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 닥터, '장막'에서 선거판 뒤흔든다

<삼국지연의>에서 2007년 대선까지, '스핀 닥터'의 존재들

등록 2007.10.04 08:55수정 2007.10.0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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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를 보면서 제 시선을 끈 인물은 촉한의 '법정'과 '가후'였습니다.

방통이 죽은 후, 인재난에 시달리던 촉한으로서는 법정만한 모략가도 드물었습니다. 제갈공명이 몸이 100개가 아닌 이상, 혼자서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판'은 제갈공명이 짠다 해도, 그 밑에서 세부적인 계략을 짤 '모사'의 존재도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손에 흙탕물을 묻히고 최전선에서 잔계략을 짜줄 수 있는 인물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인물이 부족했던 탓에, 북벌 도중에도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소화하던 제갈공명은 '폐결핵'이라는 과로로 인한 질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난히 재사들이 많았던 조조 측에는 초창기에는 곽가가 이런 역할을 수행했고, 곽가가 죽은 이후에 부각된 모사는 가후입니다. 조비와 조식을 놓고 누구를 후계자로 고민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던 조조, 가후는 그와 함께 산책하면서 "누구를 후사로 선택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고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기분이 나빠진 조조가 대답을 채근하자, <삼국지연의> 전체에 걸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깁니다.

"아, 예. 잠시 원소와 유표의 후계자 고르던 일을 생각하느라…"

원소와 유표 모두 장남을 후계자로 선택하지 않았다가 패가망신한 사례죠. 이문열은 <삼국지연의>를 평역하면서 "조비가 '나를 후계자로 선택해달라'고 100번을 하소연한 것보다 더 탁월했던 한마디"로 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게 바로 모사의 삶이고, 모사의 입 입니다.

이런 '모사'의 존재가 촉한에 부족했음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게 제갈공명이었습니다. 관우가 죽은 후, 무리하게 동오정벌을 추진하던 유비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닫자, 제갈공명은 장탄식을 남깁니다.


"(병으로 이미 죽은) 법정이 살아있었으면 주상을 말릴 수 있었을 것을…"

황충이 한중정벌에서 제일 가는 공을 세우게 됐을 때에도 그랬죠. 황충의 옆에는 법정이 있었고, 이 법정이 황충의 귀에 다양한 계략을 들려줌으로써 위의 대장 하후연을 벨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갈량의 문제의식은 정확했습니다.


선거판에서 엿본 '모사'의 존재

우리나라 현대사를 공부할 때, '김대중'을 주목하다 보면 대단히 재미있는 인물을 마주치게 됩니다. 누굴까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바로 '엄창록'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1년에 간신히 민의원에 당선됐다가, 5·16 쿠데타로 인해 선서도 해보지 못했을 때, 김대중 진영에 가담한 인물입니다.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희미하게 기억하는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선거전의 귀재'였고, 당시에는 최고의 선거참모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중앙정보부와 막대한 자금을 빌어 신민당을 방해하던 시절, 사실 김대중 진영으로서는 '네거티브'로 상대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엄창록은 바로 이 '네거티브'의 전문가, 그가 구사한 계략은 대중의 원초적 심리를 확실하게 파고들 수 있는 아주 명확한 계략이었습니다.

①야당 선거운동원이 여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해, 양담배를 꼬나물고 다니며 여당 후보 지지를 권유한다.
②야당 선거운동원이 여당 선거원동원으로 위장해, '적은 액수'가 담긴 돈봉투를 돌리며 "여당에서 돌리는 것"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③야당 선거운동원이 여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해, 설탕이나 고무신을 돌리다가 "이 집에 줄 것이 아니라"며 도로 빼앗아간다.
④야당 선거운동원이 여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해, "여당 후보가 식사를 제공한다"는 소문을 낸다. 하지만 막상 식당에 가면 '식사 제공'은 있지도 않던 일.
⑤야당 선거운동원이 여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해, 차를 타고 곳곳을 다니며 온갖 욕설은 다 퍼붓는다.

결코 해서는 안될 수단이긴 합니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박정희 정권이 조직적으로 관권 선거를 유도하던 시절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존재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계략, 얼마나 놀랍습니까?

물론 '대전략가'가 구사하기에는 스케일도 너무 작고 파렴치한 계략이긴 하지만, '선거'라는 특성상 이런 계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존재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수법이 선택됐을 당시의 신민당은, 8대 총선에서 153개의 선거구에서 65석을 얻는 성과를 달성합니다. 전적인 영향은 주지 않았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줬을 것이란 사실은 짐작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결과, 이 수법에 치를 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대중 진영에서 엄창록을 '배신'시켜버립니다. 중앙정보부에 특채해 이 수법을 오히려 신민당에 구사한거죠. 당시, 엄창록의 별명은 '선거판의 여우'였습니다.

세련된 변화, '스핀 닥터'

이런 존재를 '스핀 닥터(Spin doctor)'라고도 합니다. 영어사전에는 "정부 수반이나 각료들의 측근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정부의 입장, 정부 정책 따위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요즘에는 '선거관리'나 '선거기획' 등을 담당하는 참모들을 일컫는 말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의 엄창록도 '스핀 닥터'라고 할만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고 1980년대의 피의 투쟁 이후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보다 세련된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저런 방식의 선거수단이 노골적으로 통할 수는 없게 된거죠.

그래서 1990년대 이후에는 김현철의 브레인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동숭동 팀'을 이끌던 전병민과 같은 케이스들이 나타납니다. 정치권과 연계해 선거팀을 이끌거나 연구소를 꾸리면서 총체적인 기획이나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여론조사를 시도하는거죠.

