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을 생각해 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자식이 왜 필요한 거여. 이런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지."
"자식에게 무슨 효도를 바래. 속 안 썩이면 다행이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자식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비슷하다. 친척들이 부모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낯짝 자주 보이지 않는 자식을 욕하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집으로 고지서 날려 보내고 돈 적게 준다고 대드는 자식도 많다면서 그나마 다행이란다. 결국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어머님은 척추관협착증으로 다리가 마비돼 수술을 한 분이라 걷는 게 소원이었다.


"간호사들하고 걷는 연습 했어. 매일 걸어다니는데 너는 못 봤니?"

현실에서 못 이룬 소원을 꿈속에서나마 이루고 있는 것인지 만날 때마다 걷는 얘기를 하셔 안타깝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누가 옆에서 도와줘야 걸어보지…"라고 말할 때는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돈다.

뜬금없이 내뱉는 엉뚱한 소리도 많다. 날을 잡아 똑같이 목욕을 했더니 시원하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매일 맨발로 걸어다녀 미안한데 왜 신발을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원망도 하고,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괴롭혀 못살겠다고 하소연도 하신다.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가 하는 말에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돌아가신 지 오래된 분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금방 만나기로 했어. 너 없어도 편히 잘 수 있으니 앞으로는 오지 마"라고 말할 때는 금방 돌아가시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헛소리를 하시더라도 내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어머니를 보고 나야 마음이 놓여 면회시간을 기다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숨결을 들으면서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나마 길게 주어지지 않은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데 개학을 하고 보니 오전 9시부터 30분간 이뤄지는 아침 면회시간이 걸림돌이었다. 메마른 것 같아도 인정이 통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정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며칠째 아침 6시 30분에 어머님을 뵙는다.

어머님이 훌훌 털고 일어나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같이 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인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주 효성병원 #중환자실 #면회시간 #헛소리 #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일상은 물론 전국의 문화재와 관광지에 관한 사진과 여행기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