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와 끈기로 범죄를 추적한 부부탐정

[불멸의 탐정들 11] 토미 & 터펜스 부부

등록 2007.11.07 08:48수정 2007.11.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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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밀결사> 부부탐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장편

<비밀결사> 부부탐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장편 ⓒ 황금가지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대부분 혼자서 활동하지 않는다. 이들은 누군가와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탐정과 함께하는 사람은 그의 조수일 수도 있고, 파트너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관찰자일 수도 있다.

셜록 홈즈에게 와트슨이 있었고 네로 울프에게 아치 굿윈이 있었던 것처럼, 탐정은 다른 사람 한 명과 같이 콤비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하지 않은 경우지만 이중에는 남녀 콤비도 있다.


비교적 현대에 등장한 케이 스카페타와 피트 마리노,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데니스 루헤인이 만든 커플 켄지와 제나로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남녀는 서로 부딪히고 매번 티격태격하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해 간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탐정 토미와 터펜스 부부도 이런 경우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부부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탐정은 노총각이고 여자와도 담을 쌓고 지낸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토미와 터펜스 부부는 태생부터가 상당히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추리소설의 여왕이 만든 부부탐정 토미와 터펜스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작가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무려 70편에 가까운 장편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그중에서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은 고작 4편이다. 그외에 이들이 등장하는 단편집 한 권이 더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발표된 작품들의 연도를 생각해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부부탐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작품은 1922년에 발표된 <비밀결사>다. <비밀결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두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부부탐정이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은 1973년에 발표된  <운명의 문>이다. 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마지막으로 남긴 장편이다.

무려 50년의 세월에 걸쳐서 부부탐정은 가끔 한 번씩 독자들에게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목록에서 거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것을 고려해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가 이들 부부탐정에게 꽤 많은 애정과 미련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50년의 세월에 걸쳐서 등장하는 탐정인 만큼, 이들의 모습도 세월에 따라서 변해간다. 첫 작품에서는 토미와 터펜스 모두 20대의 활기 넘치고 겁을 모르는 젊은이였다. 토미는 1차대전에 참전했던 퇴역 중위이고, 터펜스는 병원을 나온 전직 간호사다. 이들은 직업도 없고 할 일도 없이 런던의 거리를 걷는 많은 젊은이들 중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토미와 터펜스는 모두 모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토미는 붉은 머리칼과 함께 잘 생겼다기보다는 재미있게 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다. 터펜스는 내세울 만한 미모는 아니지만 개성있고 매력적인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터펜스의 본명은 프루던스 카울리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별 볼일없다는 이유로 터펜스(2 펜스)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하다.

토미는 프랑스 전선과 메소포타미아 전선에서 활약한 베테랑이고, 터펜스는 육군병원에서 근무하며 나름대로 전쟁에 뛰어들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지내던 사이다. 이들이 다시 의기투합한 것은 1922년, 돈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일자리도 없던 시절이다.

단지 이들은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돈을 받고 모험을 해주겠다는 광고를 신문에 싣자고 마음을 모은다. 적절한 보수만 받을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내용의 광고다. 이들은 '청년모험가 회사'라는 사무실을 내고 마치 소꿉장난처럼 뭔가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다.

토미와 터펜스는 젊기 때문에, 열정과 추진력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 젊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실수도 많다. 경험부족에서 오는 실수로 좌충우돌하지만, 이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파트너다.

젊은 열정으로 모험사업을 시작하는 토미와 터펜스

a <부부탐정>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하는 단편집

<부부탐정>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하는 단편집 ⓒ 황금가지


<비밀결사>에서 토미의 상관으로 등장하는 인물 카터가 바로 이들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묘사한다. 토미는 생각이 느리고 일처리도 빠르지 못하다.

그러면서 일단 뭔가를 포착하면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다. 터펜스는 토미와는 다르다. 상식보다는 직감을 앞세우는 타입이다. 자존심과 고집도 세다.

