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노회찬, 이제 박빙은 끝났다

등록 2007.08.31 09:18수정 2007.08.3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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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은 끝났다

‘손에 땀 쥐게 하는 심-노 2위 쟁탈전’ 2위 쟁탈을 위해서 노회찬과 심상정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띄우고 있다는 기사가 제 눈길을 끕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박빙’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겨우 1%를 오락가락하는 차이, 이번 민주노동당 경선을 스포츠게임처럼 관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심-노의 대결은 정말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미 박빙은 끝났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제껏 세 후보의 이름을 언제부터, 얼마나 자주 들어 보았는지를 지나가는 비당원들을 붙잡고 물어 보시라. 아마 심상정은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노회찬과 심상정의 득표율이 1% 차이를 오락가락한다면, 이것은 이미 심상정이 완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재미있는 예를 한 번 들어보죠. 기호1: 심상정, 기호2: 한명숙, 기호3: 박근혜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인기투표를 했다고 칩시다. 국민들은 어떻게 예상할까요? 아마도 박근혜는 과반수 이상의 압도적 득표를, 한명숙은 심상정보다 2배 이상 앞설 것이라 예상할 겁니다.

그런데 투표가 20%쯤 진행됐을 때 득표율을 확인해보니, 박근혜 3943표 44% / 한명숙 2545표 28.5% / 심상정 2446표 27.4%(앞의 가상 득표는 8/29일 현재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의 실재 누적득표임). 이 경우를 보고 한명숙과 심상정의 대결을 박빙승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상적으로 박빙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심상정의 완전 승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박빙은 끝났습니다! 이미 노회찬 후보는 심상정 후보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박근혜 아니 권영길이 1위잖아요?

맞습니다. 권영길 후보가 현재 1위입니다. 그래서 어쩌시렵니까? 권영길 후보의 그 표들이 민주노동당의, 아니 대한민국의 진보적 변혁에 가장 적합한 대선후보를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결과라고 우기시렵니까. 대선후보 2회라는 그만한 대중인지도에, 그만한 몰표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과반수를 넘기지 못한 것은 그만큼 지도력도, 대중호소력도 떨어진다는 반증입니다.


저는 97년, 2002년 대선시기 각각 한 달여 넘게 권영길을 외치며 일어나고, 권영길을 외치며 잠이 들었습니다. 겨우 운동권 몇 명만이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질 뿐 국민들은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던 그 시절, 권영길은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기꺼이 수락하고 특유의 뚝심으로 선거를 치러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어느 누구도 권영길에게 박수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옛말에서처럼 머무르는 것만큼이나 떠나는 시기를 헤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번 대선도 저번처럼 2강1약 구도로 민주노동당 후보가 토론에 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묻고 난 뒤 씨익~ 미소 한번 지어준다고 박수쳐주지 않습니다. 두 명의 여당(실질적으로는 둘 다 여당) 후보에게 꼼꼼히 따지고, 또 민주노동당이 열어나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국민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겨야 합니다.

권영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뭐겠습니까? 넉넉한 품, 끈기 이런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권영길은 이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해서 국민승리21 이래로 이제껏, 이만큼 당을 끌어오지 않았습니까! 이제 더 이상 뭘 바라십니까. 권영길의 능력은 이만하면 다 발휘하지 않았습니까! 뭘 더 보여주겠다는 겁니까? 코미디언 이주일도 아니고.

권영길 후보는 이제 민주노동당과 진보운동에 거름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젊고 싱싱한 당으로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면, 그래서 새롭게 결합한 사람들이 끈적끈적한 정파싸움 속으로 사장되지 않고 제몫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권영길 의원 같은 분이 2선으로 물러나서 공정한 룰에 대한 잡음들을 해소하고, 신진세력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자신의 남은 열정을 바쳐야 합니다. 거름은 땅속에서 스며들면 나무가 자라는 소중한 양분이 되지만, 땅밖으로 계속 비집고 나오면 냄새나는 흉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언하건대, 당내에서 지지도가 가장 높고 대선에서 3수는 필수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현혹되어 대통령후보를 고집한다면, 당의 후보로 선출되든 되지못하든 간에,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있기까지 바친 노고를 다 까먹고 욕심 많은 늙은이라는 명함만 단 채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쓸쓸히 퇴장할 게 뻔합니다.

진보운동의 진정한 어른으로 남는 길은 이번 경선에 불참을 선언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지나버렸고, 그나마 어른으로 남는 길은 이 즈음에서라도 사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끝으로 왜 후보 얘기만 하고, 각 진영의 구성원과 그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느냐고요? 먼저 저는 각 후보마다 어떤 세력들이 선본에 결합해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후보를 보면 그 주변의 지지 세력들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어차피 직접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간접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를 치르는 데, 후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의 송고함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레디앙의 송고함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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