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자라면 권해 주고 싶은 책

[아가와 책 88] 반신불수 할아버지가 자폐증 손자에게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7.10.04 15:18수정 2007.10.0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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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 ⓒ 문학동네

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 ⓒ 문학동네

이런 저런 종류의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은 참 좋아서 나중에 우리 아이가 커서 한번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억지로 감동을 짜내거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미화하지 않고도 진한 감동을 주는 책들. 이런 책들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란 믿음이 항상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 아이가 자라서 한번 쯤 읽어봤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특히 20대의 화려한 시절에 이런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살피고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화려하고 밝은 순간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운 단면도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가르쳐 주고 싶다.

 

30대의 한창 일할 나이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저자 대니얼 고틀립. 그는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극복하고 현재 정신치료 상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고로 인한 어둠이 그를 덮쳤지만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배워간 한 남자. 그는 새로운 식구인 샘을 맞이하면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손자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샘은 자폐아로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수용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의사소통 장애를 겪고 있다. 이 예쁜 손자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샘의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도 고틀립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샘, 때론 삶이라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우리가 지니고 있던 각진 모서리를 잃게 되는데, 그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 그런데 때론 삶의 격류에 휩쓸려 우리가 타고난 지혜까지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거센 격류라 해도 우리의 지혜를 다 휩쓸어 갈 수는 없어.”

 

이렇게 아이를 무릎에 놓고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저자의 말들에 독자는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 이유는 그가 체험한 슬픔, 고뇌, 절망이 희망과 기쁨이라는 새로운 것들로 승화되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름답게 미화된 것이 아니라 솔직한 진술로 담담히 이야기하기에 더욱 감동을 준다.

 

전신마비 할아버지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 이들은 일반적인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저자는 샘에게 ‘네가 남과 다르고, 나도 남과 다르다는 건 하나의 사실’일 뿐이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은 고통일 수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와 함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강조한다. ‘스스로 남과 다르다고 생각할수록 네가 더욱 외로워질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든 인간은 타인과 ‘다름’을 갖고 산다. 남보다 못생겨서 다르고, 남보다 머리가 뛰어나지 못해서 다를 수 있다. 남보다 부자가 아니어서, 남보다 특별히 잘 하는 게 없어서 다른 존재로 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슬퍼하고 괴로워한다면 고통의 늪 속에서 평생 헤어날 수가 없다.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는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분노와 공포로 가득차서 울분을 터트리며 인생을 보내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산다면 인생은 해피 무비가 될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것들 중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많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연구소’를 개설했다고 한다. 이 연구소는 이타적인 사랑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연구소인데, 재미있게도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다. 때로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가기도 하는데, 그건 마음이 그릇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걸 해야만 마음이 풀릴 거야.’ ‘저걸 하면 상처가 가시겠지.’ ‘다른 사람이 내게 상처를 준 거야. 그들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데, 내 마음의 상처가 나을 리가 있어?’ 이런 생각들은 자연적인 치유과정을 방해할 뿐이다.

 

네가 입은 상처가 아무리 깊더라도, 그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살펴주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명약은 바로 자기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 저자의 이런 말들은 하나하나가 독자의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엄마이고 싶지만, 워낙 부족함이 많은지라 고틀립 선생의 목소리를 빌어 전해 주고 싶다.

 

이 책은 아이와 엄마, 세상의 모든 상처 받은 사람들, 힘겨움에 몸을 떠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으며 상처와 극복 과정에 대한 미화도 없지만, 저자의 말들은 하나하나가 가슴에 남는다. 세상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나 자신을 한 번 더 반성해 보게 된다.

2007.10.04 15:18 ⓒ 2007 OhmyNews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문학동네, 2007


#육아서적 #샘에게보내는편지 #자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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