이들은 속도와 끈기가 적절하게 조화된 한 쌍의 탐정인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 친구 사이로 만나지만, 작품 속에서 서로 애정을 느끼고 그것을 발전시켜 간다.

결국 <비밀결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리고 그 결혼생활을 50년 넘게 유지한다.

그 50년의 세월 동안 이들은 수많은 사건과 마주친다. 정식으로 탐정 사무소를 개설하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의 격동기다. 그 혼란의 세월도 이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부부탐정의 주위에는 간첩이 있고 이중스파이가 있고 그 배후의 거대조직이 있다. 부부탐정은 국가의 지원도 별로 받지 못한 채 이들 조직과 맞선다.

당연히 난항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토미는 머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채로 감금되는가 하면, 터펜스는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고 움직이다가 총에 맞을 위험에 처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겁을 먹고 물러설 만도 하건만, 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끝까지 범죄조직을 상대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상대방의 정체를 하나하나 밝혀내고야 만다.

부부탐정을 돕는 조연도 있다. <비밀결사>에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보이로 등장하는 앨버트가 그 주인공이다. 앨버트는 <비밀결사>에서 작은 소년으로 나와서 토미와 터펜스를 돕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앨버트는 부부탐정의 모든 시리즈에 나타난다. 사무소의 안내원으로,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집사이자 요리사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앨버트는 이들 부부를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커다란 도움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앨버트는 <엄지손가락의 아픔>에서 오래된 책상 속에 숨겨진 문서를 찾아내고, <N 또는 M>에서 지하실에 갇힌 토미를 구출한다. 앨버트는 거의 50년 동안 이들 부부와 함께 손발을 맞추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훌륭한 조연인 셈이다.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모험을 좋아하는 토미와 터펜스

하지만 역시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법. 20대의 젊은 커플로 등장한 이들 부부도 마지막 작품인 <운명의 문>에서는 70살을 넘긴 노부부가 되어 지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역시 늙어버린 앨버트가 있다. 부부탐정에게는 사랑하는 여러 손주가 있다. 앨버트도 일찍 결혼했지만 아내는 먼저 사망하고 없다. 앨버트는 부부탐정의 하인이 되어서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토미의 붉은 머리는 어느새 백발이 되었고, 사람들은 토미를 가리켜서 '늙은 친구'라고 부른다. 토미와 터펜스는 여전히 모험과 자극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즐겁게 자신들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시간을 보낸다. '둘 다 용케도 목숨을 부지해 왔다는 생각이 드는 군'이라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이렇게 노년이 되어서도 터펜스의 호기심은 여전하다. 터펜스는 여자 특유의 직감으로 사건을 포착한다. 낡은 책에 표시된 암호문에 관심을 갖고, 그림속에 있는 집을 찾아서 기차를 타고 영국을 돌아다닌다. 그때마다 토미는 아내를 말리지만, 터펜스는 요지부동이다. 터펜스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런 일들은 결국 커다란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부탐정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편하게 쉴 틈이 없는 셈이다.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독특하다. 호흡이 잘 맞는 부부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그렇고, 이들이 다루는 사건의 배후에 범죄조직이 있다는 점도 그렇다. 부부탐정 시리즈는 마치 하드보일드와 모험이 뒤섞인 듯한 독창적인 작품들이다.

어쩌면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1914년에 첫번째 결혼을 했다. 1차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남편은 장교로 참전했고, 애거서 크리스티도 간호사로 근무했다. 토미와 터펜스의 이력과 아주 유사하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과 남편을 모델로 해서 부부탐정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첫번째 결혼이 파국을 맞으면서 부부탐정의 이야기도 뜸해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있다. 작가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영국여왕에게 데임(Dame) 작위까지 수여받은 애거서 크리스티도 예외는 아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토미와 터펜스 부부처럼, 수십 년의 세월동안 함께 모험을 하면서 서로를 지켜줄 동반자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소설 속에서 구현한 것이 바로 부부탐정 시리즈일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4 (완전판) - 주머니 속의 호밀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2013


#애거서 크리스티 #부부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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