지금은 통합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해찬 예비후보도, 1990년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스핀 닥터'로서 맹활약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경선으로 부각되기 직전에도, 한 명의 알려지지 않은 '스핀 닥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홍석기'라는 인물입니다.

그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됐던 상황입니다. 그래서 참모들 사이에서 그 이후의 행적을 놓고 논쟁이 많았던거죠.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인가, 재보선에 출마할 것인가, 민주당 최고의원 경선에 출마할 것인가.

이렇듯 논란이 분분할 때, 홍석기는 '노무현'의 이후 전략을 단칼에 정리해버립니다. "최고위원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장관으로 들어가 행정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논리를 세운거죠.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정권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했고, 당시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의 평가는 대단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 전에, 본래부터 '안티 보수언론'의 기치를 내걸던 '노무현'의 지론이,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를 벌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눈에 띄었던 것도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차기 대선주자를 놓고 '이인제'를 지지했던 동교동계, "DJ의 적자가 집권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던 '한화갑', 이 틈에서 홍석기와 배기선 의원, 그리고 김희완은 '영남후보론'을 내세워 '노무현'을 앞장세웁니다.

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의 표를 골격으로 영남의 표 일부를 빼와 차기 대선 승리를 세우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떠오르던 대안이 '김혁규'였다고 하는데, 홍석기와 김희완이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염두해두면서 색깔이 다른 '노무현'을 내세웠다는거죠.

우리는 그저 신문이나 TV 뉴스를 통해 정치권 뉴스를 접하기에, 이런 막후에 대해서는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에서 맹활약하는 인물들이 바로 '스핀 닥터'들입니다. '선거 컨설턴트'라는 또다른 직함을 가진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토니 블레어가 영국 총리로 재직할 당시 앨러스테어 캠벨이라는 전략가가 '사실상의 부총리'라는 별명을 가졌던 예도 있습니다.

더욱 진화된 '스핀 닥터'

2002 대선과 2004 총선을 기억해보시면 됩니다. 그 당시에 히트쳤던 정당의 광고영상들을 떠올려보시죠. 사상 최고의 선거광고로 기억남을 '노무현의 눈물', 그리고 2004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키는데에 큰 역할을 했던 '회초리를 맞던 아들의 눈물과 그런 아들을 때리던 안타까운 표정의 어머니', 그 장면 다음에는 박근혜 당시 대표의 얼굴이 보이면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십시오"를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훌륭한 수단임을 2002 대선에서 크게 깨달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지 정치'라고도 하는데, 사실 '이미지 정치'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 내용물이 뚜껑을 열어보니 다르거나, 아니면 아예 없을 때. 그리고 '이미지 정치'에만 승부를 걸 때, 그럴 때 문제가 되는거죠. 기업도 광고를 통해 '이미지 효과'를 통해 첫 승부를 보는 것이 널리 통용된 수단입니다.

결국, '스핀 닥터'의 활동 분야도 넓어진 것입니다. 총체적인 비전과 전략을 관리하면서, 다양한 여론조사를 통한 향후 전략 예측, 그리고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컨설턴트들의 등장, 심지어 정치인의 옷차림과 제스처, 연설문까지 관리하는 이들도 '스핀 닥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참여정부에서 연설담당비서관과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했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도 넓게 보면 이 '스핀 닥터'에 포함됩니다. 지방선거 패배 등으로 노무현 후보가 흔들릴 당시, 'Mr.Sniper'라는 필명으로 여러 차례 지지자들의 가슴을 불태운 글을 썼으며, 집권 이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 전반을 작성하던 측근이죠.

'스핀 닥터'의 명암

지난 8월 12일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히트작 슬로건과 'DJ DOC'의 노래를 차용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선전광고를 창안한 윤흥렬 전 스포츠서울 사장이 정동영 캠프에 합류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통합신당 경선'으로 봐선 그도 지금 악전고투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문국현 예비후보도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을 때, 여론조사계의 1인자로 통하던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이 캠프에 가담해 '수석전략가'로 활약한다는 소식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관찰자'가 '선수'로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인터넷'과 '블로그'라는 또다른 미디어의 탄생, 그리고 '하루가 1년같은' 정치적 상황으로 봤을 때, 대중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유도하고 전반적인 전략을 구사할 '스핀 닥터'의 존재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두각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베리 레빈슨 감독의 1997년작 <왝 더 독>을 보신 분이라면, 당시 로버트 드니로가 분했던 '브린'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재선에 나선 상황에 성추문 스캔들에 휘말린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가상의 '대 알바니아 전쟁'을 미디어를 통해 선전하며 모략을 쥐어짜내는 역할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엄창록, 그리고 <왝 더 독>의 '브린'을 기억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이 '스핀 닥터'들이 정치권이나 선거판 자체를 더럽힐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에 대한 시각적인 설득력이나 관심 유도, 그리고 장막에 숨어 전략을 짜낼 수 있는 전략가로서의 효용가치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대중선동가로 유명했던 아돌프 히틀러에게도, '폴 조셉 괴벨스'라는 천재적인 선전가, 즉 '스핀 닥터'의 원조가 있었죠. 정치인들은 이 괴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스핀 닥터'의 존재는, 우리의 흥미를 돋구는 측면도 있지만 이렇듯 '이미지 선거'의 극단적 단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유권자들의 더욱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문국현 #스핀닥터 #신당 경선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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