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등록 2007.08.31 17:36수정 2007.09.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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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의 환자들은 대부분 병세가 매우 심각하다. 본인의 의지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어 면회시간에도 답답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입장이 같은 다른 환자의 보호자들과는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중환자실의 환자는 하루에 두 차례밖에 볼 수 없어 보호자로서는 답답하다.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서려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죄책감도 든다. 그렇다고 보호자가 해줄 게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보호자가 못 보는 동안에도 내 가족처럼 살갑게 대해주길 바랄 뿐이다.

 

면회시간에 보면 의사나 간호사들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병의 경중을 따져가며 생명에 지장을 주는 문제를 제거하느라 고심도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의술이고 의사의 역할이다.

 

그런데 치료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되어도 차도가 없으면 보호자는 힘이 든다. 매일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다. 돌아가시는 분이라도 있는 날은 내게도 곧 닥칠 일 같아 마음이 공허하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긴장의 끈을 매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다 보면 지켜보는 사람들이 먼저 지친다.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났는데 생명만 연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사나 병원을 의심도 한다. 차라리 집으로 모셔 가족의 간병을 받다가 돌아가시는 게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던 날 담당의사와 마취과장에게 들었던 말이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받고 수술한 의사들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책임을 면하겠지만 수술실 앞에서 환자를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요즘 그 말을 자주 들으며 산다.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를 면회하고 나온 집안들이 '자식에게는 서운한 소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내게 해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맥이 빠지고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어려운 수술 과정은 의지로 이겨낼 수 있었지만 한고비 더 남았던 수술 후유증은 어머니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중환자실로 내려오고 나서도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해 몸 상태가 최악이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이나마 매일 보는 나와 달리 처음 보는 집안들이 금방 돌아가실 분으로 인정하는 것도 이해를 한다.

 

자기 부모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면 힘이 빠지는데 회복 기미마저 보이지 않으니 면회를 하고 나올 때는 발걸음이 무겁다. 문병 온 사람들로부터 할 만큼 했으니 '서운하다고 생각할 때 보내드리는 것도 괜찮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내 어머니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당연히 지켜야 한다. 언젠가는 희망의 끝이 보일 것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벌면 되는 것이니 병원비 걱정은 하지 말라는 아내가 옆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헛소리를 하신다. 면회시간이라고 나타난 자식이 무슨 소리인 줄 못 알아듣는 게 답답한지 짜증도 부쩍 늘으셨다. 어이가 없어 '허허' 웃는 나를 알아볼 만큼 의식이 있으니 허공에다 대고 하는 헛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8.31 17:36ⓒ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중환자실 #헛소리 #보호자 #면회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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